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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소설 ㅣ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이제창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12월
평점 :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그 가운데에서 바로 서는 법에 혼란을 느꼈다. 어디서 내가 '나'일 수 있으며 내가 '나'이려고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생각했다. 목소리를 높이고 내 색깔을 드러낼 때 나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으며, 묵묵하고 순할 땐 쏟아지는 탁한 이야기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언젠가부터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의 방향은 옳은 것인지, 다른 이에게는 철없게 보일지도 모를 이 질문의 바탕에는 어쩌면 당연하게 거쳐야 할 인생의 형태는 아닐지 하고 생각하곤 한다. 누군가는, 언젠가는 겪게 되는 녹녹치 않던 인생이라는 벽에 부딪치던 순간을<방황하는 소설>에서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집 '크리스마스 타일'에 수록되었던 <월계동 옥주>에서 주인공 옥주는 가족도, 연인이었던 현우와의 결별 뒤 중국으로의 유학을 선택한다. 술에 취해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던 옥주에게 중국인 '예후이'의 도움을 받은 옥주는 그녀와 가까워진다. 성적도 좋고 동기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예후이는 자신을 포함한 여러 친구들에게도 중국어 과외를 하고 있었다. 그들과 친해진 옥주는 여름방학을 친구들과 예후이의 고향 집에서 보내기로 하지만 처음부터 여행은 순조롭지 않았다. 꽤 긴 시간을 가야 하는 불편한 기차 안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 생겨난 애정 관계에서도, 모두 자신의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나는 변화해 왔다. 인생이란 벽에 부딪혀 답답함에 주저앉아 있을 때도 난 항상 나의 사람들이 있어서, 누군가 내 옆에서 같이 걷고 있었고, 그러지 못할 때는 또 조용히 지금의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언제고 변할 수 있는 유연한 가능성과 희망을 안고, 나는 또 변해 갈 것이다.
"옥주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믿었던 관계가 이렇게 쉽게 어그러지는 것에."p156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불안을 경험한다. 만일 불안으로 고군분투한 적이 있다면, 불안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위압적일 수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긋이 사소한 일이라도 불시에 엄습하는 불안감을 촉발하며, 단순한 일상에서조차도 버둥거리게 만들 수 있다. 창작과 비평 201호에 실렸던 김지연 작가의 <먼바다 쪽으로>의 주인공 현태도 심각한 불안 증세를 가지고 있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집에서 담배를 피우고 크게 소리 내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던 현태에게 종희는 아파트 사람들이 우릴 싫어한다며, 특히 아랫집 남자가 우릴 죽일 거라며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때는 코웃음 치던 현태는 어느 사건을 계기로 아랫집 남자가 정말로 자신을 죽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도망치듯 시골에서의 생활을 하게 된다.
"돌아보면 꾸준히 나빠지는 선택만을 해 온 것 같았다."라는 종희의 말처럼 불시에 찾아온 불안에서 시작된 선택은 평범했던 삶을 서서히 무너뜨렸다. 오늘도 그거 그런 평범한 하루일 거라는 믿음이 무너지던 날.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았던 흔한 일상은 불안정한 삶으로 바뀌어 있었다.
"현태의 불안 증세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종희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애초에 거짓말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아니, 그건 농담이었다. 매일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현태에게 거실에서 쿵쿵 뛰며 게임을 하는 현태에게, 주말이면 기타를 치는 현태에게, 아파트 사람들이 다 우릴 싫어해, 특히 아랫집 남자가 우릴 죽일 거야,라고 말한 것뿐이었다." p174
최근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수록되었던 <파종>에는 자신의 딸 소리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소리에 불안해하는 주인공. 학대하는 아버지에게서,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자신을 보살펴주던 이제는 세상에 없는 오빠의 기억을 떠올린다. 남편과 이혼 후 갈 곳 없는 자신을 아무런 말 없이 받아준 오빠가 가꾸던 텃밭에서 세 사람의 따뜻했던 추억은 글을 읽은 나에게도 잔잔히 스며들었다.
"그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소리가 아이답지 않게 아무것도 조르지 않고 바라지 않는다고 그녀가 자랑하자 그는 말문을 잃었다. 그러더니 소리에게 물었다. 소리는 뭘 먹고 싶어? 소리는 뭘 하고 싶어? 아무거나 괜찮아. 소리가 대답하면 아니, 소리가 진짜 먹고 싶은 거,라며 소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무거나는 답이 아니야, 소리야. 그는 그렇게 말했다." p236
인간의 방황의 언어를 모른다는 것은 '갈대와 사람이 흔들리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옷을 입은 채 바닷물에 빠지는 것도 인생이라며, 마음속에 금기를 갖지 말라 하는 그다음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요하고 심심한 시간에 폭력을 더해 그것을 거저 타파의 대상으로 여기며, 휴대폰을 꺼내어 무언가 찾곤 한다.
어쩌면 우리는 두 가지 오해 속에서 점점 외롭고 우울해지는 것 아닐까. 할 일 없이 심심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닌, 무언가 하고 있는 게 맞다는 오해. 또 기쁨과 행복만 존재하는 것이 완벽한 마음이라는 오해.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현명한 방법이긴 하지만, 길을 잃는 것 또한 길을 찾는 방법이라는 걸 우리는 잊고 사는 듯하다. 휴대폰만 있으면 누구나 갈 수 있지만, 모두가 모를 때 나만이 아는 그 길은 오직 경험으로 찾게 되는 것 아닐지. 길을 찾는 시간 속에서 길을 잃는 시간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그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