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강들 런던의 강들 시리즈
벤 아아로노비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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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호의 달>을 먼저 읽고 나서 바로 역주행에 들어갔다. 어떤 책과 만나게 될 때, 좀 기대를 접어야 하나.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만난 책이 너무 재밌어서, 전작까지 찾아 읽게할 정도의 작가라면 실력이 대단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에겐 벤 아아로노비치가 그랬다. <소호의 달>을 읽고 나가, 당장에 전작인 <런던의 강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소호의 달>을 읽으면서 좀 이해가 가지 않고 이야기의 맥락을 잘 파악하지 못하던 부분들이 시리즈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런던의 강들>을 읽으면서 어디서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을 딱딱 끼워 맞추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고나 할까. <런던의 강들>에서는 어머니 템즈와 아버지의 템즈 간의 갈등을 필두로 해서(이야기의 순서는 좀 바뀌었으니 이해해 주시도록), 우리의 혼혈 주인공 피터 그랜트가 어떻게 해서 디시뮬로 사건의 최초 목격자라고 할 수 있는 니컬러스 월페니라는 이름의 유령을 만나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지 그리고 자신의 스승이자 마스터라 불리는 토머스 나이팅게일 경감에게 발탁되어 소위 ‘폴리’라 불리는 마법사 경찰 조직에 입문하게 되는지 등의 과정이 상세하게 진행된다. 그저 독자는 자신을 내려놓고,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벤 아아로노비치가 잘 알아서 부드러운 독서의 항해를 시켜 주니 걱정 놓으시라.

 

텔레비전 드라마 판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벤 아아로노비치는 고수답게, 썰을 풀어내는 뛰어난 재간을 문학판으로 옮겨 시전해 보인다. 우선 기본은 21세기 영국 수도경찰국에서 마법사 경찰 조직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소재부터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게다가 디시뮬로라는 유령의 조종을 받아 얼굴까지 바꾸는 흑마술을 이용한 연쇄살인 범죄, 그것도 <펀치와 주디의 비극적 코미디>라는 잔혹한 내용의 인형극 내용을 그대로 현실 세계에서 재현해 내는 유령으로 추정되는 헨리 파이크의 뒤를 쫓는다는 것이 전체적 소설의 줄거리다. 거기에 우리의 초보 마법사 도제 피터 그랜트는 부지런히 마스터 나이팅게일로부터 진짜 마법사가 되기 위한 수련도 빼먹어서는 안된다. 거기에 어머니 템즈의 구역인 런던을 넘보는 아버지 템즈와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다. 묘한 매력을 어머니 템즈의 딸 비버리 브록과 썸을 타는 피터 그랜트, 그리고 그런 그를 조종하려 드는 팜므파탈 같은 존재의 레이디 타이 같은 물의 정령들까지 등장하니 캐릭터만으로도 그야말로 풍년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마법 경찰의 기원이 되는 사람이 바로 근대 과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아이작 뉴턴 경이라니 놀랄 노자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가 발표한 <프린키피아>야말로 마법사들에겐 경전처럼 떠받들어진다고 했던가. 과학과 마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설정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과학이 이성과 계몽의 영역을 담당한다면, 마법 혹은 주술은 그 외의 영역을 담당한다는 주장이 자못 합리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아울러 나 같은 문외한 독자를 위해 런던 경찰청의 흑역사를 비롯해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런던 명소가 가지고 있는 디테일에 대해서도 풍부한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이 정도면 드라마 만들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작가가 예의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훗날 드라마될 거라는 예상을 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선수끼리 왜 이러시나.

 

<소호의 달>에선 일취월장하긴 했지만, <런던의 강들>에서 비로소 마법사의 도제로 업계에 입문해서 초보 기술을 배우는 피터 그랜트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기존 경찰 체계에 이미 진입해 있는 인물로서 해당 분야에 대해 날리는 블랙유머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시쳇말로 어쩔 수 없이 초보인 자신의 실수에 대해 쿨하게 인정하는 모습도 그렇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직까진 별 볼일 없는 마법이긴 하지만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나같이 귀찮은 사람이라면 라틴 어 공부나 마법 연습을 게을리 할 게 불 보듯 뻔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앞으로 계속해서 출간될 시리즈에서 활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일련의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헨리 파이크로 추정되는 유령 혹은 그를 조종하는 흑마술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주인공 피터 그랜트가 보여준 연역적 추리의 귀결은 놀라운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흔히 저지르게 되는 편견으로부터 혹은 확신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라는 작가의 경고장이다. 그 편견과 확신에서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 이 모든 사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란 말인가. 여기에 바로 해답이 숨겨져 있다. 모든 이야기는 <런던의 강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오페라하우스 폭동에서 정점을 찍는데, 의외로 후속작을 읽어서 그런 진 몰라도 김 빠진 콜라를 마시는 느낌이 들었다. 사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펀치 씨를 고대 론디니움까지 추적해서 처리하고, 엄마 템즈와 아빠 템즈의 중재에 나서 멋지게 처리하고 후속작에 등장할 바기나 덴타타의 희생자까기 심문한 다음 저자의 흥미진진한 시리즈 1탄은 막을 내리게 된다.

 

역자 후기를 읽고 나서, 공산주의자였다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벤 아아로노비치도 소설의 곳곳에서 약간의 시니컬한 면모를 보이게 된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되짚어 보니 이야기의 모티프를 오래된 잔혹인형극에서 출발시켰다고 추정되는 데, 고대설화와 런던이라는 지역적 특색을 가미하고 최후의 마법사 도제라는 주인공까지 등장시키느라 들인 공을 생각한다면 뜨거울 때, 달리는 드라마 스타일을 소설에도 제대로 적용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 출간된 나머지 소설들도 빨리 만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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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의 달 런던의 강들 시리즈
벤 아아로노비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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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번 추석 연휴 때, 아주 흥미롭고 재밌는 소설 한 편을 읽었다. 사실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월척이 얻어걸렸다고 해야 할까. 소설 제목에 등장하는 소호는 몇 번 가본 뉴욕에 있는 줄 알았는데 영국 런던이 원조인 모양이다. 때마침 추석 즈음해서 슈퍼문 구경도 한 차라 더 기분이 오묘했다.

 

우선 벤 아아로노비치는 영국 출신의 작가로 드라마 <닥터후>의 시나리오 작가란다. 사실 <닥터후>를 알지 못하니 패스, 그리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서 <런던의 강들>을 시작으로 해서 마법사 도제/경찰관 피터 그랜트가 등장하는 일련의 소설들을 발표하고 있다. 순서가 뒤바끼긴 했지만, 이번 주에 <소호의 달>을 너무 재밌게 보고 나서 바로 전작인 <런던의 강들>을 구해서 읽고 있다. 모름지기 소설 작가라면 독자로 하여금 이 정도 액션을 취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지금 부지런히 <런던의 강들>을 읽고 있어서, 영국 출신 재즈맨 아버지와 시에라리온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주인공 피터 그랜트(자신을 자꾸만 유색인종이라 해서 그 배경을 알 수가 없었다)가 전작에서 어떤 끔찍한 흑마술(디시뮬로)과 전쟁을 치러야 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후유증으로 2년 간의 순경 시절을 함께 했던 동료이자 어쩌면 썸타는 관계였을 지도 모를 레슬리 메이가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전작에서 어떻게 해서 피터 그랜트가 해가 갈수록 젊어지는 토머스 나이팅게일 경감의 마법사 경찰 도제가 되었는지 그리고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 경과와 더불어 자세하게 기술된 바 있다. 보통 10년 정도 걸린다는 도제 기간을 이 뛰어난 능력의 젊은이가 과연 얼마 만에 끝내게 될지도 자못 궁금하다. <소호의 달>에서도 여전히 룩스, 임펠로 그리고 스킨데레 정도의 마법 기술 시전능력을 깨우쳤으니 갈 길이 멀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피턴 그랜트는 영국 수도경찰국 경찰로 활동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다.

 

전작과의 관계는 이 정도로 마치고,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어떤 사건이 다루어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전작에도 잠시 등장했지만, 탁투스 디스비타이(반생명)인 재즈 뱀파이어와 소름 끼칠 정도로 잔혹한 키메라 혹은 바기나 덴타타라 불리는 연쇄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작에서도 지난 30년 간 비공식 헤로인 중독자로 살아온 재즈 연주자 리처드 ‘로드’ 그랜트(피터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곤 했었는데, <소호의 달>에서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더 자주 등장한다. 사실 재즈에 대해 잘 안다면 혹 할지도 모르겠지만, 재즈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인지라 역자의 주석이 없었다면 팻츠 나바로, 빌리 홀리데이 그리고 찰리 파커 같은 명사와 관련된 나같이 평범한 독자가 어떻게 알겠는가 말이다. 소설의 전개나 캐릭터 같은 문제는 번역서를 읽어도 문제가 없지만, 사건의 배경이 되는 소호의 다양한 디저트 카페나 퍼브 그리고 자잘한 식당 같은 이모저모나 재즈의 이런 디테일을 모른다면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이야기를 100%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어쨌든 희생자에게서 베스티기아(물리적 존재에 각인된 마법의 흔적, 피터 그랜트가 어떻게 해서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를 읽어낼 줄 아는 능력을 피터 그랜트는 전작에서 총상을 입어 부상에서 회복 중인 상관 나이팅게일 경감을 대신해서 일당백의 활약을 펼친다. 초보에서 진짜 주인공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흑마술의 희생자가 되어 브라이틀링의 집에서 칩거 중인 레슬리 메이도 자료 조사라는 특기를 발휘해서 주인공을 돕는다. 첫 번째 사이러스 윌킨슨이라는 색소폰 연주자에게서 바로 이 희미한 베스티기아를 발견하면서 발전하는 마법사 도제의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유능한 경찰이라면 모름지기, 희생자의 주변부터 조사해야 하는 법! 피터 그랜트는 죽은 윌킨슨의 집에 들렀다가 육감적인 미모의 여자친구 시몬 피츠윌리엄과 조우하게 된다. 전작에서도 어머니 템즈의 딸 비버리 브록과 썸을 타기도 했던 주인공은 이번 편에서는 아주 대놓고 연애에 나설 모양이다.

 

뛰어난 재능의 건강한 재즈맨들이 이유 없이 죽어 나가는 상황과 ‘혼인용 연장’을 뜯긴 사내들을 사냥하는 바기나 덴타타 간의 상호 연관관계를 짚어 나가던 피터 그랜트는 이제는 마법이 모두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해온 현대 영국의 흑마술사의 제자들이 존재하면서 일단의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가정을 세우게 된다. 자신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시몬과 격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제 막 배운 마법 기술들을 동원해서 키메라의 습격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등의 위기탈출의 순간도 연달아 등장한다.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터지는 와중에서도, 나이팅게일 경감은 도제의 라틴어 연습과 각종 마법 기술을 훈련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는 격랑의 시대를 헤쳐나온 구시대 꼰대의 표상이라고나 할까.

 

벤 아아로노비치는 드라마 작가답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법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일단 마법사 경찰이라는 소재부터 흥미를 끌어당기지 않나. 현대과학 맹신의 시대에 마법이라니!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말끔하게 해결되는 법이 있었던가. 그러니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마법과 흑마술이 빈틈을 헤집고 세상의 빛으로 탈출해 나오는 장면도 어쩌면 낯설지 않을 것 같다.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제작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현란한 미국 드라마와 달리 좀 진중하면서도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는 영국식 드라마는 또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전작에 비해 재즈라는 매혹적인 요소와 풍부하게 가미된 성적인 요소로 훨씬 재밌어지긴 한 것 같다. 2011년에 <런던의 강들>과 <소호의 달>이 나온 이래 <언더그라운드의 속삭임>과 <브로큰 홈즈>가 연달아 발표됐는데, 올해 11월에도 시리즈 신작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이번 <소호의 달>의 흑마술사는 피터 그랜트가 쫓는 희미한 베스티기아의 흔적만 남겨 놓았을 뿐이다.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지만 도대체 1945년 1월의 에터스부르크에서 어떤 일이 생겼는지에 대해서도 벤 아아로노비치 작가는 궁금증만 증폭키시고 있다. 앞으로 아아로노비치의 이야기 보따리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술술 풀려나올지 그의 팬이 된 초보 독자는 그저 기다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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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세계문학의 천재들 2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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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미로>란 책이 나왔다고 해서 대책 없이 그 책을 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독일 출신의 작가 발터 뫼어스가 <미로>에 앞서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에서 벌어지는 린트부름 요새 출신의 공룡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등장하는 전작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퀄부터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찌된 건지 집에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존재하고 있었다. 김영하 작가가 최근 강연에서 독서는 모름지기 가지고 있는 책을 읽는 것이라고 했던가, 해당 작가의 고언을 난 충실히 따랐다. 사실 판타지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판타지 스타일이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책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전혀 손색이 없는 그런 책이었다. 지난 주말에 집어 들었는데, 가히 단박에 읽을 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일 작가 발터 뫼어스가 우리나라 시중에 도는 무협지 시리즈를 독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해당 장르를 쏙 빼닮았다. 작가가 후기에서 남긴 것처럼 이 책은 방대한 분량의 미텐메츠가 쓴 <어느 감상적인 디노사우루스의 여행기>에서 편집 발췌한 부분이란다. 그러니까 오래 전에 사라진 비전을 어찌어찌해서 얻어 후대에 남겼다는 것이리라. 시작부터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차모니아 대륙의 오지 린트부름 요새 출신의 견습작가로 이제 겨우 77살난 젊은 디노사우루스의 생과 사를 가르는 기상천외한 모험담은 책을 잡아든 독자의 염통을 쫄깃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무협지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린트부름 요새에서 꽃양배추를 재배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던 단첼로트 대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에 따라, 어쩌면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을지 모를 그런 절대 원고를 수중에 품고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으로 떠나는 우리의 주인공 미텐메츠는 도제 생활에서 막 벗어난 풋내기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우리의 풋내기 주인공 미텐메츠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름’을 깨닫게 되고, 그가 책쟁이들을 열광 속으로 몰아넣을 가상의 공간 부흐하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모험을 거쳐 위대한 작가가 되는 과정을 발터 뫼어스 작가는 자신이 직접 그렸다는 삽화까지 더해 완성해냈다. 모름지기 위대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 체험은 경험해야 한다는 작가의 묵시일까. 현대 출판 문학계를 아우르며, 고전 작가들의 이름까지 현란한 워드플레이로 변형해 가면서 독창성을 자랑하는 이런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도제로서 단첼로트 대부에게 차모니아 문학에 대해 비교적 탄탄한 기초 지식을 키우긴 했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소심한 공룡 미텐메츠는 모든 책쟁이들이 꿈꿀만한 도시 부흐하임에 도착해서 책과 문학에 얽힌 현실을 대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면모를 보여준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작가의’ 성장소설로 봐도 좋을 듯 싶다. 미텐메츠는 본인이 원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가진 절대 원고 때문에, 이 또한 전래의 비전을 가진 주인공이 핍박당한다는 무협지의 설정과 아주 유사하다, 부흐하임의 실제적인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 상어구더기 피스토메펠 스마이크와 문학 에이전트 하르펜슈톡의 흉계에 빠져 부흐하임의 도저히 헤쳐 나올 수 없는 미로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세상사 모두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우리의 주인공 미텐메츠는 도저히 살아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지하 미로에서 책 마니아 부흐링 족과 전설적인 캐릭터 그림자 제왕, 호문콜로스를 만난 비로소 작가가 되기 위한 특별한 수련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개인적으로 또 한 가지 마음에 들었던 점 하나는, 주인공 미텐메츠가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닌 아주 평범한 공룡이라는 설정이었다. 역설적으로 이런 위험한 모험을 마친 캐릭터라면 마땅히 능력자의 반열에 올라하겠지만.

 

미텐메츠를 위협하는 캐릭터 중에 특이할 만한 존재로 부흐하임에서 높은 가격을 쳐주는 소위 <황금 목록>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책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책 사냥꾼들이 있다. 그나마 노루개 출신의 공공의 이익을 위한 책사냥을 하는 레겐샤인 같은 캐릭터도 있지만 오로지 금전적 이익만을 위해 뛰는 롱콩 코마 같은 악질적인 책 사냥꾼의 존재도 눈에 띈다. 발터 뫼어스 작가는 소설의 초반부터 세밀한 서사적 장치는 물론이고, 한 단어로 허투루 배치하지 않는 정밀한 플롯도 빼놓지 않는다. 소설의 초반 시골 촌놈 미텐메츠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부흐하임에 와서 만난 슈렉스 족 출신 고서적상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외눈박이 부흐링 족과 우연히 만나 그동안 자신이 단첼로트 대부에게 배운 문학적 지식을 되새김질하는 오름 배틀은 또 어떠한가. 역시 핵심은 모두를 공포에 몰아넣는 그림자 제왕 호문콜로스가 뚱보 공룡 미텐메츠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정적 도움을 주며, 그림자 성으로 인도해서 위대한 작가 탄생에 일조한다는 설정이었다.

 

그림자 성에서 작가 수업에 앞서, 호문콜로스의 도서실에서 미텐메츠가 평소에 눈여겨 보지 않았던 책들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는 대목은 정말 최고였다. 과연 우리의 독서가 그러할까. 또다른 수업 과정으로 진정한 공포는 자기 자신 속에 있다는 호문콜로스의 말은 계시처럼 다가왔다. 소설의 악당 역을 맡은 피스토메펠 스마이크는 아예 예술 자체와 문학의 존재 자체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했다면, 디노사우르스 미텐메츠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어내 전달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공존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는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발터 뫼어스 작가는 판타지와 유머, 독창적 상상력 그리고 모험담이 난무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이런 진중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잊지 않고 묵묵하게 수행한다.

 

피스토메펠 스마이크와 하펜슈르톡 그리고 다른 조력자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피조물 호문콜로스가 자신을 만들어낸 창조주를 심판한다는 설정 또한 전설의 재현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까지 상상해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괴물들의 존재는 모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조합이지 않은가. 다만 누가 더 정교하게 다듬어 내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미텐메츠와 똑같은 이름의 작은 부흐링의 등장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역시 창작의 과정은 창조자와 그 창조물/책을 감상하는 이들 간의 상호작용이 필수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아직 작품 발표도 하지 않은 미래의 작가에게까지 이런 영예를 주는 부흐링 족이야말로 현대 독자들이 지향해야할 모습이 아닐는지.

 

<꿈꾸는 책들의 도시>와 함께 한 지난 5일은 정말 즐겁고, 스릴 넘치는 시간들이었다. 다시 한 번 이런 기회를 준 발터 뫼어스 작가에게 감사를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 따끈따끈한 더 센 놈을 만날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

 

[리딩데이트] 2015년 9월 19일~23일 오후 12시 53분

 

[뱀다리] 올해 만난<닥터 코페르니쿠스>에 이어 두 번째로 멋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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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창비세계문학 18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세일 옮김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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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독서 체험이었다. 앤디 밀러의 <위험한 독서의 해>라는 책에 소개된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덕분에 읽게 된 <개의 심장>.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꼭 문학과 지성사 판으로 읽어 싶었으나, 당장 구하지 못한 관계로 ‘그럼, 꿩 대신 닭이다’라는 심정으로 구해서 읽은 책이다. 희대의 독재자 스탈린과 맞장 뜬 것으로도 유명한 미하일 불가코프의 책을 이제야 읽게 되다니 아쉽기도 하면서 다행이랄까.

 

무작정 파블로프의 개를 떠올리게 하는 <개의 심장>은 시대를 앞선 SF 스타일의 책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비루한 떠돌이 개 샤리끄는 어느날,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맛난 소시지를 건네주는 신사에게 반해 따뜻하고 평안한 안식처를 얻게 된다. 물론, 이 평범하지 않은 개의 운명을 바꾸게 될 대실험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죽은 28세 남자의 뇌와 고환을 샤리끄에게 이식하는 수술이었다. 닥터 프랑켄슈타인처럼 필리쁘 필리뽀비치와 닥터 보르멘딸리는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이 수술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맙소사, 지금으로부터 백년 전인 1926년에 이런 문학적 상상을 할 수가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 샤리꼬프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개, 아니 사내는 인간의 모습으로 진화해 가면서 다양한 사건사고를 일으키기에 이른다. 아무 데나 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날려 버리고 소변 내갈기기는 기본이다. 인간과 개의 특성이 만났으니 너무 당연한 거 아니냐고? 그저 그런 SF 소설이면 좋겠지만, 미하일 불가코프는 그렇게 단순한 작가가 아니었다. 소설의 이면에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기존의 농노제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급속한 체제 전환을 이루고 있던 러시아 사회와 인민들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비판이 숨어 있다.

 

샤리꼬프는 거리를 떠돌던 시절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도 개 시절의 걸걸한 입담과 못된 손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그러니 소위 엘리트 계급인 필리쁘 필리뽀비치와 닥터 보르멘딸리가 얼마나 놀라겠는가. 설상가상으로 샤리꼬프는 필리쁘 필리뽀비치와 앙숙인 주택관리위원회의 시본제르와 어울리면서 자신의 창조주에 대한 반항을 서슴지 않는다. 피조물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날 갑자기 혁명으로 사회와 체제가 급변했다고 해서, 수백 년간 피지배계급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습성이 단박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르주아라는 표현이 욕설에 버금간다는 불가코프식 블랙유머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공산주의 치하에서 생존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 지도.

 

자 이제 소설 진행의 수순은 샤리꼬프의 극단적 일탈이 필리쁘 필리뽀비치의 통제를 벗어나길 기다리는 것 뿐이다. 무지한 프롤레타리아의 선동 역을 맡은 시본제르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체계적인 마르크스주의 교육을 받지 못한 샤리꼬프를 선동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짜깁기한 정보를 제공해서 창조주 필리쁘 필리뽀비치의 지시를 거부하고 사사건건 대결하게 만드니 필리쁘 필리뽀비치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결국 창조주는 다시 한 번의 대수술을 집도하게 된다.

 

200쪽 남짓한 짧은 소설이지만, 역시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답게 미하일 불가코프는 소비에트 사회가 빚어내고 있던 1920년대 풍경에 대한 스케치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소비에트 혁명을 인간과 동물 간의 실험적 이식이라는 의학적 접근 방식을 통해 비판하는 장면은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선진 자본주의 시스템과 부르주아 계급의 부재 속에 탄생한 러시아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었던 당시 혼란스러운 시대상은 개에서 인간으로 거듭난 샤리꼬프의 운명과 다르지 않게 그려진다. 필리쁘 필리뽀비치의 재수술로 인간에서 다시 개가 된 샤리끄가 여전히 인간이었던 시절처럼 지껄여대지만 아무도 그를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장면에서는 장차 전체주의 경찰국가로 변모하게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예언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 한편으론 당장의 사회주의 시스템이 인민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다시 자본주의로 돌아가 봐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하나의 프로파간다로도 읽힌다.

 

<개의 심장>을 인상적으로 읽고 나서, 미하일 불가코프의 대표작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구입했다. 이 책이 과연 앤디 밀러의 경우처럼 나의 삶에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전해줄지 아니면 여타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독서체험이 될지 자못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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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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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가을 호에 실린 리뷰를 보고서 장강명 작가의 신작 <한국이 싫어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부터 도발적이지 않은가. 한국이 싫어서, 무슨 행동을 하려고 하는데 그 이유가 한국이 싫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 계나는 서울 아현동에 살며 재개발 신화를 기다리는 가정에서 세 자매와 복닥거리며 홍대를 나와, 증권회사 다니다 호주 행을 결심한다. 이유는 제목 그대로 한국이 싫어서란다. 사방에서 아우성이다. 먹고살기 힘들다, 대학 가기 힘들다, 그렇게 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한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21세기 한국 사회의 성공 사다리 법칙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인턴 자리마저 상층부 카르텔 자녀들이 싹쓸이하는 마당에, 지잡대를 나와 내세울 것 없는 스펙을 가지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한국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암담한 전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 계나는 한국을 버리고 호주로 떠났다.

 

장강명 작가는 주인공 계나가 호주로 떠나야 하는 절실한 이유들을 아주 정교하게 설치했다. 사실 갑갑한 현실은 계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2,500만 월급쟁이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문제다. 직장에서 합리적이지 못한 명령에 따라야 할 때도 있고, 인사고과를 담당하는 직장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기도 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스트레스의 벽은 견고하기만 하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문제는 아무리 필사적인 노력을 해봐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계나는 본능적으로 그 점을 깨닫고, 시원하게 호주 이민을 결심한다. 단돈 2,000만원을 들고 젖과 꿀이 흐를 것으로 생각되는 땅 호주에만 가면 만사형통되리라는 희망을 안고서. 과연 계나에게 호주는 그런 땅이었을까.

 

호주에 상륙하면서부터 유학생 신분이라기보다 워홀러에 가까운 그리고 그럴싸한 일자리를 잡기 위한 언어 실력조차 구비되지 않은 후진 발음으로는 언감생심이다. 게다가 한 푼이라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셰어하우스에서 각양각색의 인종들과 뒤엉켜 사는 삶은 계나의 환상을 처절하게 박살낸다. 과연 계나가 헬조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고생을 해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물설고 낯선 호주가 그녀를 반겨 주었을까? 수많은 이민자들이 낯선 땅에서 성공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고생을 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남보다 덜 자고, 덜 먹고, 덜 쉬면서 그렇게 악착같이 고생하면서 이룬 성취가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었을지 나는 묻고 싶다. 어떤 점에서 보면 계나는 남들처럼 평범한 연애를 하고, 데이트와 문화생활을 즐기는 소중한 일상이 그리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절대 그것을 범인(凡人)에게 허용하지 않았다. 호주에 가서도 회계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갖기 위해, 각고를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화를 받들고 신대륙에 상륙한 그녀의 선배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바로 이 지점에서는 난 묻고 싶어졌다, 차라리 그런 노력을 한국에서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물론 그런 가정은 무의미하다. 애당초 비교 가능한 가시적 행복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오랜 기간을 함께 보낸 지명이 애절하게 계나를 원해도, 계나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4년간의 천신만고 끝에 밑바닥 쉐어러에서 랜드로드 혹은 마스터의 자리에 올라간 그녀의 삶은 미국 출신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한 때의 워너비 엘리의 일탈적 행동 때문에 엉망이 되어 버린다. 타인의 삶을 그렇게 망가뜨려 놓고도, 전혀 미안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엘리의 모습에서 서양인들의 이기적인 합리주의 정신의 본질이 언뜻 비치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착취당하던 이가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지만, 그 과정이 비합법적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보상도 없이 맨 손으로 쫓겨나야했다는 설정이 공수래공수거 인생의 교훈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이미 신문 지상과 블로그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호주 워홀러들의 생생한 사례가 책에 담겨 있어 궁금했는데, 책의 말미에 작가가 호주 생활을 직접 체험한 이들과 인터뷰를 통해 사례를 발굴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한국이 싫어서>에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십대 청춘들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기 혹은 탈출기록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예리하게 저격하는 장면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영어를 하지 못하는 한국 출신 워홀러들이나 다른 여타 동양인들의 처지는 도긴개긴이지만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식 인종차별주의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한국에서 옥외에서 맥주 한 캔 마시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호주에서는 명백히 불법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나와 제인이 신세한탄을 하며 호주 생활 초반에 음주를 하는 장면도 단순무식함에서 비롯된 사소한 위법행위였다고 했던가. 그렇게 시작된 사소한 행위들이 창대해져서 결국 계나의 호주 생활을 송두리째 날려 버릴 수도 있는 그런 태풍이 될 뻔했다.

 

장강명 작가가 <한국이 싫어서>의 전개 방식을 계나가 마치 친구들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선택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것은 마치 선생님이 학생들을 계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는 이런저런 체험을 해봤다네 친구라며 평범한 술자리에서 나누는 한담처럼 독자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런 점이 작가의 접근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계나는 한국 사회에 부조리한 시스템에 맞서 싸우는 방식보다, 차라리 다른 시스템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탈출을 도모했다. 그런데 예의 시스템은 단기간의 학습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출생과 성장 그리고 교육이라는 장기간의 프로젝트라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계나는 한국에서도 이방인이었지만, 호주에 가서도 영원한 이방인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느 시기의 특정한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귀화인이 어떻게 그 지위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작가는 그래서 계나가 아니 모든 이는 모름지기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설교로 소설의 말미를 뭉뚱그렸는지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사회가 정말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맴돌았다.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도 믿지 않지만, 모두가 미래를 두려워하며 사는 사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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