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6
카를로 콜로디 지음, 김양미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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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돼서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세 권의 동화가 있었다. 아니 내가 동화라고 믿었던 책이라고 해야 할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그리고 다시 읽기 전까지 미처 작가도 몰랐던 <피노키오>.

이번에 인디고 출판사에서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의 6번째 시리즈로 당당하게 출간된 <피노키오>의 저자는 카를로 콜로디라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라고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커지는 나무인형 피노키오의 이야기가 몇 백 년은 됐을 거라고 어림짐작을 하고 있었는데 채 150년이 되지 않은 이야기라고 한다.

역시 동화답게 <피노키오>는 더말할 나위 없이 교훈적이다. 어른들을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잘하라는 어른들의 시선으로 본 아이들의 모습에 대한 전형이라고나 할까? 아마 어린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보다 더 극악한 반어린이 정서를 다룬 책도 없을 것 같다. 모름지기 어린이들이라면, 공부보다는 밖에 나가 친구들과 뛰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어른들을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지극히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를 행간에서 읽으면서 마음이 갑갑해졌다. 확실히 어린이가 보는 피노키오와, 어른이 읽는 피노키오의 차이는 그렇게 엄청났다. 아마 21세기 사교육 광풍이 부는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이보다 더 ‘교훈’적이면서도 적합한 콘텐츠를 담은 고전동화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보니 게으름을 피워서, 소가 되었다는 옛 설화는 이탈리아산 동화에서는 당나귀 버전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렇게 어린이들을 상대로 하는 스토리텔링의 내러티브에는 그런 유사성이 있는 걸까?

피노키오가 가진 금화를 500배로 뻥튀겨 주겠다는 고양이와 여우 듀엣의 유혹은 몇 년 전 중국펀드 광풍을 가져왔던 묻지마 투자의 패턴과 너무나 흡사했다. 감언이설에 속아 엄청난 수익을 위해 자신이 가진 전부를 투자했지만 피노키오에게 돌아온 것은 빈 손 뿐이었다. 피노키오 같은 얼간이에게도 자신이 가진 것을 뻥튀기 하고 싶다는 욕망이 존재한다는걸 작가는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피노키오>에는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한 유물론적 다위니즘의 그림자가 어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노키오는 제페토 할아버지가 만들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기원은 말하는 나무토막을 발견한 버찌 할아버지(안토니오)였다. 나면서부터 게으르고, 부모님(제페토 할아버지)의 말이라고는 정말 죽어라고 듣지 않는 피노키오가 편부 슬하에서 어머니의 사랑(파란 머리 요정)을 알게 되면서 개과천선하게 된다. 그리고 피노키오는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나무인형에서, 가난하고 병든 부모의 수발을 드는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조금 과장하면 유물론적 진화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어른이 돼서 <피노키오>를 읽으면서 내내 스탠리 큐브릭이 기획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A.I.> 생각이 떠올랐다. 어느 특정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데이빗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그 소망의 중심에는 자신을 길러주던 어머니 모니카로부터의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 영화에서 데이빗은 푸른 머리 요정에게 자신을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지만, 그의 꿈을 이루어주는건 터무니없게도 외계인이었다. 비록 단 하루긴 하지만 자신의 소원을 이루게 되는 데이빗의 그것과 카를로 콜로디가 창조해낸 멋진 캐릭터 피노키오의 꿈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확실히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말을 금과옥조로 삼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동화 <피노키오>의 상투적인 메시지 대신, 조금은 삐뚤어진 어른의 시각으로 보는 새로운 스타일의 <피노키오>와의 만남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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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른이 되어야 하는 피노키오의 노동윤리
    from Perspectivism 2011-02-18 01:13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 전철에서 책을 읽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맥베스를 보다가 말고, 드라큘라를 보다가 말았지만 하나 끝까지 본 책이 있으니 바로 피노키오다. 고전을 '실제로' 읽어보면 만화, (위의 슈렉같은) 영화, 광고 등을 통해 각색된 몇 개의 장면들로만 기억하던 내용과 실제의 내용이 상당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피노키오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이야기,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생환한 이야기가 사실상..
 
 
 
<노년의 즐거움>을 리뷰해주세요
노년의 즐거움 - 은퇴 후 30년… 그 가슴 뛰는 삶의 시작!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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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앞으로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 인구의 40%를 65세 노인이 차지하게 되리라는 전망을 뉴스에서 보았다. 지금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인구수가 점차 줄면서 슈퍼고령화사회로 진입하게 되리라는 전망이었다. 지금도 노인계층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데 과연 그 때가 되면 어떻게 될까?

이제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일흔을 넘친 노친(老親)인 김열규 교수가 노년의 아름다움을 설파하는 책 <노년의 즐거움>을 내놨다. 확실히 학자답게, 노년의 삶에 대한 박학다식함으로 조금은 부정적인 우리들의 시각을 교정해 주면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맞이하는 노년들의 삶에 대한 예찬을 펼쳐 보여주고 있다.

사실 노년의 삶은 청장년 시절에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었던 삶의 노련함이 꽃피우는 시절이라는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세상살이를 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인생의 진리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젊음의 열정과 패기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진중하면서도 때로는 신산스러운 삶을 헤쳐온 이들만의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국문학과 민속학을 전공한 이답게, 우리네 선조들의 삶 속에 꽃핀 노년의 아름다움을 정감 있게 풀어 나간다. 특히 선비정신이 깃든 산수화나 서구 화가들의 작품세계를 통한 노장(老壯)에 찬미는 일품이다. 강희안 선생의 <고사관수도>에서 우리네 특유의 산수 속에 그야말로 녹아든 채, 산 속의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인공 노친의 모습은 누구나 맞이하게 될 노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안처럼 다가온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중세의 격언처럼 과연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작가는 5금과 5권의 작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각각 5개씩의 하지 마라와 하라로 구성된 이 5금과 5권 중에서 특히 노하지 마라와 관대하라는 특히 눈여겨 보아야할 항목이다. 그것은 마치 머리와 꼬리가 하나를 이루듯이 노하지 말고, 범사에 관대하라는 금언(金言)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편의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작가는 전문직에 종사를 해서 일흔 살이 넘도록 직업을 유지할 수가 있었지만 대개의 직업인들은 예순 정도면 일자리에서 퇴출되기 마련이 아니던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그네들의 심정을 작가는 톺아봤을까? 책의 말미에서 잠깐 노년의 버거운 삶에 대해 잠깐 언급했을 뿐, 오늘도 경제적 궁핍으로 시달리는 노년들의 삶의 현실에 대해서는 슬쩍 비껴나가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예전에 미국의 시골 우체국에 들렀었는데 나이 든 할아버지들이 창구에서 일하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였다. 조금은 일이 서투르고, 늦어도 길에 늘어선 줄에서 누구 하나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노친들은 공동체에 봉사하는 일을 하면서 수입도 얻고 일하는 보람을 느끼는 한편, 같은 동네에 사는 이들과 호흡해 하는 작은 공동체적 삶이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우리네 일자리 나누기에 과연 노친들의 몫은 없는 걸까?

작가의 노년예찬에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하지만 노년에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환과고독도 함께 하는 삶을 살기 마련인데, 조금 더 균형 잡힌 시선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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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집에 있을걸 - 떠나본 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멋진 후회
케르스틴 기어 지음, 서유리 옮김 / 예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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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광고에서처럼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했던가. 그렇다, 사실 여행은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고생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이라는 매력을 포기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케르스틴 기어의 <그냥 집에 있을걸>은 바로 그 시점에서 출발한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떠나 삶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 여행길에 나서게 되면서 체험하게 되는 다양하면서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만한 그런 흥미진진한 여행에세이들로 가득 차 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사실 여행 그 자체보다도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과 즐거움이 나중에 본 여행의 그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막상 여행길에 오르게 되면 오늘은 또 어디에서 잘까, 뭘 먹고 어디를 구경하러 가야 하나 그리고 낯선 음식들이 주는 불편함이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여행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여행에 대해 보여 주는 스펙트럼은, 여행을 하게 되면 느끼게 되는 그 수많은 포비아(공포증)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예측 불허의 날씨, 화장실문제, 우연한 로맨스, 인터넷에서 과대포장된 선전과는 상이한 숙소 그리고 현지 언어 사용에 이르기까지 일탈을 꿈꾸는 나그네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냥 집에 있을걸>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철저한 환경보호론자인 옛 친구 크리스 가족의 방문기였다. 환경보호와 생태계 보존이라는 대의에는 공감하지만, 지나치게 자신들의 주장을 강요하면서 작가와 남편 프랑크에게 홈스테이 하는 동안 민폐를 끼치는 장면들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오염의 주범인 문명의 이기들이 주는 편리함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를 하지 않는다는 그런 피상적인 회피에 안도감을 느꼈던 건 아닐까?

케르스틴 기어는 역시 어쩔 수 없는 서구출신의 여행자일 수밖에 없었나 보다. 특히 서구인의 시선으로 보는 여행지에 대한 선입견이 눈에 밟혔다. 예를 들어 인도여행을 같이 하자는 친구의 제안에 대해 자기가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신성한 소가 사는 저개발 국가를 여행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글에서는 서구인들의 뿌리 깊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편견이 느껴지기도 했다. 동시에 프라다 모조가방을 원하는 그들의 이중성이란!

역시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불의의 사고에 대한 작가의 지적도 예사롭지 않다. 작가 자신이 여행 도중에 맹장 수술을 받았지만, 정작 여행자보험 처리를 하지 못해서 낭패를 당하는 이야기에서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타인도 예외일 수는 없겠구나 싶었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양동이를 화장실 대용으로 쓸 수도 있어야 한다는 작가의 지론을 뒷받침해 주기 위한 에피소드 소개 역시 인상적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판에 박힌 듯한 직장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그네들의 삶이 부러웠다. 도대체 얼마나 여행을 많이 하기에, 평소에 만나기 힘든 지인들을 다른 나라에까지 가서 만날 수가 있는지. 알프스로 스키를 타러 가고, 그리스의 가족호텔로 휴가를 보내기 위해 떠나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우리가 인근의 대형마트를 찾는 것처럼 쉬운 일처럼 느껴졌다. 고작 해야 1년에 일주일 남짓한 휴가를 감지덕지하게 생각하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독일 출신인 케르스틴 기어의 독일식 유머는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와의 공간적 거리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그네들의 유머의 구조가 우리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조금은 까칠해 보이는 유머들이 잘 와 닿지 않기도 했다.

요즘 휴가철을 맞아 공정여행의 실천에 대한 뉴스들이 눈에 띄고 있다. 단순하게 여행지를 찾아 잠시 동안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는 여행이 아닌, 우리가 찾은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이들과 건전한 소통을 통해 소비의 여행이 아닌 관계의 여행을 하자는 멋진 주장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 여름에 어디로 휴가를 떠날진 모르겠지만 그런 공정여행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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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야마 도모히로 지음, 강민정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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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독소>, <도살장> 그리고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내가 명명한 몰락해 가는 제국 미국에 대한 3부작을 읽으면서 8년간 부시 행정부가 어떻게 냉전 이후 세계 초강대국으로 군림해온 미국을 거덜 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됐다. 그리고 올해 들어 다시 한 번 재미 일본 칼럼니스트인 마치야마 도모히로의 <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를 읽으면서 몰락하고 있는 미국의 현재 진행형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됐다.

모두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그 내용에 앞서 무엇보다 읽기에 재밌다는 말을 해두고 싶다. 사실 미국의 현실을 다룬 어떤 책들은 아무래도 그 무거운 내용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칼럼니스트이자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그가 빚어내는 글들의 흡입력은 대단했다.

올해 새로 출범한 버락 오바마 정부에 자그마치 11조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안겨준 부시 행정부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 복음주의에 대한 르포로 마치야마 도모히로는 이 책을 시작한다. 미국 헌법에서 정교분리를 엄격하게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부시 정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남부 바이블 벨트의 기독교 복음주의의 맹목적인 신앙관과 폐해가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TV전도로 자금을 모금하고, 갖은 형태의 설교가 소비되고 있는 미국의 종교지도자들이 과연 복음의 전파와 구원이라는 지상과제보다는 모든 문제의 정치적 해결이라는 세속적 해결책에만 매달리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전사자의 장례식에 찾아 가서 유가족들에게 신의 형벌을 받아 그들의 자제들이 죽었다고 하는 폭언을 퍼붓는 극우파 목사의 행태에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

다음 장에서는 역시 아들 부시 임기 내에 최악의 결정이었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단면들을 다루고 있다. 영화평론가답게 <엘라의 계곡>, <관타나모로 가는 길> 같이 우리에게는 조금은 낯선 제목들의 영화들을 통해 이라크 전쟁에 대한 문화적 접근을 시도한다. 명분은 물론, 자질이 떨어지는 미군들을 이라크 전장에 투입해서 고문, 학살 등의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린 아들 부시과 그 일당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조소가 잇따른다.

전 세계에 서브프라임 대란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촉발시켰던 월가의 천재들이 초래한 미국의 경제 위기 역시 마치야마 도모히로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나라도 한 때 입점했었던 할인마트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월마트의 악랄한 고용정책과 기존의 영세한 유통업체들을 집어삼키는 경쟁 시스템으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오는 비참한 현실이 바로 오늘날의 미국의 모습이었다.

이제 곧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제의 도입을 앞두고, 미국 사회는 바야흐로 폭풍전야와도 같다는 뉴스를 들었다. 안티 부시를 천명하는 마이클 무어가 자신의 최신작 <식코>에서도 설파했듯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는 전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의료보험이 없다. 그리고 의료보험이 없이 지내는 이들이 자그마치 5천만 명이나 되고, 의료혜택의 부재로 연간 2만 명이나 되는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고 있다. 이렇게 미국의 곳곳에서 허울 좋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마치야마 도모히로의 주장이다.

썩을 대로 썩은 부시 행정부의 도덕성은 말할 것도 없고, 반 게이운동을 주도하면서도 추잡스러운 섹스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워싱턴 DC의 모습이 소개된다.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뉴스코퍼레이션 그룹의 폭스뉴스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 역시 문제다. 진실의 보도라는 언론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 의해 움직이고, 심지어는 사실에 대한 허위보도와 편집, 조작까지도 서슴지 않는 그네들의 모습이 우리 보수언론의 그것과 어쩌면 닮았는지 모르겠다. 마치 큰 형님으로부터 한 수 배운 것처럼 말이다.

이라크 침공으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아들 부시를 비판했다가 곤욕을 치른 딕시 칙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준 것이 실수였다는 기가 막힌 발언을 하는 최악의 보수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가진 앤 쿨터는 그래도 옳은 말 한 마디를 남겼다. 진보주의자들이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부시가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에 대해 칭찬해 주어야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과연 진보가 고용한 스파이라는 말을 들을만하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비롯된 경제위기 속에서 미국의 알짜배기 자산들이 외국 기업과 자본들에 팔려 나가는 모습은 지난 1980년대 미국을 죄다 사버릴 기세로 덤벼들던 일본의 그것과 너무나 유사하게만 보인다. 그나마 올리버 스톤 감독 같이 지각 있는 미국의 지식인들은 미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스런 우려를 하고 있다. 마치야마 도모히로는 조금은 식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상식 있는 미국인들이 미국의 추락 속도를 더디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마 그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지난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와 한판대결을 벌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들 수가 있을 것 같다. 비록 공화당 출신이기는 하지만, 반이민법과 고문에 반대하는 등 초당적인 모습으로 미국 국민들에게 어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도 역시 베트남 참전 베테랑으로 하노이 힐튼(베트남 감옥에 대한 애칭)에서 자그마치 5년 반 동안이나 수감되어 고문을 당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그동안 구축해온 세계경찰으로서의 헤게모니를 까먹어 가면서도, 네오콘 같이 부패한 정치집단이 아닌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사는 미국인들이 오늘날의 미국을 지탱해가는 원동력이라고 작가는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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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사사진의 모든 것 포토 라이브러리 8
브라이언 피터슨 지음, 공민희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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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그 옛날의 구닥다리 올림포스 카메라로 사진의 세계에 처음으로 입문할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동생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작업용으로 산 니콘801을 얻게 되면서 본격적인 사진의 세계에 뛰어 들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 한 번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워보거나 그랬던 건 아니고 책과 여기저기서 주워들어 독학한 게 전부였다.

나중에는 사진의 세계에 좀 더 발을 들여 놓게 돼서, 흑백필름을 직접 현상 인화하는 것도 배웠었다. 특히 인화작업은 필카시대 사진의 정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대망의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도래를 했다. 디지털 카메라 초창기만 하더라도, 여전히 필카 대세론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기술의 발전으로 디카가 필카만큼의 이미지 구현력을 갖추게 되면서, 전문 사진작가들조차 디카를 구비하게 됐다.

사진 업계의 대가인 브라이언 피터슨이 알려주는 사진 예술의 세계는 놀랍기만 하다. 특히 <접사사진의 모든 것>에서는 SLR 혹은 DSLR을 가진 이들이라면 한 번 도전해 볼만한 기술과 팁들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다. 지난 30년간을 사진과 함께 해온 브라이언 피터슨 역시 디카를 사용해서 자신의 작품 세계의 지평을 열어 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책의 제목에는 접사라고 기재되어 있지만, 브라이언 피터슨은 당당하게 접사가 아니라 클로즈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말할 필요도 없지만, 클로즈업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매크로렌즈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그냥 나처럼 보급형 디카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과연 접사/클로즈업 사진은 요원하기만 주제란 말인가?

그가 책에 클로즈업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대가가 찍은 사진은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변의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진작가의 눈을 통해 렌즈로 찍히는 사진들에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바로 그것이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을 찍으라는 것이다. 물론 인위적인 이야기를 만들면 안 되겠지만, 브라이언 피터슨은 조심스럽게 최소한의 가공은 암묵적으로 허용하자는 편인 것 같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미지 작업윤리라고 했던가? 어쨌든 이야기가 담긴 이미지는 그야말로 사진을 찍은 모든 이들의 로망일 것이다.

브라이언 피터슨은 클로즈업 사진촬영을 위해 다음의 기본적인 네 가지 장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카메라, 렌즈, 리버싱 링 그리고 삼각대. 이 책에서 장비 파트를 읽다가 예전에 누군가가 사진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그 많은 장비들 때문에 차까지 샀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외에도 익스텐션 튜브, 링 플래시, 광각렌즈, 어안렌즈 그리고 반사판에 이르기까지 정말 클로즈업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한 장비들이 너무나 많다.

클로즈업 사진의 정수는 질감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텍스쳐의 살아 있는 질감이 느껴지는 사진이라,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촉각을 자극하고, 시선을 유혹하며 시각적 호소력까지 있는 이미지라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 아마 상업 사진을 찍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이런 사진을 찍어야하지 않을까? 시골길을 달리다가 우연히 만난 거미줄에 맺힌 이슬, 브라이언 피터슨의 주장에 의하면 백년을 찍어도 질리지 않을 영원한 주제인 꽃사진들,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의 깃털,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보랏빛 불가사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사진의 소재들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우리가 창조적인 시선을 가지지 않은 채, 그 소재들을 바라보는 것이 문제다.

디카 기술의 발전과 디카의 대중적인 보급은 예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져 왔던 사진세계를 일반에까지 확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사진작가들은 모두 촬영 후 보정작업을 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유명 사진작가들도 보다 나은 퀄리티를 얻기 위해 포토샵 처리를 한다는 것이다. 브라이언 피터슨 역시 사진 보정을 하는데 있어서 포토샵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사진 찍기란 과연 무엇일까? 사진 찍기는 바로 이미지의 기록이다.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피터슨의 좀 더 고상한 표현을 빌리자면 사진은 부드럽고 즐거운 멜로디란다. 말이 필요 없다,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카메라라도 들고 나가서 한 번 클로즈업 사진을 찍어 보자. 적어도 사진 촬영에 있어 나의 경험에 의하면 백번의 강의보다도 한 번의 촬영 후에 반추하는 것이 백 번 낫다.

*** 보다 깊이 있는 브라이언 피터슨의 사진 강의를 원하시는 독자라면 그가 운영하고 있는 웹사이트인 완벽한 사진학교(http://www.ppsop.com)를 방문해보길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고 나서, 바로 그의 사이트를 찾아 ‘창조적인 적정노출’(creatively correct exposure)에 대한 강의를 들어 봤다. 브라이언 피터슨은 특히 노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참조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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