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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닥> ㅣ 빨강의 자서전
앤 카슨 지음, 민승남 옮김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지난 주말 독서모임에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앤 카슨의 책들을 읽었다고 자랑했다. 시니컬한 열혈 독서가 동지는 굳이 읽어야 하냐고 했다. 모름지기 독서가를 자처하는데, 그래도...라고 나는 말을 흐렸다. 그리고 앤 카슨의 <레드 닥>을 읽었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고백도 붙였다.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그리고 고대 그리스 문학의 전문가라는 작가가 파편화된 스테시코로스의 <게리오네스>에서 <빨강의 자서전>을 퍼올린 것처럼, 나 역시 독서 가운데 얻게 된 파편화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아주 부족한 리뷰를 써보려고 한다.
그리스 로마 고전들을 마음껏 이용해서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재창조(re-creation)를 할 수 있는 그네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대 클래식은 이제 거의 공공재에 가깝지만, 짧은 지식으로 그네들만큼의 이해와 분석에 기반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란 새로운 창조만큼이나 어렵지 않나 싶다.
전작 <빨강의 자서전>의 속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전작에 등장한 G(게리온)과 새드(헤라클레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을 뺀다면 굳이 시퀄이라는 표현이 맞나 싶기도 하다. 파편화된 정보는 상대적으로 그만큼 빈 공간과 여백을 작가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다는 말도 되지 않을까. 그만큼 부서진 파편들은 새로운 서사를 위한 강력한 요소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중년에 이르러 다시 만나게 된 G와 새드 중사(PTSD에 시달린다)는 로드 트립에 나선다. 그리고 도중에 이다(아이디어를 상징한다)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서사들은 어쩌면 소설 <레드 닥>에서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다면 또 중요한 건 뭔데? 독자들이 앤 카슨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제대로 따라 오지 못한다고 해서 작가가 또 아쉬워할 것 같지도 않아 솔직히 말해서.
한 때 서로 사랑했던 이들이 만나 여행길에 오른다. 서로에게 친절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무언가 부족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상처 받은 영혼들에게 구원이 약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서로 공유했던 기억들은, 그리고 시간들은 하염없이 흘러갈 뿐이다. 로드 트립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그들의 여행이 요양원에서 조용히 죽어가는 G의 엄마를 낫게 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험난한 세상살이를 통해 어느덧 중년에 도달한 주인공들은 그냥 살아갈 뿐이다.
청춘들에게는 어쩌면 서글픈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나이듦은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시간과 경험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타인의 상실 같은 슬픔을 대하는 태도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무덤덤하게 그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지. 이렇게 하면 너무 숙명주의자 같은 말일지도.
소설 속의 새드처럼 너무 많은 기억들 때문에 우리는 고통 받고 있지 않은가. 어떤 기억을 의도적으로 잊고 싶다고 해서 잊어지던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겪은 PTSD에 시달리는 것처럼, 어쩌면 새드 역시 이라크 팔루자에서 경험한 처참한 전쟁으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에 대한 구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좋겠지만, 앤 카슨은 냉정하게 아마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대개의 문학은 구원을 약속하지만, 모든 작품이 그래야 하는 건 아닐테니까. 그래서 어쩌면 마치 미로를 걷는 듯한 느낌 속에 <레드 닥>이 가르키는 방향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앤 카슨의 <레드 닥>은 종이책으로도 그리고 전자책으로도 읽었는데, 확실히 종이책의 방향성(?)이 뛰어난 것 같다. 책 양쪽으로 인쇄된 반쪼가리 붉은 레드도트들은 책을 읽다가 길을 잃어버리게 되는 나같이 부족한 독자들의 멘탈을 바짝 잡아주는 길라잡이 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 파편화된 고전과의 끊임 없는 대화를 통해 대담하고 창의적인 시도와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앤 카슨의 <레드 닥>은 아무래도 한 번 읽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다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