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신문지상에 실리는 책에 대한 정보를 유심히 지켜 보는 편이다. 이번 긴 연휴 때에는 어떤 신문(개인적으로 신문으로 생각하지 않는)에 소개된 마스다 미리 그리고 제목도 잃어버린 만화(미메시스 출간)에 대해 알게 됐다. 보통 책을 사서 보는 편인데, 굳이 만화라면 사서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 걸까. 게다가 때마침 장난감/도서관에 장난감과 책을 반납하러 갈 일이 있어서 마스다 미리의 <주말엔 숲으로>가 있는지 검색해 봤다. 다행히 책이 있었고, 아직 누가 빌려가지 않아 바로 빌려볼 수가 있었다. 만화는 아무래도 쉽게 볼 수 있으니 내친 김에 몇 권 더 빌렸다. 새로 생긴 도서관이라 그런지 책의 상태가 양호하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 책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애용해서 그런지 너무 낡고 상태가 좋지 않아 빌려다 보기가 좀 그렇더라.

 

서설이 길었다. 그렇게 어제 빌린 책을 오늘 오후에 읽었다. 전투육아에 지친 몸을 이끌고 드러누었지만 쉽게 잠은 오지 않았고, 이럴 순간이야말로 마스다 미리 작가의 만화를 만날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친 몸을 이끌고 어제 빌린 책가방을 찾아 나선다. , 여기 있구만. 책장이 휘리릭 넘어가기 시작한다.

 

일본 작가가 그린 만화이니 당연히 배경은 일본, 그리고 우연히 당첨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세워둘 주차공간이 없어 시골로 가서 살기로 작정한 삼십대 중반의 싱글 하야카와 씨와 그녀의 친구들인 세스코와 마유미가 등장한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되게 솔직하다. 타인에게 절대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일본인들의 심리가 보이는가 하면(심지어 친구들 사이에서도), 친구 집에 가면서 항상 무언가 선물로 들고 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보니 회사에서도 일본 손님들이 올 적에 양갱이니 화과자 같은 소소한 선물들을 사가지고 와서 직원들에게 돌린 기억이 난다. 그렇군.

 

주인공 하야카와 씨는 시골에 살면서 전혀 시골에 동화되지 않은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 굳이 시골에 왔다고 해서 채소며 먹거리들을 직접 재배하지 않고, 도시인의 생활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한다. 맛난 것들은 택배로 시켜 먹고, 도쿄에서나 먹어볼 수 있는 디저트 따위는 세스코와 마유미 양이 차례로 공수해준다. 게다가 계속해서 주말마다 방문하니 외로울 짬도 없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기모노 입는 법이나 중학생을 지도하는 과외도 하고 바쁘다 바빠. 주말에 들른 세스코, 마유미와 함께 산에 오르기도 하고 호수에서 카약(나도 카약을 좋아해서 그런지 정말 부러웠다)을 타기도 하니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그렇게 유유자적한 시골 마을의 삶이 하야카와 씨의 일상이라면, 도시에서 부대끼며 사는 싱글 여성들의 이야기는 세스코와 마유미가 맡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사소한 일로 타인에게 상처 받기도 하고, 또 친구에게 위로도 받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여성 제위의 이야기가 담백하게 다가온다. 마스다 미리 만화의 핵심 중의 하나는 그녀들이 일상에서 겪은 하지만 차마 타인에게 절대 하지 않을 속마음을 조금씩 열어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묻는 것만 바로 대답해 주면 될 텐데 굳이 장황하게 모두 알려 주려는 직장동료에 대한 불평이라든지, 길에서 부딪힌 남자가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 앙심을 품고 복권을 모두 그 남자가 확 죽어버리라는 뜻에서 연달아 4자가 들어가는 소심한 복수를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그래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하며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공감 포인트를 작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 양반 아주 선술세 그래.

 

그녀의 그림체는 화려하거나 정교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대충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녀의 만화/글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짜 스토리가 진하게 배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도 먹히는 게 아닐까. 이 책만 하더라도 2012년에 나왔는데 내가 본 판본까지 해서 무려 13쇄나 찍었다니 말이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이야기들은 아마 비슷한 모양이다.

 

굳이 한 가지 흠을 잡자면, 하야카와 씨의 멘토 같은 역할이다. 물론 작가 마음대로 그리는 만화니 뭐라 할 순 없겠지만 네 페이지 정도 되는 만화의 전반부에서 먼저 산 속 혹은 시골마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스코와 마유미 양이 버거운 도시생활을 하다가, 멘토 하야카와 씨의 말을 떠올린다는 설정 말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 부분이 나는 좀 불편하더라. 바쁘게 지나가는 삶 가운데 그렇게 심오(?)하게 사유하고 연관지을 수 있는 여유가 있나 하고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아마도 난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공감할 수 없었겠지.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지금 이대로 괜찮을 걸까?><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을 연달아 읽고 있다. 우주정복이나 떼돈을 벌어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거창한 이야기 대신 연애와 결혼 그리고 삶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주제가 마음에 든다. 이렇게 계속해서 읽다간 어쩌면 나 그녀의 팬이 될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획된 해산 의도된 오판 -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변론기
이재화 지음 / 글과생각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한 때 통합진보당을 지지한 적이 있었다. 아마 지난 19대 총선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총선 직전에 벌어진 관악을 경선조작 사태와 이후 킨텍스에서 생중계된 중앙위 폭력사태를 보면서 이 정당에 대한 오만정이 다 떨어져 버렸다. 소위 당권파라는 사람들은 폭력사태가 마치 없었던 사건인 것처럼 그렇게 넘어가 버렸다. 당시 아무도 해당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사람은 없었다(이정희 대표가 같은 해, 9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미 그 때는 늦었다). 그렇게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어 버린 정치집단을 보는 나의 시선은 냉소적이 되어 버렸다. 또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통합진보당의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는 이석기 의원이 참석해서 문제가 된 5.12 회합이 언론에 알려지는 과정에서 이정희 대표의 일관되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주장을 들으면서 이젠 그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믿지 못하게 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41219,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켜 버렸다.

 

<기획된 해산 의도된 해산>은 통합진보당의 변론을 맡은 이재화 변호사에 의해 기술된 책이다. 정봉주의 전국구 팟캐스트를 들으며 익숙해진 목소리의 주인공이 들려주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의 핵심은 있어서는 안될 사상 초유의 국가폭력이었다는 점이다. 18대 대선 선거 과정에 이정희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한 정치보복성 재판이라는 지적에서부터, 보수 언론에 의한 온갖 마타도어가 난무하고 설상가상으로 합정동 RO모임 사실까지 공개되면서 해산심판은 법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다툼이 아니라 정치행위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헌법재판소는 경기의 심판이 아니라, 주전선수가 되어 버렸다. 이재화 변호사가 상세하게 들려준 재판 과정을 살펴보면, 통합진보당 해산은 판결 이전에 (정치적으로) 결정된 사항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산심판에 임한 헌재의 재판관들은 실체적 진실보다 이념을 중시했다는 것이 이재화 변호사의 주장이다. 재판 과정에서 다수의 전향자들과 간첩들의 근거 없는 추측과 추론을 참고하면서, 서로 어긋나는 주장에 대해서는 외면해 버리는 일들이 빈번했다고 한다. 엄청난 분량(175천쪽)에 달하는 정보들을 과연 재판관들이 숙지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실제로 나중에 판결이 내려진 뒤에 오류를 바로 잡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가. 사실 법에 문외한인 일반인이 복잡한 법리를 다투는 과정을 제대로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왜 그렇게 정당해산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서둘러서 진행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불과 한 달 뒤에 있을 대법원 판결에서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고, 지하혁명조직(RO)의 실체도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와 대법원의 서로 배치되는 판결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대법원 판결을 예측하고, 무리하게 서둘러서 판결을 진행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정당해산심판에 대한 국제기구인 베니스 위원회의 권고 따위는 가볍게 무시되었고, 통합진보당은 그렇게 역사가 되었다.

 

헌재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이석기 내란음모죄와 관련된 지하혁명조직으로 알려진 RO역시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유령조직이라고 판단했지만, 헌재에서는 RO가 구체적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고 발표했다. 과연 우리나라가 고작 그런 엉터리 조직 하나에 휘둘릴 정도로 기초가 튼튼하지 않단 말인가. 구시대적 사고를 가진 두 명의 내란선동자(이석기와 김홍열)10만 명의 당원을 가진 조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가. 또한 강령이 공개된 공개 정당에 불순한 숨은 목적이 있다고 판단한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일부 전향인사들의 추정과 개인의 과거 기록을 바탕으로 한 간접증거가 아니라 직접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재판을 진행한 점에 대해서도 저자 이재화 변호사는 증거재판주의에 위배되는 사항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당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에서의 부정행위는 일반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당신 온라인 투표 부정행위에 대한 검증을 맡은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가 최근 고 성완종 씨의 녹취록을 JTBC에 무단으로 유출하면서 논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는 이 전문가의 행위가 절취에 해당한다고까지 말했는데, 그가 여러 언론매체에서 그간 주장해왔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행위와 관악을에서의 경선조작 이슈, 중앙위 폭력사태 등은 진보의 도덕성에 타격을 끼쳤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직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소가 어떤 법리적 근거도 없이 박탈했다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설사 위헌정당이라고 하더라도, 그 소속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유지하는지 혹는 상실하는지에 대한 어떠한 헌법이나 법률 상의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는 사실도 이재화 변호사는 예리하게 지적한다. 어쨌든 통합진보당의 해산결과 치러진 지난 4.29 재보선에서 입증되었듯, 기존의 통합진보당은 더 이상 정당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진중권 교수가 말했듯이, 그냥 놔두면 알아서 소멸될 정당을 굳이 해산심판이라는 무리수를 둔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시 <그들이 처음 왔을 때>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 사건에 대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침묵하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리의 분실물센터
브룩 데이비스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유명세를 타지 않은 새로운 작가의 글을 읽는다는 건, 즐거울 수밖에 없다. 보통의 경우 그 작가의 스타일이나 문체, 기법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도전하기 때문에 신천지를 개척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브룩 데이비스의 글은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 책을 읽기 전에 트위터로 그녀의 계정에 올라온 사진들을 검색해 봤는데 재밌는 사진들이 많았다. 책이 좋아 쓰는 것 말고도 서점에서 다른 사람의 글을 파는 일도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혹시 서점에서 자신의 책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홍보하는지 궁금하다.

 

<Lost & Found>라는 원제를 가진 브룩 데이비스의 <밀리의 분실물센터>의 주인공은 바로 7살 먹은 밀리 버드라는 꼬마 소녀다. 밀리의 삶은 기구하다는 레테르를 붙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버지는 암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시고, 홀로 남은 엄마는 밀리를 여성 속옷매장에 밀리를 버려두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소설의 초반에 밀리가 자신이 목격한 죽음을 기록하는 데스노트에 아버지의 이름을 올린 것을 보고, 한동안 고개가 갸웃거려졌었는데 소설이 진행되면서 바로 이해가 됐다. 아버지도 없고, 엄마도 없는 꼬마 소녀가 과연 이 험난한 세파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 소설은 전형적인 로드 무비의 성격을 띠고 있다. 혹은 어려서 본 만화 <엄마찾아 삼만리>의 스토리라인라고나 할까. 소설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이 왜 밀리의 엄마는 밀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떠났을까라는 점이었는데, 작가가 그 점은 끝까지 속이 후련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솔직히 꼬마 소녀가 혼자 힘으로 광대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횡단한다는 건 누가 봐도 가당치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브룩 데이비스 작가는 그녀의 사이드킥으로 각각 배우자를 잃은 홀아비 터치 타이피스트 칼(87)과 성격이 괴팍한 과부 애거서 팬서(82)를 배치했다. 밀리의 이웃에 사는 애거서의 동기유발이 더 설명이 가능한데, 아무래도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든 캐릭터가 그리고 각자 누군가를 잃었다는 점에서 밀리를 도와야겠다는 개연성 성립에 그럴싸하지 않나 싶다. 그렇게 브룩 데비이스가 창조한 핍진성의 서사 구조는 나름대로 소설의 중반까지는 그런 대로 순기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부터 너무 많은 우발적 요소들과 사건들이 개입하면서 급속하게 흥미를 떨어뜨린다.

 

소설을 차분하게 다 읽고 나서, 작가의 후기까지 다 읽은 다음에야 비로소 왜 그렇게 작가가 소설에서 죽음이라는 주제에 집착하는지 깨닫게 됐다. 브룩 데이비스는 밀리를 자신의 얼터 이고(alter ego)로 삼아,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사실에 대한 하나의 미안한 마음을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겨우 일곱 살 먹은 꼬마 소녀가 끊임없이 모두가 죽을 거라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외치고 다니다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면서도, 어느 순간에라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을 각성시키는 밀리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을까.

 

저마다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를 가진 밀리, 터치 타이피스트 칼 그리고 버럭쟁이 애거서 팬서 삼각 편대를 중심으로 한 소설의 기본구성은 흥미롭다. 어느 특정인의 시선이 아닌 균형 잡힌 시선으로 소설을 기술하겠다는 신진작가의 기백을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주인공에 대한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인데, 칼이나 애거서의 그것에 비해 밀리의 이야기에 힘이 부치는 느낌이다. 어쩌면 밀리가 아이라는 점까지 고려한 작가의 의도였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소설에서 가장 재밌으면서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밀리 일행의 중간기착지였던 캘굴리에서 주정뱅이 삼총사와 한판 붙은 액션 활극 파트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것 역시 작가가 구상한 생소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재미의 일부분일지도. 엔딩 부분도 너무 급하게 처리되면서, 영화 <Birdy>의 결말을 연상시킨다.

 

소설을 읽으면서 오래전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광대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누비다가 우연히 들른 간이매점에서 불타오르는 석양을 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상에 젖어 끼니를 때우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다던 밤하늘의 남십자성도. 젊음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되던 그 시절에, 꼬맹이 밀리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을지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ushvitz 2015-05-0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까 하고 고민했었는데 읽어야겠어요^^
 
인어 남자
칼요한 발그렌 지음, 최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제목이 <인어 남자>라고 한다. 그래서 무슨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 어쩌면 동화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는데,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소설 <인어 남자>의 배경은 1983년 지금은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이 앨범 <Thriller>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그 시절 이야기다. 그리고 배경은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의 팔켄베리(Falkenberg:스웨덴 말로 매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라는 바다 건너 덴마크의 안홀트 섬이 보이는 그런 항구도시다. 주인공은 넬라와 그녀의 남동생 로베트르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다생물, 소설에서는 남자 인어라고 불린다. 전설에 등장하는 인어는 사이렌의 그것처럼 남자를 홀리는 그런 요사스러운 존재라고 하는데, 남자 인어는 그것과는 좀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소설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점은 이제 겨우 복지의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미 스웨덴에서는 30년도 전에 이미 아동수당과 복지수당을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 편의 때문에 주인공 넬라의 엄마는 제대로 된 일자리도 구하지 않은 채, 사회에 무임승차해서 하루하루를 연명해 간다. 넬라의 아버지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데, 부모로서 자식을 돌보는 일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나길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그래도 주인공 넬라는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 로베르트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태세다. 사실 로베르트의 보호자는 부모가 아니라 넬라인 셈이다. 넬라는 학교를 졸업하는 다음 해에, 독립할 계획을 꾸미고 있다.

 

그렇게 넬라와 로베르트 남매의 가난을 이겨낸 고군분투가 아름답게 마무리되면 좋으련만, 세상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의 삶을 고달프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 중의 하나는 부모의 철저한 무관심과 가난 뿐 아니라 학교에서 그들을 괴롭히는 예라르드 일당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동물학대는 예사고, 부진아로 아이들의 놀림감이 된 로베르트를 인질로 삼아 넬라마저 괴롭힌다. 칼요한 발그렌 작가는 그런 아이들의 세계에 대한 너무 현실적이다 못해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극한대의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청소년들이 더 이상 꿈을 꾸지 못하고, 무한경쟁에 내몰린 우리사회의 현실이 보이는 것 같아 소설을 접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와중에 넬라의 삶에 뛰어든 에일리언(이방인)이 하나 있었으니 그 존재가 바로 남자 인어다. 넬라의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토뮈의 형들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우리가 상상하는 인어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의 남자 인어를 만나게 되고, 남자 인어를 중심으로 모든 문제들이 휘말리게 되는 그런 상황이 전개된다. 로베르트를 인질로 삼은 예라르드가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하자, 넬라는 로베르트를 볼 때만 솟아나는 특별한 사랑의 감정으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도둑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옷가게와 신발가게 그리고 전자제품 상점에서 넬라와 로베르트가 벌이는 절도 행각은 복지천국이라 알려진 나라의 피폐한 삶 역시 우리네와 별반 다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칼요한 발그렌 작가는 리얼리즘과 판타지를 섞은 이종교배 소설을 성공적으로 창조해냈다. 소설에서 리얼리즘을 담당하는 부분은 세상에 뛰어들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십대 소녀가 헤쳐 나가야 할 세상의 파도에 초점을 맞춘다. 넬라가 아무리 수를 써도 그녀가 처한 기가 막힌 상황에서 빠져 나갈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바로 그 시점에서 작가는 판타지/남자 인어를 투입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남자 인어가 슈퍼맨처럼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해서 넬라를 괴롭히는 예라르드 일당을 쳐부수고, 그녀에게 바닷속 보물까지 안겨 주면 어떨까하는 판타지의 극한에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기도 했다. 그런데 작가는 판타지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그렇게 터무니없이 허물어뜨리진 않는다.

 

토뮈 형들에게 산 채로 잡힌 남자 인어의 운명과 예라르드에게 인질로 잡힌 로베르트의 운명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너무 가난해서, 끼니조차 때우지 못하는 넬라와 로베르트에게 학교 급식이야말로 생명줄이라는 상황이 무상급식 논란에 휩싸인 오늘 우리네 현실을 반추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결국 어느 정도의 운과 사회 시스템의 도움으로 넬라는 새로운 삶을 찾기에 이른다. 물론 그에 따른 희생도 필요하다. 칼요한 발그렌 작가는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마치 곡예사가 현란한 저글링을 하듯 그렇게 솜씨 좋게 풀어낸다. 한 가지 개인적으로 옥의 티라고 생각하는 점 하나는 넬라/토뮈와 남자 인어와의 교감 혹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대화다. 남자 인어가 인간의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걸까? 텔레파시 같은 방법 대신 인어답게(?) 인간과 서로 대화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칼요한 발그렌 작가의 작품 중에서 우리나라에 두 번째로 소개된 <인어 남자>를 읽으면서 그의 전작 <가면>도 한 번 기회가 되면 읽어 보고 싶어졌다. 스웨덴 출신의 이 작가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괴물이라는 존재를 주제로 삼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 딱 걸렸어! 단비어린이 문학
이상권 지음, 박영미 그림 / 단비어린이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른도 장애인 친구를 대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상권 작가의 <너 딱 걸렸어>를 읽으면서 몇 년 전, 다니던 교회에 장애인 동생 때문에 고민하던 일이 떠올랐다. 심한 뇌성마비 때문에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말하면서 쉴 새 없이 침을 흘리기 때문에 자매들이 특히나 부담스러워 했던 것 같다. 그 동생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름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다솔이처럼 효진이를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도저히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나도 역시 효진이처럼 변명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간다고 하지만, 정상인이 장애인의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장애인 동생과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알게 됐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전철 타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승강장에서 폭이 10cm나 될까, 그곳을 건너는 것이 너무 힘들더란다. 더 힘들었던 것은 소설 속의 효진이처럼 자신을 챙겨 주는 이에게 어쩔 수 없이 더 의존하게 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심리 상태 역시 대처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솔이의 엄마나 다솔이 담임선생님처럼 몸이 불편한 친구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심적으로 괴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야말로 끝이 없는 봉사와 희생정신이 없다면 애당초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던 게 아닌가 많이도 고민했던 시절이다.

 

그런 경험이 뇌리에 각인되어서 그런지 어린이 문학이라는데, 읽는 데 시간이 제법 많이 걸렸다. 몇 장을 읽고 나서 책장을 덮었다가 다시 한참 뒤에 다시 읽고를 거듭했다. 몸이 불편한 친구를 도와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스트레스로 장염을 앓다가도, 효진이를 생각하면 또 미안해지곤 하는 다솔이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절절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나도 그랬었으니까. 아마 감정이 잘 훈련된 어른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만, 어린이기 때문에 삐지거나 화가 나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바로 분출하는 장면도 볼 수가 있다. 모든 것을 이룬 나이가 아니라, 성장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배우는 과정을 이상권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 중의 하나는 학기 초에 누가 과연 효진이의 도우미를 할 것인가를 두고 메신저로 토론하는 장면이었다. 어른들처럼 반장이라는 자신들의 대표를 뽑는 선거도 하고, 토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방법이 메신저라는 점이 참 신기했다. 확실히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는 다르구나. 누구나 커가면서 부모님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시시콜콜히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대화도 뜸해지고 비밀이 많아지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효진이를 돌보는 다솔이처럼 특수한 상황에 있는 친구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어른/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말이 자기의 예상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말해봤자 아무 소용없구나 하는 마음에 속으로 삭여 버리지 않을까. 이것도 어느 의미에서 본다면 성장통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좋게 끝나 버리는 해피엔딩보다, 갈등해소를 위한 관계의 전진을 상징하는 오픈엔딩이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