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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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동안 몇 번이나 이정명 작가의 원작 <바람의 화원>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드라마도, 영화도 다 놓쳐 버리고 결국 책으로 만나게 됐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그런진 몰라도, 소설의 극적인 반전에 대한 기대는 이미 접고 있었나 보다. 특히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주인공 신윤복으로 캐스팅된 배우를 알아서인지 그 반전은 거의 기대할 바가 되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원소스 멀티유스(one-source multi-use)에 대한 문학 작품의 예로 <바람의 화원>은 그 전범으로 꼽을 수가 있을 것 같다. 항상 그렇지만, 팩션 장르에는 소설가의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는 느낌이다. 사실상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혜원 신윤복에 대한 두 줄의 서술로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엮어낸 이정명 작가의 내공에 새삼 혀를 내두르게 된다.

바로 직전에 읽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와 함께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양상의 전개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두 작품 모두 실재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모티프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 공통점을 꼽을 수가 있다. 하지만 좀 더 섬세하면서도 여성작가 특유의 치밀한 심리묘사가 <진주 귀고리 소녀>의 강점이라고 한다면, 이정명의 작가의 글은 아무래도 우리에게 친근한 화가들의 이름과 더불어 초등교육 시절부터 우리들의 뇌리에 각인된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들 그리고 속도감 넘치는 진행이 그 묘미라고 할 수가 있겠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바람의 화원>에서는 살인에 얽힌 미스터리까지 등장을 한다. 다만 그 수사관이 의금부 출신의 포졸이 아닌 화원(畵員)이라는 점이 다를 뿐.

조선 후기 정조 대의 활약한 것으로 알려진 김홍도와 신윤복의 관계는 사제 간의 설정이면서도 동시에 궁극적인 라이벌 관계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 물론 대개의 서술이 김홍도의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정도로 신윤복의 입장은 객체로 다루어지고 있다.

역시 도화서 출신의 화원인 신한평의 둘째 아들로,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로 등장하는 신윤복은 수백년간 정형화된 규격에 얽매인 도화서의 숨막힐 듯한 형식과 규율에 일대 반란을 일으킨 자유인으로 그려진다. 도화서 생도 시절, 외유사생에서 파격적인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자유의지를 알리지만,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식으로 체제에 도전적인 신윤복의 그림은 도화서를 좌지우지하는 원로 화원들의 눈에 날 뿐이다. 결국 그를 대신해서 그의 가형인 신영복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스스로 자진해서 단청쟁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그는 누구나 하찮게 생각하는 단청칠을 하면서, 자신의 동생이 필요로 할 색을 만들어내기 위한 위대한 장도에 들어선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조선이라는 왕조국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신분의 자유로운 이동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화원들의 신분은 중인으로, 과거제를 통한 신분상승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그 결과 소설에서는 자신의 스승인 강수항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캐는 김홍도의 수사를 조정의 신료가 된 강수항의 자제들이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모습을 보여 주게 된다. 마치 자신들의 과거를 절대로 밝히고 싶지 않다는 그들의 강력의 의지의 표명처럼 다가온다.

한편 자유분방한 필치와 색을 구사하는 신윤복의 스승으로 나오는 김홍도 역시 한 세대에 나올까 말까한 명인이지만, 세상과 타협하는 길을 걷는다. 하지만 제자 신윤복에게서 자신을 능가할만한 재능을 본 김홍도는 신윤복을 위해, 아니 어쩌면 자신 스스로를 위해 위기의 순간마다 신윤복을 위한 변호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 두 천재에 더불어,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천재가 있으니 그가 바로 절대군주 정조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가슴을 안고 사는 청년 군주 정조는 즉위 일성으로 자신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선대왕 영조대를 주름잡은 노론 벽파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다. 정조 연간에 그 어느 때보다 군신간의 치열했던 권력의 암투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뒤로 하고 있다.

정조는 이 두 천재화가에게 세속의 모습을 담아오라는 주제를 내려 주고, 김홍도와 신윤복은 같은 소재를 바탕으로 다른 그림으로 정조에게 어필한다. 아마 1권을 통틀어 이 동제각화 그림 배틀이야말로 압권이었다. 김홍도는 사실적 리얼리즘에 기초한 그림을 그려 오지만, 신윤복은 항상 메시지가 담긴 그림으로 정조에게 도전한다. 물론 그 둘에 비해 못지않은 천재로 그려지는 정조 역시 바로 바로 그 메시지를 잡아내면서 관계의 정풍운동을 불러일으킨다. 이정명 작가가 직접 서술한 대로, 백 장의 상소보다도 한 장 그림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에 대한 반증이었다.

특히 정조의 어진화사를 두고 나오는 이야기는 정말로 있을법한 이야기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신윤복이 파국으로 나가는 계기가 된다. 개인적으로 의문이 드는 점 중의 하나는, 정조는 완고한 보수주의자로 자신의 치세 기간에 문체반정으로 세간에 떠도는 참신하긴 하지만 파격적인 문장들을 규제했던 정조가 어진화사에 있어, 신윤복의 파격을 용인했다는 작가의 서술은 그 설득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동일한 캐릭터가 어떤 일에는 용인을 하지만, 다른 일에는 절대 용인을 하지 못한다는 설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의 초반에 등장하는 강수항과 서징의 죽음에 대한 김홍도의 탐문조사 이야기가 어느 순간 실종되었다가 말미에 가서 다시 등장하는 개연성에 대해서도 불만이다. 지속적인 긴장감의 조성을 위해서라도 소설 진행 중에 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18세기 후반, 전통적인 농업국가에서 상공업의 발달로 치부한 상인 계급의 등장과 더불어 공고하게 유지되어 오던 신분제의 이반현상에 즈음한 시대상 묘사 역시 주목할 만하다. 예인으로 취급되면서, 역사소설에서 주인공으로 각광받지 못한 도화서의 화원들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운 설정 역시 인상적이다. 하지만 역시 이 책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재밌다는 점이 아닐까? 과연 2편에서 어떻게 마무리가 지어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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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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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부의 극지방에 다다르는 지방을 일컫는 지명인 파타고니아. 21세기에 루이스 세풀베다의 글을 읽는 이방인에게 “파타고니아”는 기이하면서도 가슴에 공명을 울리는 이상향으로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자유주의자로 파시스트 독재자 프랑코의 독재 치하의 에스파냐를 떠나, 남아메리카 칠레에 새로운 둥지를 튼 작가의 할아버지는 나이 어린 손자와 모종의 거래를 한다. 자신의 고향 에스파냐의 마르토스를 꼭 한 번 찾아 가라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자유를 고향을 떠나온 이들에게 피노체트의 쿠데타와 연이은 폭압적인 철권통치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대 사건이었다. 그 결과, 루이스 세풀베다 역시 조부의 운명 그대로 조국에서 쫓겨나 유럽과 조국을 제외한 남미 일대를 떠돌게 된다.

할아버지가 발행한 위대한 여행으로의 초대장으로 비롯된 이 자전적 기행문은 어느 피 끓는 청년 사회주의자의 젊음에서 2년 6개월을 앗아가 버린 칠레의 가장 악명 높은 테무코 교도소에서 출발한다. 교도소에서 더욱 단련되고, 성숙해진 젊은이는 그곳의 인간 백정들을 결코 잊지도 그리고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긍지를 삶 속에 되새기게 되었다.

작가의 여권에 찍힌 “L"이라는 이니셜은 불순분자를 뜻하는 낙인처럼 그를 쫓아다닌다. 에콰도르 산 바나나의 수출항인 볼리바르(마찰라 부근의 푸에르토 볼리바르를 구글맵을 통해 직접 찾아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에서 강의를 하고, <라 콘키스타다> 농장에서 대를 이을 자식을 낳기 위한 종마 같은 데릴사위가 될 뻔 하기도 하고, 남극 바다를 떠도는 배를 타기 위해 칠레 남단의 섬 칠로에까지 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낱 글쟁이에 불과한 이의 모험이 이렇게도 다채롭고 경이로 가득하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를 읽으면서 작가의 기행의 중심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어느 지역에 한다하는 세력가의 시신을 가족 묘지로 이동시키기 위해, 비행기를 개조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남극의 비행 장의사 카를로스 노 마스, 노벨상 수상을 거부하고 남미의 모처에 숨어 사는 슬로베니아 출신의 나치 전범 카를리토스 카르핀테로 그리고 작가에게 아슬아슬한 곡예비행을 통해 진정한 아마존의 진수를 보여준 팔라시오스 기장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과거를 묻지 않는 파타고니아에 사는 정말 다양한 삶의 형태를 가진 이들이 줄줄이 소개되고 있었다.

작가의 기나긴 여행의 대단원은 역시 할아버지의 고향 에스파냐의 마르토스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마치 자신의 고향을 찾아 목숨을 걸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회귀 본능처럼 루이스 세풀베다는 자신의 뿌리를 찾아 물설고 낯선 안달루시아의 마르토스에서 할아버지의 유일한 혈육인 작은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지금은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는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는 아르헨티나의 오지 엘 투르비오에서 시작되어, 대서양 연안의 리오 가예고스에 이르는 240km 거리를 오가는 열차였다고 한다. 목동들의 열차인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에는 그들의 삶의 애환과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노스탤지어처럼 다가온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집착이라고나 할까, 왜 그 털털거리며 오지를 누비는 기차가 타보고 싶은걸까.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조국에 갈 수 없게 된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에는 절절한 조국애에 대한 작가의 비애가 스며들어 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수백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조국을 찾게 된 어느 망명자의 고뇌와 훗날 자신의 작품세계의 바탕이 된 대륙의 이야기들이 숨 가쁘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칠레라는 나라는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장렬하게 산화한 위대한 사회주의자 출신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박사의 동음이의어처럼 다가온다. 과연 내가 그 세계의 끝에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칠레에 가게 되면 아옌데 박사의 묘와 더불어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 새로 생겼다. 그곳의 이름은 파타고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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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
론 커리 주니어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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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다가 자신의 페르소나 같은 캐릭터를 만나본 적이 있는가? 나는 이번에 비채에서 출간된 미국 출신의 작가 론 커리의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의 주인공 존 티보도 주니어에게서 그런 점을 느꼈다. 아마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가 이 책에 아주 몰입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선 이 책의 저자 론 커리는 뉴잉글랜드 출신으로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다고 한다. 아마 이 때 그는 자신이 미래에 쓸 소설의 소재들을 개발해낸게 아닐까? 책에는 자신의 고향 뉴잉글랜드의 곳곳의 지명들이 잘 나타나고 있다. 아마 그 동네에서 살아본 사람이 듣는다면 한 번에 척하고 알아들을만한 그런 이름들 말이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야구장으로도 유명한 펜웨이 파크, 메인 주의 유명한 여름 휴양지 와일드 오처드, 스토로 드라이브가 그렇다.

책이 나오기 전에 공개된 첫 장을 보면 특이하게도 97이라는 숫자로 시작을 한다. 주인공 존 티보도 주니어의 삶의 첫 순간에서부터 시작되는 숫자, 독자들은 이 숫자의 카운트가 제로가 되는 순간 책이 끝나리라는 사실을 직각적으로 깨닫게 된다. 세계 파괴자가 그 어린 주니어에게 자신의 삶의 어느 순간에 우주에서 날아온 혜성이 지구를 끝장내리라는 계시를 알려 준다. 미래의 모든 것을 알아 버린 어린이, 소년 그리고 청년의 삶이 어떨까?

어떻게 보면 지구 종말이라는 조금은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작가 론 커리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끌어 담는다. 우선 주니어가 성장해 가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은 성장소설의 틀을 빌려 온다. 개인적으로 주니어 못지않게, 정이 가는 캐릭터는 주니어의 형 로드니다. 어려서 삼촌네 집에 들렀다가 우연하게 배운 코카인에 중독이 되어 일상의 삶에서 어긋나 버린 로드니. 하지만 역시 어린 시절, 야구 천재로 휴스턴 애스트로스로부터 드래프트 지명을 받았지만 당시 한창이던 베트남으로 지원을 해서 떠났던 아버지 존과는 달리 로드니는 결국 명문구단 시카고 컵스의 유격수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만 여전히 삶의 사소한 것들은 깜빡깜빡하는 피터 팬 같은 사나이다.

하지만 역시 이야기는 지구 종말을 알고 있는 주니어에게도 돌아온다. 론 커리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면서도, 로드니와 주니어의 아버지 존의 시각에서, 그리고 주니어는 물론이고 주니어의 평생 여자 친구 에이미의 시선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이끌어낸다. 마치 정신분열증에 걸렸다고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주니어의 생각들처럼 쉴 새 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론 커리의 손끝에서 펼쳐진다. 작가는 누가 말했던 것처럼 결국 소설이란, 독자들로 하여금 결말에 이르기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도그마를 철저하게 따른다.

성장소설에서 출발한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은 미스터리와 스릴러 심지어는 판타지 장르까지 섭렵한다. 때로는 감동으로, 또 때로는 비극으로 다가서는 작가의 이야기들에 흠뻑 빠지게 된다. 마치 어린이들을 상대로 인형극을 보여주는 인형술사처럼, 시공간에 구애 없이 자유자재로 그야말로 마술 같은 이야기들을 지어낸다. 특히, 3부의 “다중우주” 이야기는 정말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의 묘미란! 스포일러 때문에 더 이야기할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야구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해서 더욱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왜 로드니를 레드삭스 선수가 아닌 시카고 컵스의 선수로 등장시켰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 이유는 아마 레드삭스는 지난 2004년에 86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따라 다니던 저주를 마침내 풀고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거머쥐었지만, 여전히 1908년 이래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한 컵스를 안타깝게 여긴 작가의 아량 탓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 관해서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355쪽에 보면 페넌트 레이스는 1년에 한 번 9월에 치러진다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이 아니다. 1년에 그즈음해서 치러지는건 페넌트 레이스가 아니라 포스트시즌/플레이오프다. 페넌트 레이스는 정규시즌을 지칭하는 말로 4월부터 9월까지를 의미한다. 작가의 오기인지 아니면 번역 상의 실수인지 모르겠다.

역시 가족 간의 관계에 중심을 미국 출신의 작가답게 지구 종말, 파편화되어 가는 21세기 가족관계, 메이저리그 야구, 가난과 빈곤의 문제 그리고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책 속에 녹아들게 만들면서도 결국에 가서는 가족 관계에 방점을 찍는다. 아버지 존이 폐암으로 죽어가게 되자, 만사를 제쳐 두고 먼발치에서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노력하는 주니어의 모습과 아들에게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완고한 아버지의 비애가 중첩적으로 다가왔다.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은 론 커리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신예 작가답지 않은 탄탄한 구성과 함께 독자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다양한 소재들의 향연은 전혀 새내기답지 않은 모습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처음 보자마자 좋아하”(372쪽)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썼는데,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나에겐 그렇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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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 이덕일의 한국사 4대 왜곡 바로잡기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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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을 전공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을 그야말로 신주단지 모시듯 끼고 살았다. 왜 그 시절에 난 백남운에 대해 몰랐을까? 이덕일 선생이 이번에 야심차게 발표한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을 읽으면서 어떻게 해서 한국 사학계의 태두로 손꼽히는 이병도와 그의 제자 이기백 다시 그들의 제자들이 한국역사학계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우리 민족 정체성에 치명적인 식민사관을 전파하고 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됐다.

우선 저자 이덕일 선생은 한국사에 걸쳐 광범위하게 왜곡되고 있는 여러 가지 역사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네 가지를 꼽는다. 가장 먼저 한 무제에 의해 설치되었다는 한반도 내의 한사군(漢四郡)의 존재,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조작론, 조선 후기 당시 지배계급이었던 노론의 역사왜곡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제하의 항일무장투쟁사가 그것이다.

강단사학이 아닌 재야사학자로 그동안 꾸준하게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해온 이덕일 선생의 첫 번째 주제는 바로 한사군이다.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일본인 어용학자 쓰다 소우키치가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날조한 것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어떤 역사적 입증 절차 없이 따르고 있다는 점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다른 나라도 아니고 우리나라 출신 학자라는 이병도는 자신의 스승 쓰다 소우키치의 패수-압록상설에서 한발자국 더 나간 패수-청천강설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제는 의도적으로 한사군의 위치비정을 한반도로 설정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유사 이래 타국의 지배를 받아왔고, 그 결과 자신들의 한반도 지배가 정당하다는 결론을 도출해 내기 위해서였다. 이덕일 작가가 이 책을 저술하면서 기존의 다양한 사료들을 비교하고 검토한 결과, 일제 사학자들의 주장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해낸다. 이들 일제 사학자들의 주장은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식민사관에 물든 주류 사학계에서는 랑케 실증사학이라는 방법론만을 고집하면서, 사료들을 비교 검토하는 역사학의 기본조차 무시한 채 그들이 태두로 모시는 이병도의 주장들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따름이다.

한사군 논쟁의 핵심 중의 하나인 갈석산의 위치 비정 문제만 하더라도, 중국 요서지방에 있는 갈석산이 아니라 황해도 수안 부근이라는 이병도의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다. 자신의 책인 <한국고대사연구>에서 그렇게 주장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어느 근거는 너무나 빈약하기만 하다. 게다가 일제 학자들이 주장해온 한 국내에서 출토된 낙랑 유물들의 진위 문제는 더 심각하다. 아울러 정치적인 대립으로 인해, 북한에서 발굴한 유물들에 대해서는 거의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사서로 꼽히는 <삼국사기>의 경우에도 단독으로 정통 사서로 인정받지 못하고 꼭 중국이나 일본 사서와 대조를 해서 일치하는 부분에 있어서만 정사로 인정하겠다는 주장 역시 국적이 중국이거나 일본인 학자들이 내세워야 하는 주장이 아닐까? 그들이 떠받드는 태사공 사마천 선생이 쓴 <사기> 역시 지금의 이성적인 방법론에서 볼 때 현실과 들어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기>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김부식의 <삼국사기> 역시 비등한 접근방법이 요구된다.

고구려 주몽이나 백제의 시조 온조, 그리고 신라에 이르기까지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들을 부정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쓰다 소우키치의 모습에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된다. 그야 일본출신의 어용학자라 그렇다 치고, 그에게 사사 받은 이병도 마저 자신의 정체성과 역사적 사실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료들만을 인정하는 모습은 역사학을 하는 동업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세마저 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주장은 노론 후예들이 만들어낸 신화들에 대한 일격이다. 조선을 멸망으로 몰고 간 노론의 후예들이 지금도 역사학계를 주름 잡고 있는 것이 우리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들이 창작해낸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 주장에 대한 허구와 효종대의 송시열과 송준길이 북벌론자였다는 허무맹랑한 주장들을 남김없이 발가벗긴다. 특히 효종과 매사에 대결을 벌였던 우암 송시열이 과연 효종을 자신의 군주로 인정했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또한 그들은 조선 후기 실학을 주도한 세력들이 노론 출신이며, 나름대로 개혁을 추구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악랄한 신분제 국가였던 조선에서, 오로지 성리학만을 숭앙하며 자신들의 군주보다도 망해버린 명나라 천자를 떠받드는데 사력을 다한 이들이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의 정신을 개혁을 주도했다는 국사교과서의 내용은 그야말로 왜곡 그 자체다.

그 외에도 최근에 발견된 정조와 노론 정객 심환지가 주고받은 <정조어찰>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다. 사사건건 정조와 대결했던 노론의 영수 심환지는 심지어 정조독살설의 주모자로 손꼽히기도 한다. 정조가 승하한 날, 바로 20년간의 정조 치세를 무너뜨리는 작업에 들어간 심환지가 어떻게 해서 정조와 간담상조하는 국정 파트너로 변신할 수가 있는지 후세 학자들의 가히 판타지를 버금가는 해석에 놀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앞서 기술된 세 가지 왜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역시 의도적으로 기피된 현대사 기술에 문제를 이덕일 작가는 지적한다. 대한제국을 일본에게 넘기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노론 일파의 면면은 한일합방 후의 그들이 수여한 공로작 명단을 보면 대번에 들어난다. 일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류 학계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라도, 그들과 대척점에 서 있던 독립군의 무장항일투쟁사는 그들의 뇌리에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의 어수선한 공간과 뒤이은 한국전으로 인해 그나마 생존해 있던 독립투사들이 가난과 옥고로 인한 고통으로 세상을 하직하는 동안 주류 학계에서는 ‘현대사 연구 금지론’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그들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기에 바빴다. 1980년대 들어 현대사 연구에 대한 활발한 바람이 일었지만, 시기가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이들만큼 어리석은 이가 없다고 한 옛말처럼, 21세기 새로운 대한민국에서는 지난 60년간 군림해온 일제 식민사관과 수백 년간 그 명맥을 유지해온 노론사관을 혁파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덕일 작가의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이 앞으로 그동안 왜곡되고 호도되어 온 우리나라의 바른 역사 세우기에 일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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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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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발자크의 책을 한 권도 읽어 보지 못했다. 책을 읽다 보니 발자크의 이름을 곳곳에서 듣곤 하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단숨에 다 읽어 버린 김탁환 선생의 <노서아 가비>에서 다시 “소설노동자” 오노레 발자크의 이름과 만날 수가 있었다. 발자크는 김탁환 선생의 삶의 롤모델처럼 그렇게 다가온다.

지난 10년간 무려 40권을 책을 냈다는 다작 작가 김탁환 선생의 신작 <노서아 가비>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보통 영화의 상영시간과 책을 읽는 시간이 거의 엇비슷했다. 그만큼 흡입력이 있는 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재밌고 잘 읽히는 책을 좋아하는데,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이번 가을 내가 모토로 삼은 “재밌는 책을 읽자”와도 어쩌면 그리도 궁합이 척척 맞는지.

머리가 아닌 손으로 글을 쓴다는 김탁환 선생은, 책을 쓰기 전에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체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매천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에 실린 역관 김홍륙이라는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삼아 이 멋들어진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선이 열강의 침입으로 국운이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던 시절, 역관 최홍의 딸이자 안나, 따냐 혹은 최월향으로 불리는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역시 역관의 딸이기에, 어려서부터 러시아어를 배웠다. 이 상황설정은 그녀가 장차 러시아를 무대로 해서 활약하게 되는데 있어 중요한 무기가 된다.

하지만 중국 천자에게 조공하는 사신을 수행하러 갔던 아버지가 나랏물건을 가로채서 도주했다는 누명을 쓰고, 집안이 결딴나면서 천민의 지위로 하락하게 된 따냐는 조국을 버리고 월경하게 된다. 대륙에서 전각기술을 배워 위조된 그림에 낙인을 찍고, 또 베드로의 도시라 불리는 러시아의 뻬쩨르부르그에 가서는 유럽 각국의 귀족들에게 러시아의 숲을 속여 팔아먹는 ‘얼음여우’ 사기단의 일원으로 맹활약을 하게 된다. 그렇게 번 돈으로 북구의 핀란드에서 남쪽의 안남(베트남)에 이르기까지 대륙을 종횡무진 누비는 한 편의 액션활극 같은 삶이 펼쳐진다. 책의 띠지에 보면 “출간 즉시 영화화 결정”이라는 광고 카피가 보이는데, 아마 이렇게 극적이면서도 파란만장한 삶이 앞으로 나올 영화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먼저 제목에 대해 말했던가? <노서아 가비>는 러시안 커피라는 뜻으로, 매 장마다 커피와 커피메이커, 그라인더와 찻잔 세트 등에 대한 일러스트들이 소개되고 있다. 커피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주인공 따냐의 아버지가 즐겨 마시던 호사품으로, 따냐 역시 커피홀릭의 길을 걷게 되는데 위기의 고비에서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입신의 방편으로 커피는 그녀의 삶을 톺아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따냐가 러시아 땅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그녀의 첫사랑인 이반. 이반 역시 조선 사람으로, 조국에서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인해 이역만리 타지에서 사기단의 행동대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위기일발의 순간에서 따냐를 구해낸 이반은, 따냐와 운우지락을 나누면서도 연인이자 동료 관계로 발전해 나간다. 개인적으로 그 넓고 광활한 러시아 땅에서 러시아어를 마치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해대는 이 두 남녀의 만남에 대해 소설적 개연성이 지나치게 개입된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물론 재미라는 측면에서라면 그보다 더 극적일순 없겠지만.

이렇게 의기투합된 따냐와 이반은 갈범 무리라는 5인조 사기단으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게 된다. 러시아 황제 니꼴라이 2세의 대관식에 조선 특명전권대사로 초청된 민영환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조선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복수와 배신의 칼바람 속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따냐는 자신이 떠났던 조국 조선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던 고종의 러시아어 역관으로 변신한 이반과의 재회. 이반과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주선으로 따냐는 역관의 딸에서, 전각 사기꾼 그리고 러시아 숲을 팔아먹던 사기단의 일원에서 이번에는 고종에게 노서아 가비(커피)를 만들어 올리는 바리스타로 인생유전을 이어간다.

한편 을미사변(1895년)으로 중전인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일본 자객들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기에 이른다. 따냐의 러시아에서의 활약상과 더불어 고종에게 커피를 지어 올리는 바리스타로서 그녀의 새로운 인생이 소설의 후반부를 장식한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와 자신이 사랑한 이반, 김종식 그도 아닌 정도령과의 놀라운 관계에 대한 결말이 독자들로 하여금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도저히 책에서 손을 떼게 하는 마력으로 다가온다.

<노서아 가비>는 확실히 재밌다. 사전에 미리 영화화를 구상하고 써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간결체의 짤막짤막한 대사 진행과 속도감 넘치는 전개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긴 호흡보다는 짧은 호흡 덕분에 책읽는 재미가 배가되었다. 게다가 러시아 대륙을 누비며 유럽의 귀족들을 상대하는 당시 여성상과는 파격적인 따냐의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이 독서몰입에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내를 잃고, 외세의 침탈에 시달린 고독한 군주 고종의 모습을 커피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적으로 그려낸 김탁환 선생의 기발한 스토리텔링에 박수를 보낸다.

고종과 이완용과 같은 실존했던 인물들과 역관 김홍륙의 암살 시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빈 공간을 자신이 빚어낸 인물과 이야기들로 채워넣는 김탁환 선생의 탁월한 이야기 구성에 탄복해 마지않는다. 아마 이런 맛에 팩션(faction)을 읽는 거겠지? 이렇게 재밌는 소설과 만난 사실에 다시 한 번 마음이 넉넉해진다. 아, 그나저나 발자크의 책들은 과연 언제나 읽어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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