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도시 세계문학의 천재들 2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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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미로>란 책이 나왔다고 해서 대책 없이 그 책을 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독일 출신의 작가 발터 뫼어스가 <미로>에 앞서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에서 벌어지는 린트부름 요새 출신의 공룡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등장하는 전작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퀄부터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찌된 건지 집에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존재하고 있었다. 김영하 작가가 최근 강연에서 독서는 모름지기 가지고 있는 책을 읽는 것이라고 했던가, 해당 작가의 고언을 난 충실히 따랐다. 사실 판타지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판타지 스타일이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책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전혀 손색이 없는 그런 책이었다. 지난 주말에 집어 들었는데, 가히 단박에 읽을 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일 작가 발터 뫼어스가 우리나라 시중에 도는 무협지 시리즈를 독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해당 장르를 쏙 빼닮았다. 작가가 후기에서 남긴 것처럼 이 책은 방대한 분량의 미텐메츠가 쓴 <어느 감상적인 디노사우루스의 여행기>에서 편집 발췌한 부분이란다. 그러니까 오래 전에 사라진 비전을 어찌어찌해서 얻어 후대에 남겼다는 것이리라. 시작부터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 차모니아 대륙의 오지 린트부름 요새 출신의 견습작가로 이제 겨우 77살난 젊은 디노사우루스의 생과 사를 가르는 기상천외한 모험담은 책을 잡아든 독자의 염통을 쫄깃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무협지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린트부름 요새에서 꽃양배추를 재배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던 단첼로트 대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에 따라, 어쩌면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을지 모를 그런 절대 원고를 수중에 품고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으로 떠나는 우리의 주인공 미텐메츠는 도제 생활에서 막 벗어난 풋내기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우리의 풋내기 주인공 미텐메츠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름’을 깨닫게 되고, 그가 책쟁이들을 열광 속으로 몰아넣을 가상의 공간 부흐하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모험을 거쳐 위대한 작가가 되는 과정을 발터 뫼어스 작가는 자신이 직접 그렸다는 삽화까지 더해 완성해냈다. 모름지기 위대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 체험은 경험해야 한다는 작가의 묵시일까. 현대 출판 문학계를 아우르며, 고전 작가들의 이름까지 현란한 워드플레이로 변형해 가면서 독창성을 자랑하는 이런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도제로서 단첼로트 대부에게 차모니아 문학에 대해 비교적 탄탄한 기초 지식을 키우긴 했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소심한 공룡 미텐메츠는 모든 책쟁이들이 꿈꿀만한 도시 부흐하임에 도착해서 책과 문학에 얽힌 현실을 대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면모를 보여준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작가의’ 성장소설로 봐도 좋을 듯 싶다. 미텐메츠는 본인이 원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가진 절대 원고 때문에, 이 또한 전래의 비전을 가진 주인공이 핍박당한다는 무협지의 설정과 아주 유사하다, 부흐하임의 실제적인 지배자라고 할 수 있는 상어구더기 피스토메펠 스마이크와 문학 에이전트 하르펜슈톡의 흉계에 빠져 부흐하임의 도저히 헤쳐 나올 수 없는 미로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세상사 모두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우리의 주인공 미텐메츠는 도저히 살아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지하 미로에서 책 마니아 부흐링 족과 전설적인 캐릭터 그림자 제왕, 호문콜로스를 만난 비로소 작가가 되기 위한 특별한 수련 과정을 거치게 된다. 개인적으로 또 한 가지 마음에 들었던 점 하나는, 주인공 미텐메츠가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닌 아주 평범한 공룡이라는 설정이었다. 역설적으로 이런 위험한 모험을 마친 캐릭터라면 마땅히 능력자의 반열에 올라하겠지만.

 

미텐메츠를 위협하는 캐릭터 중에 특이할 만한 존재로 부흐하임에서 높은 가격을 쳐주는 소위 <황금 목록>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책을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책 사냥꾼들이 있다. 그나마 노루개 출신의 공공의 이익을 위한 책사냥을 하는 레겐샤인 같은 캐릭터도 있지만 오로지 금전적 이익만을 위해 뛰는 롱콩 코마 같은 악질적인 책 사냥꾼의 존재도 눈에 띈다. 발터 뫼어스 작가는 소설의 초반부터 세밀한 서사적 장치는 물론이고, 한 단어로 허투루 배치하지 않는 정밀한 플롯도 빼놓지 않는다. 소설의 초반 시골 촌놈 미텐메츠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부흐하임에 와서 만난 슈렉스 족 출신 고서적상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외눈박이 부흐링 족과 우연히 만나 그동안 자신이 단첼로트 대부에게 배운 문학적 지식을 되새김질하는 오름 배틀은 또 어떠한가. 역시 핵심은 모두를 공포에 몰아넣는 그림자 제왕 호문콜로스가 뚱보 공룡 미텐메츠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정적 도움을 주며, 그림자 성으로 인도해서 위대한 작가 탄생에 일조한다는 설정이었다.

 

그림자 성에서 작가 수업에 앞서, 호문콜로스의 도서실에서 미텐메츠가 평소에 눈여겨 보지 않았던 책들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는 대목은 정말 최고였다. 과연 우리의 독서가 그러할까. 또다른 수업 과정으로 진정한 공포는 자기 자신 속에 있다는 호문콜로스의 말은 계시처럼 다가왔다. 소설의 악당 역을 맡은 피스토메펠 스마이크는 아예 예술 자체와 문학의 존재 자체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했다면, 디노사우르스 미텐메츠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어내 전달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공존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는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발터 뫼어스 작가는 판타지와 유머, 독창적 상상력 그리고 모험담이 난무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이런 진중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잊지 않고 묵묵하게 수행한다.

 

피스토메펠 스마이크와 하펜슈르톡 그리고 다른 조력자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피조물 호문콜로스가 자신을 만들어낸 창조주를 심판한다는 설정 또한 전설의 재현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까지 상상해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괴물들의 존재는 모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조합이지 않은가. 다만 누가 더 정교하게 다듬어 내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미텐메츠와 똑같은 이름의 작은 부흐링의 등장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역시 창작의 과정은 창조자와 그 창조물/책을 감상하는 이들 간의 상호작용이 필수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아직 작품 발표도 하지 않은 미래의 작가에게까지 이런 영예를 주는 부흐링 족이야말로 현대 독자들이 지향해야할 모습이 아닐는지.

 

<꿈꾸는 책들의 도시>와 함께 한 지난 5일은 정말 즐겁고, 스릴 넘치는 시간들이었다. 다시 한 번 이런 기회를 준 발터 뫼어스 작가에게 감사를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 따끈따끈한 더 센 놈을 만날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

 

[리딩데이트] 2015년 9월 19일~23일 오후 12시 53분

 

[뱀다리] 올해 만난<닥터 코페르니쿠스>에 이어 두 번째로 멋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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