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야마 도모히로 지음, 강민정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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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독소>, <도살장> 그리고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내가 명명한 몰락해 가는 제국 미국에 대한 3부작을 읽으면서 8년간 부시 행정부가 어떻게 냉전 이후 세계 초강대국으로 군림해온 미국을 거덜 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됐다. 그리고 올해 들어 다시 한 번 재미 일본 칼럼니스트인 마치야마 도모히로의 <미국인의 절반은 뉴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를 읽으면서 몰락하고 있는 미국의 현재 진행형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됐다.

모두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그 내용에 앞서 무엇보다 읽기에 재밌다는 말을 해두고 싶다. 사실 미국의 현실을 다룬 어떤 책들은 아무래도 그 무거운 내용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칼럼니스트이자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그가 빚어내는 글들의 흡입력은 대단했다.

올해 새로 출범한 버락 오바마 정부에 자그마치 11조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안겨준 부시 행정부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 복음주의에 대한 르포로 마치야마 도모히로는 이 책을 시작한다. 미국 헌법에서 정교분리를 엄격하게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부시 정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남부 바이블 벨트의 기독교 복음주의의 맹목적인 신앙관과 폐해가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TV전도로 자금을 모금하고, 갖은 형태의 설교가 소비되고 있는 미국의 종교지도자들이 과연 복음의 전파와 구원이라는 지상과제보다는 모든 문제의 정치적 해결이라는 세속적 해결책에만 매달리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전사자의 장례식에 찾아 가서 유가족들에게 신의 형벌을 받아 그들의 자제들이 죽었다고 하는 폭언을 퍼붓는 극우파 목사의 행태에는 할 말을 잃어 버렸다.

다음 장에서는 역시 아들 부시 임기 내에 최악의 결정이었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단면들을 다루고 있다. 영화평론가답게 <엘라의 계곡>, <관타나모로 가는 길> 같이 우리에게는 조금은 낯선 제목들의 영화들을 통해 이라크 전쟁에 대한 문화적 접근을 시도한다. 명분은 물론, 자질이 떨어지는 미군들을 이라크 전장에 투입해서 고문, 학살 등의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린 아들 부시과 그 일당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조소가 잇따른다.

전 세계에 서브프라임 대란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촉발시켰던 월가의 천재들이 초래한 미국의 경제 위기 역시 마치야마 도모히로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나라도 한 때 입점했었던 할인마트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월마트의 악랄한 고용정책과 기존의 영세한 유통업체들을 집어삼키는 경쟁 시스템으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오는 비참한 현실이 바로 오늘날의 미국의 모습이었다.

이제 곧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제의 도입을 앞두고, 미국 사회는 바야흐로 폭풍전야와도 같다는 뉴스를 들었다. 안티 부시를 천명하는 마이클 무어가 자신의 최신작 <식코>에서도 설파했듯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는 전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의료보험이 없다. 그리고 의료보험이 없이 지내는 이들이 자그마치 5천만 명이나 되고, 의료혜택의 부재로 연간 2만 명이나 되는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고 있다. 이렇게 미국의 곳곳에서 허울 좋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마치야마 도모히로의 주장이다.

썩을 대로 썩은 부시 행정부의 도덕성은 말할 것도 없고, 반 게이운동을 주도하면서도 추잡스러운 섹스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워싱턴 DC의 모습이 소개된다.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뉴스코퍼레이션 그룹의 폭스뉴스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 역시 문제다. 진실의 보도라는 언론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에 의해 움직이고, 심지어는 사실에 대한 허위보도와 편집, 조작까지도 서슴지 않는 그네들의 모습이 우리 보수언론의 그것과 어쩌면 닮았는지 모르겠다. 마치 큰 형님으로부터 한 수 배운 것처럼 말이다.

이라크 침공으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아들 부시를 비판했다가 곤욕을 치른 딕시 칙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 자신이 여성이면서도,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준 것이 실수였다는 기가 막힌 발언을 하는 최악의 보수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을 가진 앤 쿨터는 그래도 옳은 말 한 마디를 남겼다. 진보주의자들이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부시가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에 대해 칭찬해 주어야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과연 진보가 고용한 스파이라는 말을 들을만하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비롯된 경제위기 속에서 미국의 알짜배기 자산들이 외국 기업과 자본들에 팔려 나가는 모습은 지난 1980년대 미국을 죄다 사버릴 기세로 덤벼들던 일본의 그것과 너무나 유사하게만 보인다. 그나마 올리버 스톤 감독 같이 지각 있는 미국의 지식인들은 미국의 미래에 대해 걱정스런 우려를 하고 있다. 마치야마 도모히로는 조금은 식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상식 있는 미국인들이 미국의 추락 속도를 더디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마 그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지난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와 한판대결을 벌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들 수가 있을 것 같다. 비록 공화당 출신이기는 하지만, 반이민법과 고문에 반대하는 등 초당적인 모습으로 미국 국민들에게 어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도 역시 베트남 참전 베테랑으로 하노이 힐튼(베트남 감옥에 대한 애칭)에서 자그마치 5년 반 동안이나 수감되어 고문을 당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그동안 구축해온 세계경찰으로서의 헤게모니를 까먹어 가면서도, 네오콘 같이 부패한 정치집단이 아닌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사는 미국인들이 오늘날의 미국을 지탱해가는 원동력이라고 작가는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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