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역시 나의 루이스 세풀베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칠레 출신으로 환경문제, 정치적 이슈 그리고 마푸체 인디오들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아낌 없이 시전하고 있는 동시대 작가의 새로운 동화책을 만나볼 수가 있었다. 이번 동화를 닮은 소설의 주인공은 마푸체 인디오 말로 충직을 의미하는 아프마우다. 개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채 100쪽이 되지 않는 동화는 정말 심오하면서도 현재를 사는 우리가 생각해 볼 주제들로 가득했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는 우선 인디오 사냥에 나선 윙카(외지인들)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선봉장에는 추적을 위해 우리의 진짜 주인공 아프마우가 서 있다. 이제 시간의 흐름 속에 늙어가는 아프마우는 정글과 드넓은 강을 넘나드는 고된 추적 가운데, 자신의 삶을 반추해본다. 강아지 시절, 자신을 실어 나르던 말에서 떨어져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해지지만 재규어 나웰의 도움으로 살아나는 과정은 정말 동화적 상상의 극치를 달린다. 재규어 나웰은 어린 강아지 아프마우를 마푸체 인디오들의 삶의 터전인 왈마푸로 데려다 준다. 거기서 어린 아우카만과 걱정 없이 살던 아프마우에게 윙카들이 들이 닥치면서 그네들의 삶은 풍지박산이 난다.

 

그것은 마치 500년 전, 스페인 정복자들의 침략처럼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졌다. 총칼을 앞세운 폭력 앞에 아우카만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마을 사람들은 윙카들을 피해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그리고 주인고 아프마우 역시 윙카들에게 사로잡혀 고단한 삶을 시작한다. 이 무람없는 윙카들은 대지의 정령이라고 할 수 있는 응구네마푸에 대한 존경심 따위라고는 조금도 없는 이방인들이다. 응구네마푸를 믿는 이들이라면, 모든 삶이 순환이라는 개념에서 자신이 생존을 위해 먹는 것도 모두 대지의 거대한 순환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인데, 이 무법자들에게 대지는 그저 약탈의 대상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아마 이 심오한 주제에서는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생활의 편리라는 점 때문에 미래의 심각한 환경오염과 재앙을 유발할 수도 있는 난개발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지 않은가. 훗날 이러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모른 채 말이다. 지금 당장 우리네 삶을 심각한 수준으로 위협하고 있는 황사나 미세먼지를 연상해 보면 무슨 말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마푸체 인디오들을 내쫓아 버리면서도 윙카들은 독일산 셰퍼드(아프마우)가 인디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자신들이 거둬간다. 어쩌면 이런 설정도 계급착취의 일환으로 순치되어 동화 속에 등장한 게 아닐까. 마푸체 인디오들의 삶의 터전은 토지는 물론이고, 그들이 보유한 보잘 것 없는 재산조차 약탈의 대상으로 간주한 윙카들에 대한 고발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런 윙카들의 사고가 생성과 소멸이 응구네마푸, 다시 말해 대지의 섭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마푸체 사람들의 믿음과 상충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동화 속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윙카들과 아프마우가 쫓는 대상을 처음에는 그저 부상당한 인디오라고만 설정해서 작가의 무슨 꿍꿍이가 숨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의 인디오는 아프마우와 오랫동안 헤어졌던 옛 친구(페니) 아우카만이었다. 마푸체 사람들의 땅을 노리는 윙카들에게 글을 깨우치고, 마푸체 사람들을 조직해서 대항하려는 아우카만이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윙카로 대변되는 기득권층에게 두려운 것은(동화 속에서 아프마우는 수시로 두려움의 냄새를 인지한다) 바로 그런 자각과 연대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그러니 그의 할아버지를 총으로 죽였던 것처럼 윙카들은 또다른 폭력의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의 충직한 아프마우의 태업이 작가가 동화 후분에 배치한 놀라운 만남과 슬픈 결말을 예비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지식인의 시점을 개에 투영해서 동화 스타일로 풀어낸 작가의 시도에 경의를 표한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우리에게는 정말 생소한 마푸체 언어로 독자를 그네들의 세상으로 인도한다. 나와는 다름이 어느덧 불편함을 그리고 나쁘다는 선동이 난무하는 시절에, 세풀베다처럼 그런 불편함을 견디며 사는 것도 삶의 한 부분이라고 말하고 쓸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독서야말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그런 간접체험을 할 수 있는 최고의 효용을 담은 선물이라는 작은 생각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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