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한 논어, 21세기에 답하다 - 알기 쉽게 풀어쓴 알기 쉽게 풀어쓴 동양철학 시리즈 2
푸지에 해설, 이성희 옮김 / 베이직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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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까지 동양 고전 중의 고전으로 불리는 사서삼경을 읽어 보지 못했다. 책 좀 읽는다고 하지만, 어떻게 지금까지 성현의 말씀이라는 사서삼경을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사서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책이자,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논한 내용을 공자 사후에 기록했다는 <논어>의 현대판 주석에 해당하는 <명쾌한 논어, 21세기에 답하다>를 읽으면서 그런 마음의 짐을 좀 덜 수가 있었다.

중국 항저우 출신의 푸지에 교수는 마냥 고리타분할 것으로 생각되는 고전을 현대 감각에 맞춰 주해한다. 원래 상론 10편, 하론 10편 모두 20편으로 구성된 <논어>를 강의 형식으로 7부 67강으로 재구성했다. 비슷한 내용으로 묶다 보니, <논어>의 원래 순서를 고집하는 것으로 보인다. <논어>의 전문이 아니라 핵심만 뽑은 엑기스 형식으로 보면 무난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오래전에 홍신문화사에서 나온 <사서오경> 시리즈를 참고하면서 읽으니 더 도움이 된 것 같다.

어려서부터 항상 해온 질문에 대한 답으로 푸지에 선생의 <논어>는 시작된다. 배움이 주는 즐거움은 본질은 무엇일까? 공자의 말씀대로 책을 외우고, 복습의 심화로 깨닫는 즐거움의 도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반성하게 됐다. 그 옛날의 성현도 항상 배움에 힘썼거늘, ‘이제 공부는 됐어’라는 생각은 자만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내외적 성장, 경험의 확대, 자기반성의 심화” 중에 한 마리의 토끼만 배움을 통해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각별한 인연으로 잊을 수 없는 문장인데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란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어려서 서예를 배울 적에, 수도 없이 썼던 문장이다. 자기 수양을 위해 배운 붓글씨던만, 지금은 거실 벽에 얌전하게 걸린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옛 것에 되새기는 과정에서 새로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공자의 말씀이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로 다가온다.

유가에서 최고의 도덕준칙으로 꼽히는 <中庸>의 미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혼탁하기 그지없는 세상에서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그야말로 중용의 실천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지근거리에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쉽게 얻을 수 삶의 경지라는 것이 푸지에 선생의 설명이다.

고등학교 시절 고문 시간에 무슨 공식처럼 죽어라고 외웠던 윤선도 선생의 어부사시사에도 드러나는 ‘안빈낙도’ 역시 <논어>에 나오는 말이었다. 작금의 가난함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배움에 있어서 상하를 가리지 않는 자세야말로 군자의 정신이라고 했던가. 모든 근심걱정의 원인이 바로 스스로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참으로 와 닿는다. 나의 사람 됨됨이는 어떤지 자문하게 된다. 나의 즐거움의 여부를 물질적 환경에서 찾지 말라는 말은 모든 것이 물질로 환산되는 현 세태에 대한 선인의 가르침이리라.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깊이 없는 SNS 소셜네트워크가 만연하는 시대에 ‘친구를 사귀는 즐거움’에 대한 공자의 말씀은 독자의 폐부를 찌른다. 이익을 매개로 한 친구가 아닌, 군자끼리의 도리에 의한 사귐이야말로 우정의 정수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친구를 사귀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항상 그렇게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부리지 못하는 현대인이 깊이 반성해야 할 점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관계의 황금률은 다음의 문장에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이목을 집중하게 만든다. “내가 원치 않는 일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라.” 개인적으로 <논어>에서 최고로 꼽는 명문장이다. 이 역시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보편 준칙이면서 실천은 또 다른 문제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푸지에 선생의 <명쾌한 논어>를 읽으면서 기회가 된다면, 원전 <논어>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경전이나 그렇듯, 미시적인 접근과 더불어 거시적인 방법론도 동시에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많은 책을 읽고 있지만 여전히 배움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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