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심장 창비세계문학 18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김세일 옮김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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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독서 체험이었다. 앤디 밀러의 <위험한 독서의 해>라는 책에 소개된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덕분에 읽게 된 <개의 심장>.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꼭 문학과 지성사 판으로 읽어 싶었으나, 당장 구하지 못한 관계로 ‘그럼, 꿩 대신 닭이다’라는 심정으로 구해서 읽은 책이다. 희대의 독재자 스탈린과 맞장 뜬 것으로도 유명한 미하일 불가코프의 책을 이제야 읽게 되다니 아쉽기도 하면서 다행이랄까.

 

무작정 파블로프의 개를 떠올리게 하는 <개의 심장>은 시대를 앞선 SF 스타일의 책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비루한 떠돌이 개 샤리끄는 어느날,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맛난 소시지를 건네주는 신사에게 반해 따뜻하고 평안한 안식처를 얻게 된다. 물론, 이 평범하지 않은 개의 운명을 바꾸게 될 대실험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죽은 28세 남자의 뇌와 고환을 샤리끄에게 이식하는 수술이었다. 닥터 프랑켄슈타인처럼 필리쁘 필리뽀비치와 닥터 보르멘딸리는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이 수술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맙소사, 지금으로부터 백년 전인 1926년에 이런 문학적 상상을 할 수가 있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 샤리꼬프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개, 아니 사내는 인간의 모습으로 진화해 가면서 다양한 사건사고를 일으키기에 이른다. 아무 데나 침을 뱉고, 담배꽁초를 날려 버리고 소변 내갈기기는 기본이다. 인간과 개의 특성이 만났으니 너무 당연한 거 아니냐고? 그저 그런 SF 소설이면 좋겠지만, 미하일 불가코프는 그렇게 단순한 작가가 아니었다. 소설의 이면에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기존의 농노제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급속한 체제 전환을 이루고 있던 러시아 사회와 인민들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비판이 숨어 있다.

 

샤리꼬프는 거리를 떠돌던 시절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도 개 시절의 걸걸한 입담과 못된 손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그러니 소위 엘리트 계급인 필리쁘 필리뽀비치와 닥터 보르멘딸리가 얼마나 놀라겠는가. 설상가상으로 샤리꼬프는 필리쁘 필리뽀비치와 앙숙인 주택관리위원회의 시본제르와 어울리면서 자신의 창조주에 대한 반항을 서슴지 않는다. 피조물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날 갑자기 혁명으로 사회와 체제가 급변했다고 해서, 수백 년간 피지배계급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습성이 단박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르주아라는 표현이 욕설에 버금간다는 불가코프식 블랙유머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공산주의 치하에서 생존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 지도.

 

자 이제 소설 진행의 수순은 샤리꼬프의 극단적 일탈이 필리쁘 필리뽀비치의 통제를 벗어나길 기다리는 것 뿐이다. 무지한 프롤레타리아의 선동 역을 맡은 시본제르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체계적인 마르크스주의 교육을 받지 못한 샤리꼬프를 선동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짜깁기한 정보를 제공해서 창조주 필리쁘 필리뽀비치의 지시를 거부하고 사사건건 대결하게 만드니 필리쁘 필리뽀비치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결국 창조주는 다시 한 번의 대수술을 집도하게 된다.

 

200쪽 남짓한 짧은 소설이지만, 역시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답게 미하일 불가코프는 소비에트 사회가 빚어내고 있던 1920년대 풍경에 대한 스케치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소비에트 혁명을 인간과 동물 간의 실험적 이식이라는 의학적 접근 방식을 통해 비판하는 장면은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선진 자본주의 시스템과 부르주아 계급의 부재 속에 탄생한 러시아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었던 당시 혼란스러운 시대상은 개에서 인간으로 거듭난 샤리꼬프의 운명과 다르지 않게 그려진다. 필리쁘 필리뽀비치의 재수술로 인간에서 다시 개가 된 샤리끄가 여전히 인간이었던 시절처럼 지껄여대지만 아무도 그를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장면에서는 장차 전체주의 경찰국가로 변모하게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예언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 한편으론 당장의 사회주의 시스템이 인민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다시 자본주의로 돌아가 봐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하나의 프로파간다로도 읽힌다.

 

<개의 심장>을 인상적으로 읽고 나서, 미하일 불가코프의 대표작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구입했다. 이 책이 과연 앤디 밀러의 경우처럼 나의 삶에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전해줄지 아니면 여타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독서체험이 될지 자못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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