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지대
쑤퉁 지음, 송하진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가장 최근에 읽은 쑤퉁 작가의 책은 <측천무후>였다.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했던 여황제의 삶을 조명했던 쑤퉁 작가는 ‘성북지대’라는 가상의 공간에 네 명의 발칙한 청소년 성장기를 욱여넣는다.

우선 쑤퉁 작가는 성북지대(城北地帶) 참죽나무길이라는 공간에 자신의 문학적 페르소나를 투영한다. 장소가 준비되었으니 그 공간을 채울 캐릭터를 만들 차례다.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켜 학교에서 퇴출당한 네 명이 바로 그들이다. 화냥 진란과 바람이 나서 그녀의 고향 칭다오로 줄행랑을 치는 선쉬더, 철사꼬챙이로 동네 개를 날름해 버리고 모른척하는 쩔룩이, 이웃집 소녀를 겁탈하고 ‘푸른잔디길’에서 9년을 복역하게 된 홍치 그리고 언젠가 영웅적 삶을 살겠노라고 호언장담하다가 저탄장에서 비운의 삶을 마친 리다성에 이르기까지 ‘뭐 이런 녀석들이 다 있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비범한 캐릭터의 향연이 펼쳐진다.

소설 소재로 써먹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지만, 참죽나무길에 사는 이들의 운명은 하나같이 가혹하기만 하다. 우리네 소시민들의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 가운데, 아이들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장소를 순례하고 어른들은 이웃에서 벌어지는 아귀다툼에 눈과 귀를 집중한다. 도무지 희망이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이곳이 사회주의 이상국가 중국이란 말인가? 아버지와 아들이 화냥 진란과 관계하고, 십수 년째 홀로된 아버지를 부양한 딸의 귀가가 늦었다고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가 봉변을 당하질 않나, 과부가 된 딸은 뱀장수 아버지를 매몰차게 내쫓아 결국 한겨울에 동사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막장드라마 뺨치는 수준의 자극적인 이야기가 <성북지대>를 수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자라는 것이 더 이상한 게 아닐까? 학교 교육은 오수가 터져 흐르는 참죽나무길의 진창처럼 엉망이고, 교사들은 학생들을 선도할 의욕마저 상실했다. 교내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말썽꾼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선 총기와 실탄이 필요하다고 교사들은 자조 섞인 농담을 날린다. 이렇게 쑤퉁 작가는 전체주의 국가와 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 대신 인민들의 치부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욕망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찌질한 이 네 청춘이 그렇다고 나중에 극적인 반전을 도모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불행의 선순환은 억울하게 죽은 메이치의 유령처럼 참죽나무길을 휩쓴다.

쉬더, 쩔룩이, 홍치 그리고 다성 이 네 악당의 우정의 깊이는 얇은 종잇장보다도 가볍다. 이들에게 진지함이란 다른 별나라의 이야기고 오로지 말초적인 즐거움만이 지고의 선이다. 신세를 망치고,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도 도무지 뉘우치는 빛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질 않는다. 도대체 얼마만큼 더 망가져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하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기회마저 사라져 버렸으니.

중국어를 전혀 몰라 과연 어떻게 번역이 되었는지 가늠할 길이 없지만, 표의문자인 한자를 번역하는 건 우리말과 같은 표음문자인 영어와는 또 다른 차원의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몹쓸 공상을 해봤다. 읽으면서는 재밌고 즐거웠지만, 다 읽고 나서는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까운 결말에 마음이 좀 허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중국 소설치고는 너무 한자가 없어서 오히려 더 작품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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