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분실물센터
브룩 데이비스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명세를 타지 않은 새로운 작가의 글을 읽는다는 건, 즐거울 수밖에 없다. 보통의 경우 그 작가의 스타일이나 문체, 기법 등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도전하기 때문에 신천지를 개척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브룩 데이비스의 글은 나에게 매력적이었다. , 책을 읽기 전에 트위터로 그녀의 계정에 올라온 사진들을 검색해 봤는데 재밌는 사진들이 많았다. 책이 좋아 쓰는 것 말고도 서점에서 다른 사람의 글을 파는 일도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혹시 서점에서 자신의 책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홍보하는지 궁금하다.

 

<Lost & Found>라는 원제를 가진 브룩 데이비스의 <밀리의 분실물센터>의 주인공은 바로 7살 먹은 밀리 버드라는 꼬마 소녀다. 밀리의 삶은 기구하다는 레테르를 붙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버지는 암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시고, 홀로 남은 엄마는 밀리를 여성 속옷매장에 밀리를 버려두고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소설의 초반에 밀리가 자신이 목격한 죽음을 기록하는 데스노트에 아버지의 이름을 올린 것을 보고, 한동안 고개가 갸웃거려졌었는데 소설이 진행되면서 바로 이해가 됐다. 아버지도 없고, 엄마도 없는 꼬마 소녀가 과연 이 험난한 세파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 소설은 전형적인 로드 무비의 성격을 띠고 있다. 혹은 어려서 본 만화 <엄마찾아 삼만리>의 스토리라인라고나 할까. 소설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이 왜 밀리의 엄마는 밀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떠났을까라는 점이었는데, 작가가 그 점은 끝까지 속이 후련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솔직히 꼬마 소녀가 혼자 힘으로 광대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횡단한다는 건 누가 봐도 가당치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브룩 데이비스 작가는 그녀의 사이드킥으로 각각 배우자를 잃은 홀아비 터치 타이피스트 칼(87)과 성격이 괴팍한 과부 애거서 팬서(82)를 배치했다. 밀리의 이웃에 사는 애거서의 동기유발이 더 설명이 가능한데, 아무래도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 든 캐릭터가 그리고 각자 누군가를 잃었다는 점에서 밀리를 도와야겠다는 개연성 성립에 그럴싸하지 않나 싶다. 그렇게 브룩 데비이스가 창조한 핍진성의 서사 구조는 나름대로 소설의 중반까지는 그런 대로 순기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부터 너무 많은 우발적 요소들과 사건들이 개입하면서 급속하게 흥미를 떨어뜨린다.

 

소설을 차분하게 다 읽고 나서, 작가의 후기까지 다 읽은 다음에야 비로소 왜 그렇게 작가가 소설에서 죽음이라는 주제에 집착하는지 깨닫게 됐다. 브룩 데이비스는 밀리를 자신의 얼터 이고(alter ego)로 삼아,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사실에 대한 하나의 미안한 마음을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겨우 일곱 살 먹은 꼬마 소녀가 끊임없이 모두가 죽을 거라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외치고 다니다니.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면서도, 어느 순간에라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을 각성시키는 밀리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을까.

 

저마다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를 가진 밀리, 터치 타이피스트 칼 그리고 버럭쟁이 애거서 팬서 삼각 편대를 중심으로 한 소설의 기본구성은 흥미롭다. 어느 특정인의 시선이 아닌 균형 잡힌 시선으로 소설을 기술하겠다는 신진작가의 기백을 엿볼 수 있다. 문제는 주인공에 대한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인데, 칼이나 애거서의 그것에 비해 밀리의 이야기에 힘이 부치는 느낌이다. 어쩌면 밀리가 아이라는 점까지 고려한 작가의 의도였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소설에서 가장 재밌으면서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밀리 일행의 중간기착지였던 캘굴리에서 주정뱅이 삼총사와 한판 붙은 액션 활극 파트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것 역시 작가가 구상한 생소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재미의 일부분일지도. 엔딩 부분도 너무 급하게 처리되면서, 영화 <Birdy>의 결말을 연상시킨다.

 

소설을 읽으면서 오래전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광대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누비다가 우연히 들른 간이매점에서 불타오르는 석양을 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상에 젖어 끼니를 때우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다던 밤하늘의 남십자성도. 젊음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되던 그 시절에, 꼬맹이 밀리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을지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vizell 2015-05-0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까 하고 고민했었는데 읽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