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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퍼 씨의 12마리 펭귄 ㅣ 반달문고 19
리처드 앳워터.플로렌스 앳워터 지음, 로버트 로손 그림, 정미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어른이 읽는 동화의 세계는 어떨까? 리처드와 플로렌스 앳워터 부부의 공동 집필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파퍼 씨의 12마리 펭귄>은 평소와는 좀 다른 시선으로 읽게 됐다. 남극에서 드레이크 제독이 보내준 펭귄 캡틴 쿡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동화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미국 모처의 스틸워터라는 마을에서 칠장이로 사는 파퍼 씨는 자신의 본업인 페인트칠 말고 극지방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이 괴짜 칠장이 아저씨는 마을의 부엌을 한 가지 색이 아닌 다른 두 가지 색깔로 칠하면서 비난이 아닌 칭찬을 받는다. 거 참 특이한 양반일세! 그러던 어느 날, 남극으로 탐험을 떠난 드레이크 제독에게 보낸 감동적인 사연이 라디오 방송을 타면서 무료한 파퍼 씨의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드레이크 제독이 파퍼 씨에게 선물로 남극의 새 펭귄을 선물한 것이다.
단박에 그 펭귄에게 “캡틴 쿡”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파퍼 씨네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겨울나기가 급급한 파퍼 부인에게 군식구 캡틴 쿡의 등장은 영 달갑지 않다. 게다가 사람도 먹지 못하는 새우 통조림 같은 먹이를 줘야 하지 않은가. 게다가 파퍼 씨는 이 귀여운 불청객을 위해 냉장고에 구멍을 뚫고 보금자리를 만드느라 아까운 돈을 펑펑 써댄다. 이 말썽꾼 펭귄의 돌출행동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녀석은 외로움으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다. 수소문 끝에 그레타를 찾아 짝으로 삼아 주지만, 캡틴 쿡과 그레타의 사랑으로 자그마치 10마리나 되는 펭귄이 태어나면서 파퍼 씨네는 그야말로 난리법석이다.
당장 펭귄들의 먹을 것과 지하실에 설치한 아이스링크 덕분에 빚까지 지게 된 파퍼 씨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순회공연 기획사 그린바움 씨의 등장으로 파퍼 씨가 준비한 12마리 펭귄의 서커스가 대박을 내면서 기상천외한 그들의 모험은 계속된다.
<파퍼 씨의 12마리 펭귄>은 어찌 보면 일상에 파묻혀 꿈을 잃은 가장의 오늘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가장 파퍼 씨의 극지방 탐험의 꿈을 이루게 해주는 펭귄 캡틴 쿡의 등장은 그래서 경이롭다. 진심으로 펭귄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 파퍼 씨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정말 엄청나다. 집을 오랫동안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파퍼 부인은 펭귄 영화 덕분에 받게 된 25,000달러나 되는 거금과 선교회 모임에 가야 한다는 말로 부군의 걱정을 말끔하게 덜어준다. 지화자!
동화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서글플 수도 있지만, 펭귄들의 먹이와 서식처 공급을 위해 돈이 든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결국 파산의 위기에 몰린 파퍼 씨네를 구원하는 것은 쇼 비즈니스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공연무대에 나선 펭귄들의 대활약으로 파퍼 씨네는 재정 위기를 탈출한다. 파퍼 부인이 하는 돈 걱정은 어쩌면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일 지도 모르겠다. 돈이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필요조건 중의 하나라는 점에는 이의를 달 수 없을 것 같다.
이 유쾌한 한 편의 동화를 다 읽고 나서, 유명 코미디언 짐 캐리가 타이틀 롤을 맡은 동명의 영화 프리뷰를 보게 됐다. 원작과는 달리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정말 재밌어 보였다. 짐 캐리의 오버 연기가 돋보이는 가운데, 12마리에서 6마리로 반절이 줄은 펭귄의 모험은 좀 더 극대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권선징악의 주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펭귄을 동물원에 가두려는 악당에 맞서 싸우는 파퍼 씨의 유머 넘치는 액션이 영화로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극한다.
그동안 펭귄 이야기는 러시아 출신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펭귄의 우울> 시리즈만 있는 줄 알았는데, 더 오래전에 세상의 빛을 본 또 다른 펭귄 이야기가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다음달에 영화가 개봉되면 한 번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