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 이덕일의 한국사 4대 왜곡 바로잡기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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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을 전공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을 그야말로 신주단지 모시듯 끼고 살았다. 왜 그 시절에 난 백남운에 대해 몰랐을까? 이덕일 선생이 이번에 야심차게 발표한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을 읽으면서 어떻게 해서 한국 사학계의 태두로 손꼽히는 이병도와 그의 제자 이기백 다시 그들의 제자들이 한국역사학계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우리 민족 정체성에 치명적인 식민사관을 전파하고 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됐다.

우선 저자 이덕일 선생은 한국사에 걸쳐 광범위하게 왜곡되고 있는 여러 가지 역사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네 가지를 꼽는다. 가장 먼저 한 무제에 의해 설치되었다는 한반도 내의 한사군(漢四郡)의 존재,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조작론, 조선 후기 당시 지배계급이었던 노론의 역사왜곡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제하의 항일무장투쟁사가 그것이다.

강단사학이 아닌 재야사학자로 그동안 꾸준하게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해온 이덕일 선생의 첫 번째 주제는 바로 한사군이다.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일본인 어용학자 쓰다 소우키치가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날조한 것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어떤 역사적 입증 절차 없이 따르고 있다는 점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다른 나라도 아니고 우리나라 출신 학자라는 이병도는 자신의 스승 쓰다 소우키치의 패수-압록상설에서 한발자국 더 나간 패수-청천강설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제는 의도적으로 한사군의 위치비정을 한반도로 설정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유사 이래 타국의 지배를 받아왔고, 그 결과 자신들의 한반도 지배가 정당하다는 결론을 도출해 내기 위해서였다. 이덕일 작가가 이 책을 저술하면서 기존의 다양한 사료들을 비교하고 검토한 결과, 일제 사학자들의 주장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해낸다. 이들 일제 사학자들의 주장은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식민사관에 물든 주류 사학계에서는 랑케 실증사학이라는 방법론만을 고집하면서, 사료들을 비교 검토하는 역사학의 기본조차 무시한 채 그들이 태두로 모시는 이병도의 주장들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따름이다.

한사군 논쟁의 핵심 중의 하나인 갈석산의 위치 비정 문제만 하더라도, 중국 요서지방에 있는 갈석산이 아니라 황해도 수안 부근이라는 이병도의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다. 자신의 책인 <한국고대사연구>에서 그렇게 주장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어느 근거는 너무나 빈약하기만 하다. 게다가 일제 학자들이 주장해온 한 국내에서 출토된 낙랑 유물들의 진위 문제는 더 심각하다. 아울러 정치적인 대립으로 인해, 북한에서 발굴한 유물들에 대해서는 거의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사서로 꼽히는 <삼국사기>의 경우에도 단독으로 정통 사서로 인정받지 못하고 꼭 중국이나 일본 사서와 대조를 해서 일치하는 부분에 있어서만 정사로 인정하겠다는 주장 역시 국적이 중국이거나 일본인 학자들이 내세워야 하는 주장이 아닐까? 그들이 떠받드는 태사공 사마천 선생이 쓴 <사기> 역시 지금의 이성적인 방법론에서 볼 때 현실과 들어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기>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김부식의 <삼국사기> 역시 비등한 접근방법이 요구된다.

고구려 주몽이나 백제의 시조 온조, 그리고 신라에 이르기까지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들을 부정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쓰다 소우키치의 모습에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된다. 그야 일본출신의 어용학자라 그렇다 치고, 그에게 사사 받은 이병도 마저 자신의 정체성과 역사적 사실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료들만을 인정하는 모습은 역사학을 하는 동업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세마저 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주장은 노론 후예들이 만들어낸 신화들에 대한 일격이다. 조선을 멸망으로 몰고 간 노론의 후예들이 지금도 역사학계를 주름 잡고 있는 것이 우리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들이 창작해낸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 주장에 대한 허구와 효종대의 송시열과 송준길이 북벌론자였다는 허무맹랑한 주장들을 남김없이 발가벗긴다. 특히 효종과 매사에 대결을 벌였던 우암 송시열이 과연 효종을 자신의 군주로 인정했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또한 그들은 조선 후기 실학을 주도한 세력들이 노론 출신이며, 나름대로 개혁을 추구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악랄한 신분제 국가였던 조선에서, 오로지 성리학만을 숭앙하며 자신들의 군주보다도 망해버린 명나라 천자를 떠받드는데 사력을 다한 이들이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의 정신을 개혁을 주도했다는 국사교과서의 내용은 그야말로 왜곡 그 자체다.

그 외에도 최근에 발견된 정조와 노론 정객 심환지가 주고받은 <정조어찰>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다. 사사건건 정조와 대결했던 노론의 영수 심환지는 심지어 정조독살설의 주모자로 손꼽히기도 한다. 정조가 승하한 날, 바로 20년간의 정조 치세를 무너뜨리는 작업에 들어간 심환지가 어떻게 해서 정조와 간담상조하는 국정 파트너로 변신할 수가 있는지 후세 학자들의 가히 판타지를 버금가는 해석에 놀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앞서 기술된 세 가지 왜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이긴 하지만 역시 의도적으로 기피된 현대사 기술에 문제를 이덕일 작가는 지적한다. 대한제국을 일본에게 넘기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노론 일파의 면면은 한일합방 후의 그들이 수여한 공로작 명단을 보면 대번에 들어난다. 일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류 학계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라도, 그들과 대척점에 서 있던 독립군의 무장항일투쟁사는 그들의 뇌리에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을 것이다. 해방 이후의 어수선한 공간과 뒤이은 한국전으로 인해 그나마 생존해 있던 독립투사들이 가난과 옥고로 인한 고통으로 세상을 하직하는 동안 주류 학계에서는 ‘현대사 연구 금지론’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그들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기에 바빴다. 1980년대 들어 현대사 연구에 대한 활발한 바람이 일었지만, 시기가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이들만큼 어리석은 이가 없다고 한 옛말처럼, 21세기 새로운 대한민국에서는 지난 60년간 군림해온 일제 식민사관과 수백 년간 그 명맥을 유지해온 노론사관을 혁파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덕일 작가의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이 앞으로 그동안 왜곡되고 호도되어 온 우리나라의 바른 역사 세우기에 일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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