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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평점 :
오늘도 매불쇼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의 방송을 들었다. 뭐랄까, 요즘 자주 듣다 보니 유시민 작가와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방송 중에 보니 지난달에 사서 어제 다 읽은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 눈에 띄었다. 유 작가는 한 20만 권 정도 팔리면 좋겠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나도 유시민 선생이 바라는 1/200,000에 일조하지 않았나 싶은 마음에 뿌듯했다.
민심이라는 거대한 바다가 쏜 종이로 만든 탄환에 맞아 현 정부는 지난 총선에서 참패했다. 하지만 바뀐 건 아무 것도 없다. 국회에서 내놓는 법안에 "그"는 족족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그전과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을 거라는 점을 시사했다. 답답한 마음에, 임기종료일을 검색해 보니 1006일이 남았다고 한다.
그가 구축한 성공 방정식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까지가 마지막이었다. 대선 승리의 기세를 몰아,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 밴드왜건 효과는 대단했다. 하지만 정치 초보인 알파 메일은 연승이 가져다주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승리의 원인이었던 연합 정치의 토대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우선 눈엣가시 같았던 젊은 당대표를 몰아냈다. 그 다음에는 지지율 바닥을 달리던 당대표 후보를 당의 간판으로 만들었다. 총선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민심을 읽지 못하고,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후보를 사면해서 다시 후보로 내세웠고 참패했다. 당대표를 날려 버리고, 정치 초보인 자신의 심복을 비대위원장으로 삼아 총선을 치렀다.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다.
지난번 총선에서도 180석 예상으로 노스트라다무스를 뺨치는 예언을 했던 유시민 작가는 이번에도 냉정하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총선 결과를 예측했다. 선거 전까지 그야말로 드라마를 뺨치는 듯한 일들이 허다했지만, '정권심판 프레임'이라는 거대한 줄기는 꺾이지 않았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공천과 경선 과정에서 많은 잡음을 생산해냈지만(이 또한 보수언론의 과민반응이었다), 현역 물갈이에 성공하고 역대급 성적을 기록했다.
유시민 작가는 방송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기존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 언론 저널리즘의 현 주소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말이다. 최근 유시민 작가와 함께 MBC 대담에 등판한 한국일보 기자는 여전히 레거시 미디어의 순기능에 대해 설파했지만, 돌아선 시청자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왜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일들에 대해 취재하고 방송하지 않는가? 왜 소수의 저널리스트들이 뉴스 가치를 재단하고,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제약하는가에 대해 묻고 싶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레거시 미디어의 권력은 급전직하 중이고, 상대적으로 너튜브의 실력을 갖춘 저널리스트들이 그들을 대신해서 권력을 이양받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울러 내가 낸 세금으로 강아지 배변지나 동남아에서 물건을 쌀 때 사용하는 친환경 포장지로 재활용되는 신문사에 지원한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질 판이다. 사람들이 보지도 않는 신문을 광고수주 때문에 판매부수를 늘리기 위해 찍어내고, 바로 트럭에 실려 폐지가 되는 과정을 보자니 기가 찰 노릇이다.
유시민 작가는 정치인과 정치업자를 구분한다. 정치인은 정치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니까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거다. 하지만 정치업자는 권력 쟁취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의 알파 메일은 단 한 번 선거로, 가장 큰 판에 걸린 판돈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가 최고권력자로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무리 지난 2년을 복기해 봐도 알 수가 없다. 말로는 노동시장, 연금 그리고 교육개혁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모두 실기했고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게 없다. 모두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들이고, 거대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지만 정치로 이런 복잡한 개혁들을 풀 생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협조를 구하는 게 아니라, 제거해야할 정적으로 규정하고 사정기관을 총동원해서 사냥에 나섰다. 그전에 무혐의 받은 건들도 예외는 아니다. 대선에서 석패한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수사는 매서웠다. 작년 가을에는 구속의 위기까지 몰리지 않았던가. 유시민 작가는 자신은 정치인으로 이런 수모를 견딜 자신이 없어서 정치를 그만뒀다고 썼던가. 보통의 멘탈로서는 공개적으로 조리돌림당하고, 자신에 적대적인 언론에 의해 당하는 수모를 견디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는 대통령이 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이 있기에, 이런 일들을 참고 있다고 저자는 쓴다.
이재명이 '죽을 뻔한' 사람이었다면, 그전에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국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이미 죽었던 법학자 조국은 정치인으로 거듭나서 당당하게 국회의원이 되어 돌아왔다. 지역구에서 민주당과 경쟁하지 않고, 비례정당 승부수를 띄웠고 조국혁신당은 대성공을 거뒀다. 중도를 표방하는 민주당에 비해, 보다 선명성을 강조하는 조국혁신당의 시원시원한 발언과 강령에 시민들은 24% 비례표로 화답했다. 조국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보여줄 정치의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분투를 응원한다.
유시민 작가는 일찍이 고블린의 예를 들어, 알파 메일의 말로가 매우 비참할 것이라는 점을 예언했다. 그것은 다만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그는 예상되는 비극의 재현을 막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임기단축이나 대연정 같은 방안들이다. 알파 메일이 노련한 정치인이라면 아마 그 방안들을 받아 들였겠지만, 정치업자는 아마 그럴 리가 없을 것 같다. 저자는 닉슨 대통령의 경우를 들어 '놀리 프로시콰이 (Nolle prosequi:항구적 불기소 특별사면)'라는 생소한 개념을 소개한다. 참신한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기대난망이다.
다시 현실이다. 아직도 1006일이 남았다. 주권자의 수준이 국가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한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초래한 후과가 너무 크고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