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현실에 말을 걸다 -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통섭
이면희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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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다. 그건 뭐니 뭐니 해도 “경제”가 아닐까? 어느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으로 너끈하게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고, 경제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인 주변인들도 모두 펀드와 주식 열풍에 휩싸여 있다. 심지어 경제학이라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학자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왔던 나도 이렇게 경제학 책을 읽게 되지 않았나 말이다.

동시에 경제학은 쉽게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있었다. 하지만 이면희 교수의 <경제학, 현실에 말을 걸다>는 그런 나의 고정관념을 한 방에 날려 버려주었다. 일단 그 어렵다는 경제학 공식일랑은 딱 두 번 등장시키고, 고래의 농업혁명 이래 현대 자본주의 근간이 되었던 산업혁명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장을 연 정보혁명에 이르는 경제의 역사를 나 같은 경제학맹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조근조근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서두에서 시장경제의 근간이 되는 경쟁과 사적 이익(사유재산제)에 대한 효율성에 대한 설명으로 오늘날의 경제학 현실에 접근하는 첩경을 짚어준다. 인간이 만들어낸 재화가 사고 팔리는 ‘시장’이야말로 인류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명품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시장에는 ‘가격’이라는 무시무시한 통제력을 가진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다음으로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 리카도 그리고 맬서스 같은 고전 경제학자들이 등장해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진다. 어떻게 보면 최근까지 하늘을 찌를 듯한 위세를 떨쳤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고래의 고전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현대 자본주의에 맞게 수정한 게 아닌가 하고 유추해 본다.

2장에서는 오늘날의 금융경제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실물경제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자본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수익을 창출해낸다는 월가의 금융 천재들이 만들어내는 파생금융상품들이 어떻게 창조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로 인한 위험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이면희 교수는 짧은 단락들을 통해 그 핵심을 찌르고 있다. 사실 장황한 서술보다, 실제 상황들을 통한 분석적 설명이 더 와 닿는 느낌을 받았다.

세 번째로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미국의 대공황, 일본의 버블경제가 꺼진 후의 10년간에 걸친 장기불황 그리고 1997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을 강타한 외환위기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1929년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 이전까지는 공급이 수요를 스스로 창출한다는 고전학파 학자인 세이의 주장이 힘을 얻었지만, 공급과잉으로 미국 산업계가 붕괴되면서 그 여파는 일파만파로 전 세계를 덮쳤다. 그 때 영국출신의 경제학자 케인즈가 주장하는 경제 주체 중의 하나인 정부의 재정정책으로 실업난과 공황의 위기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물론 완전히 대공황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른 변수인 전쟁(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 경제는 완전 고용의 신화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마지막 장에서는 오늘날의 세계 경제의 현황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경제학자가 어떤 경우에도 적용이 되는 경제 전망을 내놓을 수는 없다. 앨빈 토플러가 말했던 정보혁명으로 지구촌 개념이 현실화된 이 시점에서, 한 나라의 경제적 상황은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같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지난 IMF위기를 겪으면서, 성장일변도 신화에서 탈피해서 수익우선구조로 체질개선을 이뤄냈다. 때마침 IT산업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원이 등장함으로써 단군 이래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돌파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말의 경제 위기는 빚으로 연명해 가는 미국의 위태로운 상황과 더불어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동안 국가주도 형태의 경제발전을 해온 우리나라는 자유무역과 세계화라는 세계적 추세 속에서 시장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할 것이다. 건전한 제조업을 바탕으로 한 실물경제에 초점을 맞춘 장기적 경제발전 플랜이 시급히 필요하다. 한 마디로 말해 패러다임의 극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아울러, 고용불안과 그동안 성장과정에서 제기된 분배의 문제와 이로 인한 사회적 불안 해소를 위한 거시적인 지적 투쟁의 장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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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를 리뷰해주세요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윤용인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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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라는 노래생각이 불쑥 들었다. 노래 <소원을 말해봐>는 작가 윤용인 씨가 이 책에 꿈이 뭐야? 라는 쓴 그것과 미묘한 동조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렇다, 이 책은 바로 사십대의 중년 남성이 쓰는 동종 수컷들에 대한 딴지일보식 리포트다.

물론 거창하게 프로이트나 융의 정신분석학적 접근도 있지만 보통 남성들이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체험한 이야기들, 혹은 술자리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윤용인 작가의 거침없이 뱉어내는 ‘솔직담백’이야말로 바로 이 책의 최고 강점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심리학”이라는 말 때문에 조금은 주눅이 든 것도 사실이다. 우선 심리학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점과 함께 고리타분하거나 어려운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는 그런 심리학 서적이 아닌가 하는 편견이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제트기처럼 휙하고 지나갔다. 모두들 작가의 말대로 그런 염려걱정일랑 붙들어 매시라. 책에서도 나오지만 우리가 하는 걱정의 96%가 쓸모가 없다고 했던가. 그 나머지 4% 마저도 우리의 통제권 안에 들어있다고 하니, 부담일랑은 다 털어 버리고 두 팔 두 다리 쭈욱 뻗고 부담 없이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를 즐겨 보도록 하자.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우선 1부에서는 남성 일반에 대한 이야기라면, 2부에서는 남편이나 혹은 아버지의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다. 작가는 질투나 혹은 수다, 감성 부분에 있어서 남자들의 그것이 여자들 못지않다고 주장한다. 보통 여자들이 귀가 얇다고 하지만, 남자도 인간인 이상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게다가 그것이 남자들의 가장 취약지구라고 할 수 있는 자존심 버튼을 건드린다면 더더욱! 그래서 남자들은 절대 길을 잃어도 길을 묻지 않고, 도로에서 뒤에 오는 차에게 추월이라도 당할라치면 모두들 카레이서로 ‘트랜스포밍’한다고 했던가. 정말 핵심을 꼭꼭 찝어낸다.

오늘날 작아져만 가는 부상(father figure)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전 회사 술자리에서 사장님의 고백과 어찌나 그리도 일치하던지 정말 깜짝 놀랐다. 작가가 우리의 술자리 옆에서 감청을 했나 싶을 정도였다. 당신은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위한 밖에서 열심히 돈을 버는 존재이고, 집에서 자신의 공간은 자식들이 커갈수록 점점 줄어든다는 고백이 책에 그대로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랄 노자였다. 책에서 읽을 것을 바로 현실세계에서 바로 확인하는 체험이야말로 우리 독서쟁이들의 꿈이 아니던가.

어려서부터 가부장적인 시스템 아래서 자라온 남자들은, 모름지기 강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마초식 주입교육을 받고 자라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라서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된 남자들 역시 인간이 아니던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아이들에게 고함을 치고 싶고, 마누라들에게 투정을 부리고 싶을 때도 있다. 불완전한 존재들은 남자들을 위해, 무조건 화를 내며 맞설게 아니라 때로는 보듬어 주기도 하고 같이 역정을 들어주길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살포시 코치해주고 있었다.

부부생활에 있어서 “18세기”와 “20세기” 유머는 가히 눈물을 찔끔 자아내게 만들었고, 또 어느 장에 등장하는 대한민국 남정네들만이 유일무이하게 가지고 있는 오빠 판타지 역시 남성 심리학의 대표적인 케이스라 아니할 수가 없다. 특히 쩍벌남의 다리를 조용히 오무려준 경험담은 작가가 기고하던 어느 언론매체에서 이미 읽어봐서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그 때도 속으로 낄낄대며 읽었었는데, 그 통쾌한 감정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렇다고 해서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가 이런 가벼운 유머들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부모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려준 조강지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야말로 험난하기 그지없는 결혼생활의 거센 파고를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었다고 고백했던가. 미처 해보지 못한 경험들을 유경험자의 진술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볼 수가 있었다.

신구의 갈등의 표본을 보여준 <꼰대 정신>에서는 심리학에서 사용되는 인지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ce disorder)라는 조금은 어려운 이론까지 동원을 해서, 명백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합리화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우리네 모습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기도 한다.

자, 이제 조금은 장황했던 북글의 마무리를 지을 때가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와이프도, 아이들도 아닌 내 자아가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 무엇보다 자신이 즐거워야 그 즐거움을 타인에게도 나눠주거나 전파할 수가 있는게 아닌가. 불완전한 존재인 남자들이여, 그대들부터 즐거워지길!   

*** 내가 찾은 오탈자

1. 혐의을 -> 혐의를 (144쪽)
2. 적자 -> 嫡子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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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 빈센트 람 소설
빈센트 람 지음, 이은선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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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의사출신의 작가가 쓴 글이라고 해서 왠지 지루하겠구나하는 선입견을 가졌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런 지루함 대신 마치 짧은 메디컬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엄청난 흡입력을 가진 소설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매 장마다 특별한 주제를 가진 이야기들에 서로 유기적인 연관성들이 적절하게 개입되면서 전개되는 양상이 도저히 신예작가의 작품이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의례 의학소설이라고 하면 떠오르게 되는 난해하기 짝이 없는 전문 의학용어들을 의식해서인지 작가 빈센트 람은 주인공들의 관계에 먼저 초점을 맞춘다. 의과대학에 진학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 밍과 피츠제럴드라는 캐릭터들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의대진학이라는 지상과제에, 남녀간의 밀고 당기는 달콤하면서도 때로는 치명적인 로맨스로 <기적>을 시작한다.

사랑의 장애가 되는 인종간의 격차,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였더라도 어느 순간 타인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관계의 휘발성 등이 빈센트 람의 글을 통해 하나하나 재현이 된다. 성공의 뒤안길에는 그렇게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짙은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상처 입은 사람만이 타인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다는 카피가 와닿는 순간이었다.

주인공들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과연 그들이(미래의 의사 지망생들) 아픈 이들을 돕는 휴머니스트로 적어도 보통 사람들보다는 고결한 도덕주의로 무장한 이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렵다는 의대 시험을 위한 시간을 30분단위로 쪼개 공부를 해대고, 족보를 외우고, 이어질 면접에 대비하는 그네들의 모습을 보니 취업대란 속에서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청춘들의 그것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사실 <기적>은 보통 의학소설들이 독자들에게 제공해주는 싸구려 감동보다는 좀 더 의사들의 내면 묘사에 중점을 둔 것 같다. 그들 역시 보통 사람들처럼 사랑에 상처받고, 외로움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가는 인생들이라고 빈센트 람은 선언을 하고 있다. 같은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해 달라는 말일까?

메디컬 드라마가 그렇듯이 의학소설 역시 그 꽃은 응급실에서의 상황일 것이다. 담당의들의 처방이 생과 사의 경계를 구분하는 그 순간의 미학이야말로 소설 <기적>에서 작가의 진가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과대망상증에 시달리는 환자의 정신상담을 맡기도, 혹은 경찰관에 의해 끌려온 환자에게 깨물리기도 하는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아무리 의사가 직업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역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에게 충실한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SARS에 감염되어 격리병동에 갇힌 천이 동료의사 피츠제럴드를 구하기 위해 보호막을 부수고 응급처치를 하는 장면이었다.

각 에피소드들에 시간과 공간적 갭을 배치한 작가의 탁월한 선견지명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의대입학을 위해 치열하게 살던 주인공들이 어느새 의대생이 되어, 해부를 하고 팀워크를 배우는 장면으로 또는 필드에 나가 각자 고유의 영역에서 치열한 삶을 사는 장면들로의 점프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런 빈 공간들을 독자들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으라는 작가의 조금은 까탈스러운 주문조차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책을 보면서, 이 책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자 후기에 보니 캐나다에서 이미 드라마화되었다고 했던가. 과연 드라마 버전은 어떨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고리타분해 보이는 의학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빈센트 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곧 이어 출간될 전망이라는 그의 다른 작품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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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벳 - 어느 천재의 기묘한 여행
레이프 라슨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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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에 <블루의 불행학 특강>을 읽으면서 그 두께에 놀란 적이 있었다. 오늘 이야기할 <스피벳 - 어느 천재의 기묘한 여행> 역시 전공서적에 버금갈만한 사이즈에 500쪽에 가까운 분량이 선뜻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예고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내용일까 해서 책장을 펴본 순간, 읽고 있던 책마저 내려놓고 이 책부터 먼저 읽게 만드는 마력에 빠져 버렸다.

책의 내용은 무척 간단하다. 미국 몬태나 주 코퍼톱이라는 시골 목장에 사는 12살짜리 꼬마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위치한 스미스소니언 협회가 수상하는 베어드상의 시상자로 결정되고, 주인공 티에스(T.S.) 스피벳이 미국 대륙을 횡단해서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내용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주인공 티에스(이니셜의 T는 쇼쇼니족의 전설적인 전사 테쿰세에서 딴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미국 역사에 오점으로 기록된 인디언 학살에 대한 오마쥬처럼 보인다)는 냉담한 과학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세상을 설명해주는 도구로써 ‘도해’를 선택하고 훌륭한 제도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 물론 그의 멘터인 테렌스 욘 박사가 이 모든 소동을 주도하기는 했지만.

물론 작가 레이프 라슨의 상상력의 구현이겠지만, 확실히 12살짜리 꼬마가 자신의 특별한 관찰력을 이용해서 책에 실린 것과 같은 도해들을 그려낸다면 그야말로 해외토픽에 나올 만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티에스의 완고한 카우보이 아버지는 자신의 맏아들의 능력과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마 총기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막내아들 레이턴의 그림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스피벳 가족에게 레이턴의 이름은 터부처럼 다가온다. 특히 주인공 티에스에게 레이턴은 트라우마의 원천이다.

어쨌든 그 스미스소니언 협회로부터 온 한 통의 전화로 티에스의 장구한 여정이 시작된다. 사실 책을 보면서 계속해서 든 의문인데, 12살짜리 꼬마가 무임승차와 히치하이킹만으로 그 광활한 미국대륙을 횡단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행하는 동안에 필요한 식량은 어떻게 조달한단 말인가? 바로 그 시점에 작가 레이프 라슨은 적절한 판타지들을 심어 둔다. 나같이 태클을 걸 독자들을 위한 작가의 배려일까? 티에스는 주변의 사물과 대화를 하고, 그것들에게 인격을 부여한다. 얼핏얼핏 남미 출신 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주술적 리얼리즘의 향기가 느껴졌다.

게다가 액자식 구성으로 소설 속에 스피벳 가문의 역사적 유래를 다룬 이야기가 티에스가 자신의 어머니 방에서 얼결에 훔쳐온 할머니 엠마 오스터빌 이야기가 중첩이 된다. 사실 이 부분이 티에스의 모험담을 원하는 독자에게 조금은 지루한 요소일지도 모르겠지만, 조상 전래의 과학적 탐구 정신 그리고 어쩌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는 세상에 대한 이성적 접근에 대한 우회적인 표현처럼 보인다.

스피벳의 이 기묘한 여정은 미국 중서부를 횡단하면서, 꼬마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도해와 기록들이 넘실거린다. 분면 티에스는 사진도 찍었지만, 카메라의 렌즈는 티에스의 눈과 손을 대체할 수가 없었나 보다. 맥도널드 해피밀에서 받은 해적인형으로부터, 자신의 가계도, 자신의 이동로 그리고 시카고의 쓰레기 밀도 분포도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도해로 표현해내는 티에스. 여정의 말미에 가서 티에스는 오늘날의 미국에서 이상적인 학생 상으로 떠받들어진다. 물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선,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울 지경에 빠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No pain, no gain 이라는 경구가 정말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역시 이 소설의 백미는 스미스소니언에서 연설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의 과학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른 티에스 스피벳!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얼마 전에 불의의 사고로 죽은 동생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어린 아이일 뿐이다. 물론 그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어른도 있지만, 정말 선의로 그를 도와주려는 이들도 있다. 티에스에게 뿐만 아니라 그만큼 이 세상은 우리 어른들에게 혼란 그 자체다.

이 멋진 소설의 작가인 레이프 라슨은 이 책의 사이드바(측면주석)에 실린 모든 일러스트들을 직접 그렸다고 한다. 이 작품을 준비하는데 무려 4년이나 걸렸다고 하는데, 그만큼의 효과는 충분이 있지 않았나 싶다. 단 한 편의 책으로 문학계의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랐으니 말이다. 북디자이너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의 일러스트들은 확실히 멋지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소설은 모름지기 재밌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나의 소설관과 아주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서 기분이 좋았다.

아무래도 신예작가여서 그런진 몰라도, 초반의 멋진 스타트와 중반의 전개에 비해 결말이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가족중심주의적인 미국의 한계가 드러나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관계의 회복으로 매조지되는 엔딩이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티에스 스피벳과 함께 하는 3000km의 여행은 충분히 그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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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hug! 아프리카
김영희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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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유명한 PD인 김영희 작가의 <헉hug! 아프리카>와 만났다. 개인적으로 텔레비전을 잘 안보기 때문에 김영희 PD가 얼마나 대단한 연출가라는 건 사실 모른다. 하지만 책날개에 실린 그의 약력을 보니 그가 그동안 연출한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왔는지 알만 했다. 아무리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 센스는 있으니 말이다.

책을 집는 순간, 야 제목 한 번 기똥차게 뽑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제목에 들어가 있는 “헉”은 두 가지의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친절하게 달린 영어 설명처럼 껴안기를 뜻한다. 수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던 작가가 어느 날, 배낭과 스케치북을 껴안고 아프리카로 “헉”을 혹은 껴안으러 떠난다. 그리고 두 번째 “헉”은 놀라움이다. 아프리카의 대자연이 빚어내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그리고 그 안에서 부대껴 사는 이들의 다양한 삶의 군상에 우리는 놀라게 된다.

역시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동물의 낙원 혹은 사파리의 천국으로 알려진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김영희 PD는 장장 70여일에 걸친 아프리카 여행길을 시작한다. 여행하는 모든 이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적도 밑의 산 킬리만자로를 찾아서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빅 폴 빅토리아 호수로 작가는 독자들을 인도한다. 게다가 김영희 PD는 이제는 누구나 흔히 찍을 수 있게 된 디카가 빚어내는 빛의 애니메이션이 아닌 직접 손으로 그린 일러스트들을 당당하게 보여준다. 전문적인 작가의 그림은 아니지만, 그네들의 삶의 면모가 드러나는 그림 이야기가 마음 푸근하게 다가온다.

그가 들렸던 나라 중의 하나인 짐바브웨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얽힌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선 가게에는 살만한 상품다운 물건이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물건을 사기 위해도 물건 값이 오른다는 이야기가 가히 충격적이었다. 변변찮은 물건을 사기 위해 돈뭉치를 들고 다녀야 한다는 그네들의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한편, 냉장시설이 시원치 않은 현지에서 찬 맥주를 마시기 위해 스와힐리어를 배우고, 어느 맥주병에 붙은 라벨을(그 문구가 정말 멋지다) 떼기 위해 몇 병을 마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작가의 노고를 치하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어려서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통해 알게 된 오카방고 델타 여행담을 최고로 꼽고 싶다. 역시 자신이 아는 부분에 대해 더 호감을 가지게 되는 모양이다. 오카방고 델타의 미로 같은 수로를 가이드들과 함께 하는 원시세계로 호기 좋게 탐험을 떠나는 작가의 모습에서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홀로 하는 여행길에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나미비아에서는 미처 비자를 받지 못해 입국을 하지 못해 입국거부를 당하기도 하고, 말리의 사하라 투어에서는 얼치기 가이드에게 협박을 당하기고 했으며, 심지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더번에서는 노상강도를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위기를 작가는 하쿠나 마타타(no problem) 정신으로 헤쳐 나간다. 어쩌면 김영희 PD의 그런 잊고 싶은 추억조차 아프리카의 한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아프리카에 대해 모르고 있던 재밌는 사실들을 알게 됐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 모든 강의 어머니로 불리는 나일 강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고 한다. 물론 그건 어디에서 보느냐의 기준이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로, 아프리카에서도 겨울 파카가 필요하다. 열사의 땅으로 각인되어 있는 아프리카에서 겨울 파카가 웬 말이겠냐고 하겠지만 작가는 오카방고 델타 부근의 타운에서 겨울 파카를 구입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에도 펭귄이 살고 있다. 펭귄 녀석들은 모두 남극에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프리카 최남단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의 볼더스 비치라는 곳에 살이 투실투실하게 오른 펭귄들이 군락지가 엄연히 있다는 사실.

책을 읽으면서 김영희 PD의 막무가내 정신이 마냥 부러웠다. 우선 일상을 접고 아프리카로 떠났던 그의 패기 넘치는 도전정신과 많은 난관을 모든 게 잘될 거야라는 긍정의 힘으로 돌파해 나가는 과정이 또 한 명의 나그네의 역마살을 한껏 자극하고 있었다. 물론 며칠 동안 고락을 같이 간 사파리 가이드들에게 얼마나 팁을 주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는 초식남으로서의 모습도 보여주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비록 버스 출발시간이 잘 안 지켜지고, 공항에서 연착은 다반사인데다가 공무원들의 불친절, 밍밍한 맥주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어떻게든 바가지를 씌우려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에 의하면 만능치료약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조차도 추억이 되기 마련이란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살아 있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원초적 생명력과 가능성이야말로 아프리카의 참맛이 아닐까. This is Afri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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