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을 너무 사랑한 남자 - 책 도둑과 탐정과 광적인 책 수집가들에 대한 실제 이야기
앨리슨 후버 바틀릿 지음, 남다윤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책을 사랑한다. 책이 좋아서, 책을 사는 데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 홈쇼핑을 통해 다양한 물건을 구입하듯이 나도 그렇게 다양한 루트를 통해 책을 구입한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오프라인 서점, 헌책방, 북페스티벌 등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수중에 넣는다. 나의 책 구입 행동에 하자가 있을까? 그건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름대로 애서가를 자처하는 독서가로서 <책을 너무 사랑한 남자>에 나오는 반쪽 주인공 존 길키의 절도/사기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책의 저자 앨리슨 후버 바틀릿은 존 길키를 ‘책 도둑’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를 책 도둑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사기꾼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의 절도/사기 행각은 인터넷 시대에 아주 고전에 속한다. 미국 유명 백화점에서 임시고용인으로 일한 바 있는 길키는 신용 사회 쇼핑에 있어서 꼭 필요한 신용 카드 정보를 직장을 통해 얻는다. 그리고 자신이 사고 싶은 고서, 희귀 서적에 자신이 불법적으로 탈취한 정보로 책을 주문한다. 타인을 가장한 픽업이나 혹은 호텔로 책 배달을 시켜서 마침내 자신의 컬렉션에 넣는다. 문제는 길키가 이런 방식을 통해 훔친/사기 친 책의 가격이 10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사실이다. 놀랍군!
사회에서는 언제나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51개 주의 연합체인 미국 주(州)간의 허술한 사법 공조 체계의 빈틈을 노린 길키를 잡으려는 정의의 사나이가 빠질 수 없다. 자신이 직접 희귀서적상을 운영하는 켄 샌더스가 바로 주인공이다. 서적상 협회의 보안담당을 맡게 된 샌더스는 북부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벌어진 길키의 유사한 범죄에 주목하고, 범인을 쫓는다. 이렇게 책을 너무 사랑한 ‘두 남자’의 맞대결을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이제 막 서적광(bibliomania)의 세계에 발을 디딘 저자 바틀릿이 이 책의 삼각 축을 형성한다.
저자는 길키가 계속해서 범행을 저지르면서도,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심각한 경제적 손해를 끼치는 범죄행위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길키는 인류에게 다양한 정보를 전달해 주는 도구로서의 책이 아니라, 오로지 수집을 통한 개인적 만족 때문에 불법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훔친 책을 읽지도 않는다! 절도와 사기의 연이은 성공으로 인한 쾌감이 길키를 희대의 책 도둑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책을 너무 사랑한 남자>는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무척이나 흥미로운 미국의 희귀 고서적 수집의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왜 그렇게 서적 수집가들이 저자의 서명이 들어가 초판본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그런 희귀한 책을 사는데 가히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이유를 저자는 멋지게 추적해냈다. 개인적으로 책의 존재 이유는 바로 ‘독서’라고 생각하는데, 책에 소개된 등장인물의 생각은 나와 다른 것 같다. 그들은 책을 자본 증식을 위한 투자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보통 책을 살 때도 오프라인 매장에서 살펴보고 사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데, 온라인 판매로 해당 책의 상태나 판본 같은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물론 요즘에는 디지털 사진 기술의 발달로 그런 비주얼적인 측면에 많이 해소되긴 했지만 길키와 샌더스가 쥐와 고양이 싸움을 벌이던 시절은 벌써 십년 전이 아니던가. 저자가 세계 최고의 장물 사이트라고 표현한 이베이 상의 거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나도 오래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 하드커버를 이베이 경매를 통해 구매한 적이 있는데 책을 받고 보니, 어느 도서관의 관인이 떡 하니 찍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사실을 확인했을 때의 낭패감이란 정말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주 평범한 질문으로 이 책의 리뷰를 끝내야할 것 같다. 도대체 책을 수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책 도둑 길키에게 책 수집은 평생의 임무이자 강박이었다. ‘제리’ 길키를 잡으려는 “톰” 샌더스에게 책 수집은 밥줄이었다. 나같이 무심한 독자는 초판본이나 저자 사인본에 집착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책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한다. 그전에 기껏 수집했지만 읽지 못하고 있는 책부터 읽어야겠다. 그런 책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