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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바꾼 사진들 - 카메라를 통한 새로운 시선, 20명의 사진가를 만나다
최건수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제목이 재밌다. 사진을 바꾼 사진들이라. 세상을 바꾼 사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자꾸만 제목을 들여다보게 된다. 30년 넘게 사진계에서 활동한 최건수 작가의 사진 이야기에는 묘한 울림이 있다. 이제는 사진의 영역을 넘어 기획과 평론에까지 진출한 노련한 사진작가의 이야기를 펼친다.
일단 여느 사진작가의 에세이와 달리 사진보다 글이 많다. 사실 좀 놀랐다. 보통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아마 소설가가 문장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표현을 하는 것처럼 사진가의 책은 글보다 사진이 더 많을 거라는 예단이 좀 성급했다는 느낌이다. 최건수 작가는 사진을 전복시키겠다는 열망을 드러낸 20명의 작가의 작품에 초점을 맞춘다.
통증의 세계관이라는 타이틀을 단 강홍구 작가의 사진에서는 한때 서구에서 유행했던 해체주의 철학 사조의 잔향을 느낄 수가 있었다. 개발만능주의 사고에 빠진 토목공화국의 현실을 대변하는 파괴와 해체를 피사체로 삼은 김포공항 부근의 오쇠리 연작에는 “소음”으로 야기된 이주와 보상이라는 물질주의가 엿보인다. 천박한 자본주의 개발논리에 내몰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아우성이 일견 밋밋한 보이는 사진을 통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데비한이라는 작가의 비너스 연작도 흥미진진하다. 초반에 등장하는 비너스 석고상을 조각하는 손을 찍은 사진에서는 “피그말리온”이 연상된다. 분명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모방한 <생각하는 비너스>는 매력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부조화가 느껴진다. 바로 그 다음에 등장하는 <좌삼미신>은 마치 동네 점방에서 고스톱이라도 치기 위해 모인 동네 아낙들의 대화처럼 보였다. 아 내가 너무 속되게 사진을 보는 걸까? 최건수 작가가 표현한 대로 전복적인 유머와 시각적 즐거움이 느껴지는 유쾌한 사진이었다.
사실 예술에서 모더니즘의 개념조차 모르는 무지한 독자에게 조각, 회화 그리고 사진을 오가는 탈장르적인 시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시도였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이스라엘 출신의 에프라임 키숀은 일찍이 고전 회화예술만 예술로 보고, 정말 이해불가의 현대예술은취급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지 않았던가. 키숀처럼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상상을 탐하는 사람들>의 상당 부분을 들여 소개한 작가들의 작품 세계에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상을 읽는 사람들>도 평범한 독자의 수준에 맞는 것도 아니라는 느낌이다. 사진의 기능을 정물이나 배경 혹은 사건의 기록 정도로 치부해온 범인(凡人)에게 최건수 작가가 소개한 사진작가들의 작품은 하나 같이 어려울 따름이다. 그나마 염중호 작가의 무릉기행 시리즈 정도가 이해가능 범주에 들었지 싶다. 최건수 작가의 ‘부유하는 기표’라는 기호학적 시도는 들을수록 머리가 지끈거린다. 보면 볼수록 알쏭달쏭해지는 사진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상상됐다.
아마 사진 전시회에 가서 사진 밑에 걸린 설명이 없다면 “도대체 뭐지?”라는 말을 연발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알쏭달쏭하고 난해한 사진과 그에 대한 미학적 설명에 좌절했다. 피상적으로만 알던 사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