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6
카를로 콜로디 지음, 김양미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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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돼서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세 권의 동화가 있었다. 아니 내가 동화라고 믿었던 책이라고 해야 할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그리고 다시 읽기 전까지 미처 작가도 몰랐던 <피노키오>.

이번에 인디고 출판사에서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의 6번째 시리즈로 당당하게 출간된 <피노키오>의 저자는 카를로 콜로디라는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라고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커지는 나무인형 피노키오의 이야기가 몇 백 년은 됐을 거라고 어림짐작을 하고 있었는데 채 150년이 되지 않은 이야기라고 한다.

역시 동화답게 <피노키오>는 더말할 나위 없이 교훈적이다. 어른들을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잘하라는 어른들의 시선으로 본 아이들의 모습에 대한 전형이라고나 할까? 아마 어린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보다 더 극악한 반어린이 정서를 다룬 책도 없을 것 같다. 모름지기 어린이들이라면, 공부보다는 밖에 나가 친구들과 뛰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어른들을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지극히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를 행간에서 읽으면서 마음이 갑갑해졌다. 확실히 어린이가 보는 피노키오와, 어른이 읽는 피노키오의 차이는 그렇게 엄청났다. 아마 21세기 사교육 광풍이 부는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이보다 더 ‘교훈’적이면서도 적합한 콘텐츠를 담은 고전동화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보니 게으름을 피워서, 소가 되었다는 옛 설화는 이탈리아산 동화에서는 당나귀 버전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렇게 어린이들을 상대로 하는 스토리텔링의 내러티브에는 그런 유사성이 있는 걸까?

피노키오가 가진 금화를 500배로 뻥튀겨 주겠다는 고양이와 여우 듀엣의 유혹은 몇 년 전 중국펀드 광풍을 가져왔던 묻지마 투자의 패턴과 너무나 흡사했다. 감언이설에 속아 엄청난 수익을 위해 자신이 가진 전부를 투자했지만 피노키오에게 돌아온 것은 빈 손 뿐이었다. 피노키오 같은 얼간이에게도 자신이 가진 것을 뻥튀기 하고 싶다는 욕망이 존재한다는걸 작가는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피노키오>에는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한 유물론적 다위니즘의 그림자가 어려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노키오는 제페토 할아버지가 만들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기원은 말하는 나무토막을 발견한 버찌 할아버지(안토니오)였다. 나면서부터 게으르고, 부모님(제페토 할아버지)의 말이라고는 정말 죽어라고 듣지 않는 피노키오가 편부 슬하에서 어머니의 사랑(파란 머리 요정)을 알게 되면서 개과천선하게 된다. 그리고 피노키오는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나무인형에서, 가난하고 병든 부모의 수발을 드는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조금 과장하면 유물론적 진화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어른이 돼서 <피노키오>를 읽으면서 내내 스탠리 큐브릭이 기획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A.I.> 생각이 떠올랐다. 어느 특정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데이빗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그 소망의 중심에는 자신을 길러주던 어머니 모니카로부터의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 영화에서 데이빗은 푸른 머리 요정에게 자신을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지만, 그의 꿈을 이루어주는건 터무니없게도 외계인이었다. 비록 단 하루긴 하지만 자신의 소원을 이루게 되는 데이빗의 그것과 카를로 콜로디가 창조해낸 멋진 캐릭터 피노키오의 꿈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확실히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말을 금과옥조로 삼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동화 <피노키오>의 상투적인 메시지 대신, 조금은 삐뚤어진 어른의 시각으로 보는 새로운 스타일의 <피노키오>와의 만남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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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른이 되어야 하는 피노키오의 노동윤리
    from Perspectivism 2011-02-18 01:13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 전철에서 책을 읽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맥베스를 보다가 말고, 드라큘라를 보다가 말았지만 하나 끝까지 본 책이 있으니 바로 피노키오다. 고전을 '실제로' 읽어보면 만화, (위의 슈렉같은) 영화, 광고 등을 통해 각색된 몇 개의 장면들로만 기억하던 내용과 실제의 내용이 상당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피노키오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이야기,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생환한 이야기가 사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