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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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상에 실리는 책에 대한 정보를 유심히 지켜 보는 편이다. 이번 긴 연휴 때에는 어떤 신문(개인적으로 신문으로 생각하지 않는)에 소개된 마스다 미리 그리고 제목도 잃어버린 만화(미메시스 출간)에 대해 알게 됐다. 보통 책을 사서 보는 편인데, 굳이 만화라면 사서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 걸까. 게다가 때마침 장난감/도서관에 장난감과 책을 반납하러 갈 일이 있어서 마스다 미리의 <주말엔 숲으로>가 있는지 검색해 봤다. 다행히 책이 있었고, 아직 누가 빌려가지 않아 바로 빌려볼 수가 있었다. 만화는 아무래도 쉽게 볼 수 있으니 내친 김에 몇 권 더 빌렸다. 새로 생긴 도서관이라 그런지 책의 상태가 양호하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 책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애용해서 그런지 너무 낡고 상태가 좋지 않아 빌려다 보기가 좀 그렇더라.

 

서설이 길었다. 그렇게 어제 빌린 책을 오늘 오후에 읽었다. 전투육아에 지친 몸을 이끌고 드러누었지만 쉽게 잠은 오지 않았고, 이럴 순간이야말로 마스다 미리 작가의 만화를 만날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친 몸을 이끌고 어제 빌린 책가방을 찾아 나선다. , 여기 있구만. 책장이 휘리릭 넘어가기 시작한다.

 

일본 작가가 그린 만화이니 당연히 배경은 일본, 그리고 우연히 당첨된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세워둘 주차공간이 없어 시골로 가서 살기로 작정한 삼십대 중반의 싱글 하야카와 씨와 그녀의 친구들인 세스코와 마유미가 등장한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되게 솔직하다. 타인에게 절대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일본인들의 심리가 보이는가 하면(심지어 친구들 사이에서도), 친구 집에 가면서 항상 무언가 선물로 들고 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보니 회사에서도 일본 손님들이 올 적에 양갱이니 화과자 같은 소소한 선물들을 사가지고 와서 직원들에게 돌린 기억이 난다. 그렇군.

 

주인공 하야카와 씨는 시골에 살면서 전혀 시골에 동화되지 않은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 굳이 시골에 왔다고 해서 채소며 먹거리들을 직접 재배하지 않고, 도시인의 생활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한다. 맛난 것들은 택배로 시켜 먹고, 도쿄에서나 먹어볼 수 있는 디저트 따위는 세스코와 마유미 양이 차례로 공수해준다. 게다가 계속해서 주말마다 방문하니 외로울 짬도 없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기모노 입는 법이나 중학생을 지도하는 과외도 하고 바쁘다 바빠. 주말에 들른 세스코, 마유미와 함께 산에 오르기도 하고 호수에서 카약(나도 카약을 좋아해서 그런지 정말 부러웠다)을 타기도 하니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그렇게 유유자적한 시골 마을의 삶이 하야카와 씨의 일상이라면, 도시에서 부대끼며 사는 싱글 여성들의 이야기는 세스코와 마유미가 맡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사소한 일로 타인에게 상처 받기도 하고, 또 친구에게 위로도 받으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여성 제위의 이야기가 담백하게 다가온다. 마스다 미리 만화의 핵심 중의 하나는 그녀들이 일상에서 겪은 하지만 차마 타인에게 절대 하지 않을 속마음을 조금씩 열어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묻는 것만 바로 대답해 주면 될 텐데 굳이 장황하게 모두 알려 주려는 직장동료에 대한 불평이라든지, 길에서 부딪힌 남자가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 앙심을 품고 복권을 모두 그 남자가 확 죽어버리라는 뜻에서 연달아 4자가 들어가는 소심한 복수를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그래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하며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공감 포인트를 작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 양반 아주 선술세 그래.

 

그녀의 그림체는 화려하거나 정교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대충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녀의 만화/글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진짜 스토리가 진하게 배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도 먹히는 게 아닐까. 이 책만 하더라도 2012년에 나왔는데 내가 본 판본까지 해서 무려 13쇄나 찍었다니 말이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이야기들은 아마 비슷한 모양이다.

 

굳이 한 가지 흠을 잡자면, 하야카와 씨의 멘토 같은 역할이다. 물론 작가 마음대로 그리는 만화니 뭐라 할 순 없겠지만 네 페이지 정도 되는 만화의 전반부에서 먼저 산 속 혹은 시골마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스코와 마유미 양이 버거운 도시생활을 하다가, 멘토 하야카와 씨의 말을 떠올린다는 설정 말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 부분이 나는 좀 불편하더라. 바쁘게 지나가는 삶 가운데 그렇게 심오(?)하게 사유하고 연관지을 수 있는 여유가 있나 하고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아마도 난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공감할 수 없었겠지.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지금 이대로 괜찮을 걸까?><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을 연달아 읽고 있다. 우주정복이나 떼돈을 벌어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거창한 이야기 대신 연애와 결혼 그리고 삶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주제가 마음에 든다. 이렇게 계속해서 읽다간 어쩌면 나 그녀의 팬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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