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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잔의 차
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 이레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면서 중앙아시아협회(CAI: Central Asia Institute)의 공동설립자인 그레그 모텐슨의 꿈을 이뤄 나가는 과정이 마치 현대판 우공이산(愚公移山)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은 힘든 법이다, 더더욱 우리네 삶과는 동떨어진 이역만리 외딴 산골에 학교를 짓겠다는 이 책의 공동저자 그레그 모텐슨의 비전은 우리 현대인들이 보기에 허황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교사 출신의 부모로부터 불굴의 투지와 비전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그레그 모텐슨에게 자신의 신념과 약속에 충실한 삶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가치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 책의 화자인 전 산악인 그레그 모텐슨이 세계에서 가장 등반하기 힘들다는 K2 등정에 실패하면서 시작된다. 어려서 탄자니아에서 선교사로 일했던 부모님과 함께 성장한 그레그의 손아래 여동생이 뇌막염과 간질로 죽게 되면서 그녀를 추모하고자 그레그는 K2 등정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들로 등정에 실패하고, 발토로 빙하 밑의 브랄두 계곡에 위치한 작은 마을 코르페에서 머물게 되면서 그레그의 10년간에 걸친 고난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K2 등정 실패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된 그레그를 정성껏 돌봐준 코르페 마을 사람들과 촌장 하지 알리에게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그레그. 독실한 시아파 이슬람교도인 하지 알리는 평생 이슬람의 경전 코란의 가르침과 기도로 살아 왔지만 정작 자신은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의 장인 학교의 건립을 원한다.
기력을 회복하고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이리어 돌아간 그레그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돈을 모으고 여가시간에 미국 각처의 유력인사들에게 자신의 취지를 알리는 내용을 담은 580여 통의 편지들을 쓴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 비해 그가 받은 기부금은 미취학 아동들의 교육이라는 대사업을 시작하기엔 미비한 금액이었다. 그러던 중, 스위스 출신의 공학자 장 회르니로부터 후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레그의 비전을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발티스탄 그 중에서도 스카르두를 거쳐 코르페까지 학교를 지을 자재들을 구입해서 운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레그는 학교 건립이라는 큰 꿈 때문에 코르페 마을의 장애물인 브랄두 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가 더 필요하다는 계산을 넣지 못한다. 학교를 짓기 위해선, 먼저 다리부터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레그의 이런 초기의 오류들은 훗날 그가 일을 하는데 있어서 순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아울러 자신의 사업을 진행시키기 위해선 거의 독립적인 단위로 활동을 하는 부족의 유력자들의 도움과 이슬람 신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도 체험을 통해 배우게 된다. 물질적인 어려움에 더해서, 무슬림 아이들을 서구식 학습방법으로 ‘타락’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전통주의자들이 반발 또한 무시할 수가 없는 요인이었다. 결국 어느 물라의 “파트와” 선언으로 인해, 이란 시아파 최고 회의에까지 자신이 추진하는 사업의 정당성을 추인 받아야 했다. 이 또한 그레그의 학습의 과정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종교지도자들의 승인도 다른 요소들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한 번은 파키스탄 서부의 와지리스탄에까지 지평을 넓혀서 학교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러 갔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장단체에 억류되는 경험도 하게 된다. 게다가 파키스탄의 이웃한 아프가니스탄의 정세가 친소 나지불라 정권과 탈레반의 내전으로 격화되면서 수많은 아프간 난민들이 파키스탄 국경으로 몰려들면서 닥터 그레그를 찾는 손길은 늘어가기만 한다.
그런 와중에 그레그는 평생의 반려자이자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해 주는 타라 비숍을 만나, 단 6일 만에 결혼하는 로맨틱한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책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일 년에 수개월씩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파키스탄과 아프간의 변경에서 일하는 남편을 내조하는 타라가 진정한 영웅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갔다.
그레그의 비전이 조금씩 이루어져 가고 있는 가운데, 9-11 사건이 터지고 난 뒤 급격하게 반 이슬람 정서가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확산되고, 테러와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파키스탄과 아프간에서 반미주의가 급속도로 퍼져 나가는 과정이 상세하게 그려진다. 미국의 부시정부는 군사적 방법을 (이슬람) 테러를 근절시키려고 하지만, 이것은 이슬람 정신의 핵심인 정의, 관용 그리고 사랑에 대한 몰이해로 시작된 잘못된 전쟁이었다.
미국의 헤게모니를 좌지우지하는 군산복합체에게 천문학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이런 군사행동보다 차라리 그레그가 인도하는 중앙아시아협회 같은 민간단체의 방법이 훨씬 낫다는 주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학교에서 교육을 통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계몽이 오늘날 과격한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키스탄과 아프간 산간마을에 대한 교육의 부재를 틈 타, 사우디아라비아의 출신의 부유한 셰이크들이 오일달러를 퍼부으면서 만들어낸 모스크와 마드라사가 이슬람 청년들을 그릇된 지하드로 내몰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으로 민간인들에 대해 저지른 범죄행위 또한 비판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인도주의에 근거해서 파키스탄과 아프간의 오지 마을들에 학교를 세우려는 그레그와 그의 동료들의 노력이 폄하 되서는 안 될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그레그 개인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음을 볼 수가 있었다. 서구인들에게는 익숙한 개념인 시간약속과 같은 사업상의 절차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발티족 코르페 마을의 촌장인 하지 알리에 의하면 소위 문명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은 그들의 입장으로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의 최소 단위인 찰나에 불과했다. 학교세우기에 조급해 하는 그레그를 보고, 작고한 하지 알리가 남긴 “바람의 소리를 듣게”라는 말이 떠올랐다.
처음에 도저히 이룰 수 없었던 그레그 모텐슨에게 자신의 비전의 첫 발자욱을 내딛게 해준 것은 바로 그의 어머니 제런이 학교장으로 있는 학교에서 파키스탄의 어린 학생들을 위해 미국 초등학생들이 모은 1센트의 힘이었다.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그 아무도 줍지 않는 하찮은 1센트 짜리 동전이 바로 산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그레그 모텐슨이 K2를 정복했다면, 위대한 산악인으로 기억됐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실패가 전화위복이 되면서 산에 오르는 것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 그레그 모텐스의 <세 잔의 차>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사이트를 찾아보세요. 영문 사이트입니다. http://www.threecupsoftea.com/
*** 내가 찾은 오탈자
1. 마드라스 -> 마드라사 (352페이지)
2. 이슬라마바다 -> 이슬라마바드 (353페이지)
3. 우르자 -> 우즈라 (407페이지)
4. 스카루드 -> 스카르두 (475페이지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