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자연유산 - 유네스코가 선정한 5대 명소 가이드 여행인 시리즈 5
박지민 지음 / 시공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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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책을 보는 순간 금세 다 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중국 여행의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박지민 작가의 꼼꼼하게 기록한 글과 사진 그리고 여행 루트와 에세이를 읽다 보니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보통 여행을 다룬 서적은 반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다.

사실 어려서 역사를 공부하던 시절에는 꼭 중국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아직까지도 중국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반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본에는 세 번이나 다녀왔다. 중국 여행하면 자연유산보다 문화유산에 더 호기심을 갖곤 했는데 <중국의 자연유산>을 읽으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역시 대국답게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비경을 품은 절경이 책의 곳곳에서 소개된다.

초보도 알기 쉽게 박지민 작가는 중국의 자연유산 관광을 위한 첫걸음부터 자세하게 소개해준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자연유산, 문화유산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게 될 중국의 자연 및 문화유산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1985년 이래 무려 40곳이 자연(8곳), 문화(28곳) 및 복합유산(4곳)으로 선정된 중국은 단연 관광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자연유산>에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5곳의 자연유산을 다룬다.

일번타자는 쓰촨성의 주자이거우와 황룽이다. 아무래도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중국식 발음보다 종래의 한자식 발음에 익숙해서인진 몰라도 구채구(九寨溝)의 중국식 발음인 주자이거우가 낯설기만 하다. 물론 책에 실린 사진과 실물이 다르겠지만, 아쉬운 대로 사진으로 만난 주자이거우의 물빛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같은 호수에서도 변화무쌍한 물빛의 변화를 자랑한다는 물빛은 주자이거우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잔도와 어울려 가히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박지민 작가는 그런 풍광만큼이나 주자이거우에 지금도 살고 있는 장족에 대한 글도 빠뜨리지 않는다. 역시 공간의 아름다움은 그 안에 생동감이 있을 때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자이거우의 곳곳에 대한 설명도 일품이다. 수정거우를 비롯해서 이름도 다 외울 수 없는 곳곳의 호수에 담긴 전설은 그 의미를 더하지 않나 싶다. 사진으로 르쩌거우에 비친 물그림자를 보는 순간 정말 당장에라도 주가이거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 탄화칼슘 침전물이 쌓여 형성된 신선세계 황룽의 곳곳도 절경 그 자체였다.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하기도 쉽지 않지만, 수백 개의 옥판이 줄지어 선 장관의 우차이츠는 최고였다. 우차이츠 같은 절경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달래기에는 너무 아쉬운 느낌이었다.

세계 복합유산으로 유명한 황산은 남성적 아름다움이라는 부제로 당당하게 독자와 만난다.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수직 절리가 빚어내는 절경은 정말 말로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다. 황산의 수많은 기암괴석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멍비성화를 비롯해서, ‘원숭이가 바다를 본다’는 의미의 허우쯔관하이가 인상적이었다. 그 수많은 계단을 인간의 힘으로 완성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소개되는 장자제의 첸쿤주가 영화 <아바타> 할렐루야 봉의 모델이었다는 말이 바로 이해가 됐다.

박지민 작가는 중국의 자연유산의 소개뿐만 아니라 보존에도 관심을 보인다. 인간의 손이 타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자연훼손과 오염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한다. 이런 귀중하고 아름다운 자연유산은 인류가 공동으로 누려야할 자원이라는 점에 공감한다. 하지만, 후세에게도 이런 소중한 자연유산을 전해 주기 위해 우리의 의무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해준다. 아울러 무조건적인 개발과 편리가 만능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렇게 멋진 곳을 눈으로만 여행하기에는 정말 아쉬웠다. 과연 중국에 언제 가게 될진 모르겠지만, <중국의 자연유산>을 통해 알게 된 여행지 중에서 한두 곳은 언제고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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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퍼 씨의 12마리 펭귄 반달문고 19
리처드 앳워터.플로렌스 앳워터 지음, 로버트 로손 그림, 정미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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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읽는 동화의 세계는 어떨까? 리처드와 플로렌스 앳워터 부부의 공동 집필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파퍼 씨의 12마리 펭귄>은 평소와는 좀 다른 시선으로 읽게 됐다. 남극에서 드레이크 제독이 보내준 펭귄 캡틴 쿡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동화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미국 모처의 스틸워터라는 마을에서 칠장이로 사는 파퍼 씨는 자신의 본업인 페인트칠 말고 극지방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이 괴짜 칠장이 아저씨는 마을의 부엌을 한 가지 색이 아닌 다른 두 가지 색깔로 칠하면서 비난이 아닌 칭찬을 받는다. 거 참 특이한 양반일세! 그러던 어느 날, 남극으로 탐험을 떠난 드레이크 제독에게 보낸 감동적인 사연이 라디오 방송을 타면서 무료한 파퍼 씨의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드레이크 제독이 파퍼 씨에게 선물로 남극의 새 펭귄을 선물한 것이다.

단박에 그 펭귄에게 “캡틴 쿡”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파퍼 씨네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겨울나기가 급급한 파퍼 부인에게 군식구 캡틴 쿡의 등장은 영 달갑지 않다. 게다가 사람도 먹지 못하는 새우 통조림 같은 먹이를 줘야 하지 않은가. 게다가 파퍼 씨는 이 귀여운 불청객을 위해 냉장고에 구멍을 뚫고 보금자리를 만드느라 아까운 돈을 펑펑 써댄다. 이 말썽꾼 펭귄의 돌출행동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녀석은 외로움으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다. 수소문 끝에 그레타를 찾아 짝으로 삼아 주지만, 캡틴 쿡과 그레타의 사랑으로 자그마치 10마리나 되는 펭귄이 태어나면서 파퍼 씨네는 그야말로 난리법석이다.

당장 펭귄들의 먹을 것과 지하실에 설치한 아이스링크 덕분에 빚까지 지게 된 파퍼 씨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순회공연 기획사 그린바움 씨의 등장으로 파퍼 씨가 준비한 12마리 펭귄의 서커스가 대박을 내면서 기상천외한 그들의 모험은 계속된다.

<파퍼 씨의 12마리 펭귄>은 어찌 보면 일상에 파묻혀 꿈을 잃은 가장의 오늘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가장 파퍼 씨의 극지방 탐험의 꿈을 이루게 해주는 펭귄 캡틴 쿡의 등장은 그래서 경이롭다. 진심으로 펭귄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 파퍼 씨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정말 엄청나다. 집을 오랫동안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파퍼 부인은 펭귄 영화 덕분에 받게 된 25,000달러나 되는 거금과 선교회 모임에 가야 한다는 말로 부군의 걱정을 말끔하게 덜어준다. 지화자!

동화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서글플 수도 있지만, 펭귄들의 먹이와 서식처 공급을 위해 돈이 든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결국 파산의 위기에 몰린 파퍼 씨네를 구원하는 것은 쇼 비즈니스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공연무대에 나선 펭귄들의 대활약으로 파퍼 씨네는 재정 위기를 탈출한다. 파퍼 부인이 하는 돈 걱정은 어쩌면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일 지도 모르겠다. 돈이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필요조건 중의 하나라는 점에는 이의를 달 수 없을 것 같다.

이 유쾌한 한 편의 동화를 다 읽고 나서, 유명 코미디언 짐 캐리가 타이틀 롤을 맡은 동명의 영화 프리뷰를 보게 됐다. 원작과는 달리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정말 재밌어 보였다. 짐 캐리의 오버 연기가 돋보이는 가운데, 12마리에서 6마리로 반절이 줄은 펭귄의 모험은 좀 더 극대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권선징악의 주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펭귄을 동물원에 가두려는 악당에 맞서 싸우는 파퍼 씨의 유머 넘치는 액션이 영화로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극한다.

그동안 펭귄 이야기는 러시아 출신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펭귄의 우울> 시리즈만 있는 줄 알았는데, 더 오래전에 세상의 빛을 본 또 다른 펭귄 이야기가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다음달에 영화가 개봉되면 한 번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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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바꾼 사진들 - 카메라를 통한 새로운 시선, 20명의 사진가를 만나다
최건수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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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재밌다. 사진을 바꾼 사진들이라. 세상을 바꾼 사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자꾸만 제목을 들여다보게 된다. 30년 넘게 사진계에서 활동한 최건수 작가의 사진 이야기에는 묘한 울림이 있다. 이제는 사진의 영역을 넘어 기획과 평론에까지 진출한 노련한 사진작가의 이야기를 펼친다.

일단 여느 사진작가의 에세이와 달리 사진보다 글이 많다. 사실 좀 놀랐다. 보통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아마 소설가가 문장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표현을 하는 것처럼 사진가의 책은 글보다 사진이 더 많을 거라는 예단이 좀 성급했다는 느낌이다. 최건수 작가는 사진을 전복시키겠다는 열망을 드러낸 20명의 작가의 작품에 초점을 맞춘다.

통증의 세계관이라는 타이틀을 단 강홍구 작가의 사진에서는 한때 서구에서 유행했던 해체주의 철학 사조의 잔향을 느낄 수가 있었다. 개발만능주의 사고에 빠진 토목공화국의 현실을 대변하는 파괴와 해체를 피사체로 삼은 김포공항 부근의 오쇠리 연작에는 “소음”으로 야기된 이주와 보상이라는 물질주의가 엿보인다. 천박한 자본주의 개발논리에 내몰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아우성이 일견 밋밋한 보이는 사진을 통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데비한이라는 작가의 비너스 연작도 흥미진진하다. 초반에 등장하는 비너스 석고상을 조각하는 손을 찍은 사진에서는 “피그말리온”이 연상된다. 분명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모방한 <생각하는 비너스>는 매력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부조화가 느껴진다. 바로 그 다음에 등장하는 <좌삼미신>은 마치 동네 점방에서 고스톱이라도 치기 위해 모인 동네 아낙들의 대화처럼 보였다. 아 내가 너무 속되게 사진을 보는 걸까? 최건수 작가가 표현한 대로 전복적인 유머와 시각적 즐거움이 느껴지는 유쾌한 사진이었다.

사실 예술에서 모더니즘의 개념조차 모르는 무지한 독자에게 조각, 회화 그리고 사진을 오가는 탈장르적인 시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시도였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이스라엘 출신의 에프라임 키숀은 일찍이 고전 회화예술만 예술로 보고, 정말 이해불가의 현대예술은취급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지 않았던가. 키숀처럼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상상을 탐하는 사람들>의 상당 부분을 들여 소개한 작가들의 작품 세계에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상을 읽는 사람들>도 평범한 독자의 수준에 맞는 것도 아니라는 느낌이다. 사진의 기능을 정물이나 배경 혹은 사건의 기록 정도로 치부해온 범인(凡人)에게 최건수 작가가 소개한 사진작가들의 작품은 하나 같이 어려울 따름이다. 그나마 염중호 작가의 무릉기행 시리즈 정도가 이해가능 범주에 들었지 싶다. 최건수 작가의 ‘부유하는 기표’라는 기호학적 시도는 들을수록 머리가 지끈거린다. 보면 볼수록 알쏭달쏭해지는 사진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상상됐다.

아마 사진 전시회에 가서 사진 밑에 걸린 설명이 없다면 “도대체 뭐지?”라는 말을 연발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알쏭달쏭하고 난해한 사진과 그에 대한 미학적 설명에 좌절했다. 피상적으로만 알던 사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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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와인에 빠져들다
로저 스크루턴 지음, 류점석 옮김 / 아우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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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의 철학자이자 미학 교수인 로저 스크루톤의 <철학자, 와인에 빠져들다>는 철학의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를 패러디한 <나는 마신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철학자의 와인 가이드>라는 멋진 제목을 원제로 하고 있다. 이 책을 그냥 원제목대로 했으면 어떨까 하는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칠레와의 FTA로 칠레에서 난 질 좋고 값싼 와인을 많이 접할 수 있을 거라는 어느 위정자의 말을 듣고 고소를 금치 못했다. 어쨌든 간에 여전히 와인은 보통 사람들이 접하기 쉽지 않은 술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보다는 훨씬 더 나은 조건에서 다양한 와인을 접할 수 있는 로저 스크루톤 교수가 부러웠다. 자신의 전공인 철학은 물론이고, 와인에도 조예가 깊어서 와인 시음회에 초청될 정도라고 하니 말이다. 로저 스크루톤은 권두에서 쾌락주의자로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와인/술을 즐기자는 애주가를 위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역시 술을 마실 줄 아는 풍류가의 호방함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그의 철학은 어떨까? 애주가라는 예상을 깨고(?) 철학에 대한 이해와 분석의 폭도 대단하다.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서양 고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에서 시작한 그의 이야기는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작가 스스로 걸출한 영웅이라고 평하는 헤겔과 이태리산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를 연결시킨다. 내가 아는 와인이라고는 고작 좋아하는 독일산 리슬링, 카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정도인데 정말 낯선 와인의 행진이 이어진다. 도대체 누가 헤겔이 역사에서 퍼 올린 인간 시대정신(Zeistgeist)의 시대적 소명을 토스카나산 와인을 마시는 이유에 대입하는 내공을 시전할 수 있단 말인가!

스크루톤은 또한 음주의 기원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는다. 일찍이 인류는 음주를 신을 맞이하는 제의의 한 종류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흥으로 즐기는 술이 고대에는 접신의 한 가지 방법이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이 뒤따르는데, 음주한 인간의 추태를 인간행위가 아닌 신의 행위로 돌렸다고 한다. 유레카! 이보다 더 애주가들을 위한 멋진 철학적 해석이 있을쏘냐.

본격적인 <나는 마신다>편에서는 자신의 음주 입문을 소상하게 독자에게 전달한다. 엘더베리 과실주로 술의 세계에 들어선 스크루톤이 어떻게 해서 바쿠스의 사제가 되었는지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학창시절 그의 동료였던 아일랜드 출신 데스먼드와 지도교수 피킨 박사 그리고 왓킨 박사와 함께 했던 환상적 시절에 대한 향수도 빠지지 않는다.

로저 스크루톤은 어떻게 보면 일견 고리타분해 보이는 철학이라는 주제에 와인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를 곁들여서 독자를 유혹한다. 그의 프랑스 와인 기행을 읽으면서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척의 거리에서 다양한 음식 문화를 발전시켜온 유럽에 사는 이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즐거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도국가의 시민으로서는 정말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프랑스 와인의 예찬론자 스크루톤 교수가 더 얄미웠다 보다.

자, 음주의 기원을 밝혔으니 이제는 와인의 기원을 들려줄 차례다. 소아시아를 원산지로 하는 포도를 원료로 하는 와인은 인류 문명만큼이나 오래됐다고 한다. 와인애호가로서 작가가 사랑해마지 않는 프랑스 와인 외에도 레바논, 그리스 그리고 현대에 가장 많이 소비되는 대중적인 캘리포니아 와인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와인 생산지에 대한 정보를 들려준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대형마트나 와인전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노 누아르”가 신세계 포도와 구세계 포도가 이종교배로 만난 새로운 품종의 포도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호주산 와인 편에서는 오래전에 들렀던 애들레이드 와인 투어에서 멋도 모르고 오크통에서 공짜로 한잔씩 제공하는 와인을 사양하지 않고 마셨다가 은근하게 취했던 추억도 떠올랐다. 잊을 수 없는 어느 낮술의 기억이다.

첫 번째 장에서 와인에 대한 개인의 실존적 체험을 들려주었다면, 두 번째 장에서 로저 스크루톤은 보다 “의식과 존재”라는 철학적 논제를 다룬다. 객체에 포위된 세계에서 진정한 자아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그리고 의식이 주목하는 대상 끝에서 한 잔의 술과 마주치게 될 것이라고 이 와인애호가는 선언한다. 아울러 의식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다. 역시 단순하게 술로서 와인을 다룬 부분에서는 비교적 쉬웠지만, 의식과 존재론에 들어오면서도 다시 대취한 다음 날의 숙취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어렵다 어려워.

로저 스크루톤이 수년간의 사색의 결과 도달한 내가 의식의 총체라는 의견에는 공감한다. 어떻게 보면 교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나야말로 이 우주의 중심이 아닌가. 물론 그 점이 현실의 그것과 동조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 다음에는 이어지는 내가 자유로운 의지의 주인인가에 대해서는 좀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다. 와인보다 맥주를 더 좋아했던 쇼펜하우어가 철학사에서 끝없는 ‘분란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저자의 단언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학적 탐구가 필요한 게 아닐까?

청교도적인 금주운동에 대해서도 저자는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다. 일찍이 사도 바울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도반 디모데에게 너무 물만 마실 것이 아니라 와인도 좀 마시라는 말이 성경에 담겨 있다고 하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과유불급이라는 격언처럼 와인을 마시는데 있어 중용의 미덕도 빠뜨릴 수가 없다. 한 잔 술의 담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면 와인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와인 옹호론에 흠뻑 취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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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레드 라인
제임스 존스 지음, 이나경 옮김, 홍희범 감수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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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사(戰史)에 어려서부터 관심이 많았다. 특히 타임라이프-한국일보에서 나온 <제2차 세계대전>은 그야말로 신주단지 모시듯 했다. 처음에 10권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헌책방을 순례하며 이가 빠진 것들을 사 모았다. 이 방대한 전사 시리즈를 통해 유럽전선에서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전쟁의 향방을 갈랐다면, 거의 미국이 도맡아서 전쟁을 치른 태평양전선에서는 과달카날 전투(Guadalcanal Campaign)가 승부의 분수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이 전투를 주제로 한 전쟁문학의 전설이 바로 제임스 존스의 원작 <신 레드 라인>이었다. 이미 두 번이나 영화화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이라고나 할까.

미국 전쟁사에서 한 획을 그은 과달카날 전투에 육군 25사단 보병으로 직접 참전했던 제임스 존스의 일본군과 치열했던 전투에 대한 묘사는 상상 그 이상이다. 사실 본격적인 전투가 개시되기 전까지 소설에 몰입하기란 쉽지 않다. 조국을 지킨다는 이유로 징집되거나 혹은 자원해서 전쟁터를 찾은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차분하게 소개된다. 일견 따분해 보이는 초반부는 작가 제임스 존스가 시연하는 본격적인 전투 이야기에 앞선 워밍업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1942년 11월 10일, 남태평양의 외딴 섬 과달카날에 상륙한 찰리 중대원들의 심리는 복잡하다. 어떤 이는 영웅주의에 빠져 피와 살이 튀는 전쟁터를 낭만적으로 상상하고, 집에 남겨 두고 온 아내가 바람날까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전직 장교가 있는가 하면 지긋지긋한 취사병 생활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소총수로 활약하기 위해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누비는 얼치기 쇼비니스트도 있다. 사병들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업적을 위해 병사들을 사지로 내모는 이기적인 지휘관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찰리 중대의 수장 버거 스타인 대위는 유대인이라는 콤플렉스를 안고 시시때때로 자신에게 반항하는 병사들을 이끌고 버마, 필리핀 그리고 싱가포르 전장에서 단련된 역전(歷戰)의 일본군을 상대한다.

스타인의 찰리 중대원들의 겪어야 할 고초는 일본군이 쉴 새 없이 쏘아대는 총탄과 박격포탄 뿐만이 아니다. 오한과 고열로 야기하는 말라리아도 보이지 않는 적이다(실제로 8,000여명의 병사들이 말라리아에 시달렸다고 한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서 병사들 간의 동성애마저 등장한다. 열대의 태양이 작열하는 전장에서의 타는 듯한 갈증 때문에 기절하는 병사가 속출한다. 210고지를 선점하고 방어진지를 구축한 일본군으로부터 기관총탄이 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대대장 톨 중령은 부하 중대장들을 닦달해서 어떻게든 고지를 점령하라는 무모한 명령을 내린다.

순간 버거 스타인 대위는 톨의 명령 때문에 지난 2년간 동고동락한 자신의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항명한다. 상명하복이라는 절대적인 명제 아래서 훈련된 군조직의 작은 균열이 드러난다. 병사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물 보급도 없이, 그저 명령대로 돌격해서 적의 진지를 유린하라는 현실을 무시한 명령에 스타인 대위는 어이없어 하지만 어느새 휘하 병사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톨 중령의 명령이 실행되었다는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나폴레옹 최후의 전투였던 워털루에서 그루쉬가 내린 1초의 결정이 전 유럽의 역사를 바꾸었듯이, 과달카날의 전장에서도 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반복된다.

제임스 존스는 잔혹한 전장의 현실을 가감 없이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곧 죽을 이에게 시간낭비할 것 없다는 구절은 죽음과 삶을 가르는 전장에서 함께 한 동료의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마저도 그대로 무장 해제시켜 버린다.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는 병사가 아닌 인간의 이중성도 그대로 분출한다. 끔찍한 비명을 질러대며 죽어가는 동료에게 모르핀 주사를 건네주기 위해 사선을 넘는 그네들의 모습은, 아름답게 내리 비치는 남태평양에서 맞이하는 석양만큼이나 이질적이다.

일본군의 잔학행위에 치를 떨며 필리핀 바탄에서의 ‘죽음의 행군’을 기억해내고,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미군이 “누렁이” 포로들을 잔인하게 처치하는 장면 역시 비극의 확장이다. 수류탄 하나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얼치기들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인 같은 호모 사피엔스를 학살하는 장면은 상상을 초월한다. 연이은 전투라는 초강도 폭력에 무감각해져 버린 찰리 중대원들이 살인의 쾌감에 빠진 기계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은 갈수록 비참해지는 전쟁의 현실과 궤도를 같이 한다.

그렇게 제임스 존스는 전쟁이 보여 줄 수 있는 최악을 통해 독자에게 반전이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날린다. 이런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과연 그 누가 인간다움을 유지하면서 스스로를 문명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단순히 이국적 풍경을 배경으로 한 낭만적인(?) 전투나 극악한 일본군을 무찌르는 미군의 영웅담을 기대하고 <신 레드 라인>을 펼쳤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이 소설은 조국을 위한 전쟁이라는 프로파간다와 거대한 폭력 아래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간 청춘들에 대한 어느 베테랑의 절절한 오마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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