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나 그래.
지난주에 <사나운 애착>을 읽으면서 비비언 고닉이 소개한 브루클린 출신의 유대인 작가 버나드 맬러머드의 존재를 알게 됐다.
당장 그의 저작들을 찾아 나섰다. 아쉽게도 국내에 나온 그의 책들은 하나같이 절판의 운명에 처해 있었다. 심지어 도서관에도 달랑 한 권만 비치가 되어 있었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좀 오래된 곳들이 많은데도 구간들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처치해 버리는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라스 까사스 신부의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도 사라져 버렸지. 빌렸을 때, 읽었어야 하는데 아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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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퓰리처상에 빛나는 <수선공>이 있어서 일단 빌려서 야금야금 읽고 있는 중에, 타라~! 오늘 일상처럼 신간을 뒤적거리다가 을유문화사에서 버나드 맬러머드의 두 번째 소설 <점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미리보기로 바람처럼 30쪽을 다 읽고 나서, 주문장을 날렸다. 단가가 무배 15,000원이 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램프의 요정에서 선심 쓰듯이 주는 2,500원 쿠폰을 사용했다. 아 사람이 왜 이렇게 구질구질해지는 거지 그래.
그 다음에는 <점원>이 너무 궁금해서 대략적인 정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 오프라인 교보에 이 책이 깔렸다면 당장 달려가서 샀을 텐데 아쉽다 아쉬워.
소설 <점원>의 주인공은 올해 60세의 모리스 보버다. 그는 브루클린에 살고 있으며 허름한 식료품점을 21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의 아내는 51세의 이다. 슬하에는 23세의 헬렌이 있다. 아버지는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며 돈을 까먹고 있고, 딸내미가 돈을 벌어 위태로운 가계를 지탱하고 있는 중이다.
모리스의 식료품점은 지난 3년 동안, 세 번의 강도를 맞았고 바로 앞에 하인리히 슈미츠의 가게가 문을 열면서 매출이 반토막나는 위기를 맞았다. 결국 앉아서 망하지 않으려면 가게를 헐값에 파는 수밖에 없는 걸까.
그런 순간, 소설의 실질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랭크 알파인(25세)이 등장하면서 소설 <점원>은 비로소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어디선가 보니 비슷한 문학적 궤적을 그린 솔 벨로나 필립 로스와 달리 버나드 맬러머드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은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아직 초반부까지만 달려서 전반적인 분위기는 알 수 없지만, 1910년대 오쟁이지고 러시아(우크라이나)의 키예프로 이주한 수선공 야코프 복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수선공>보다는 순한 맛이라고나 할까. 반유대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러시아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일자리를 찾아 나선 주인공의 이야기가 왠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점원>에 등장하는 모리스 보버 역시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였다. 그리고 작가의 아버지도 브루클린에서 식료품상을 했다지. 그러니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작가 역시 자신이 나고 자란 분위기로부터 완전히 분리 독립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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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맬러머드의 데뷔작은 1952년에 나온 <내추럴>이라고 하는데, 맞다 1984년에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을 맡은 그 야구영화다. 책도 예전에 나왔었는데 지금은 절판됐다. 이번에 계속해서 맬러머드의 책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