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2 - 피에 물든 백합
파트릭 페노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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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간만에 대학시절 지기들을 만나게 되어 부천 나들이 나섰다. 워낙 촌에 살다 보니 어디 한 번 나들이하기가 쉽지 않다. 가는 길에 부천 알라딘에 들러 파트릭 페노의 <메디치> 시리즈 중에 두 번째 권을 샀다. 그리고 보니 왜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이 시리즈가 없는지. 천상 사서 보던가 해야지 싶다. 그리고 아주 재밌게 읽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후원한 바로 그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1권부터 읽어야 하지만, 중고책방에는 2권만 덜렁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르네상스 이탈리아를 무대로 한 메디치 가문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를 능가할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할 만하지 않을까 싶더라.

 

일 마니피코 시절이 가고 난 다음, 다시 한 번 공화정의 뜨거운 열기와 그리고 사보나롤라로 대표되는 개혁의 시절이 폭풍처럼 피렌체를 휩쓸고 간 다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포폴라니라고 하여 차남 계열의 메디치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이탈리아에서 최고가는 용병대장 조반니 달레 반데 네레가 등장해서 용맹을 떨친다.

 

발루아 왕조의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스페인/신성로마제국의 칼 5세는 이탈리아에서 각축전을 벌였다. 도시국가 피렌체는 사실 독자적으로 유럽을 좌지우지하는 두 강력한 국가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줄타기 외교전을 펼쳐야 했다. 피렌체는 그 때마다 말을 갈아타며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약소국 신세였다. 메디치 가문 출신 두 번째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칼 5세와 대립하다가 로마 약탈이라는 전무후무한 치욕을 겪기도 했다.

 

자신의 근거지였던 피렌체에는 자신의 서자 알레산드로를 파견해서 지배자로 삼았다. 그리고 알레산드로의 유력한 경쟁자 용병대장 조반니는 전장에서 죽게 만들어 버렸다. 조반니의 아내였던 마리아는 유일한 아들 코시모를 데리고 피신하는데 성공한다. 인기 없는 군주였던 알레산드로가 암살당하자 마키아벨리의 세례를 받은 호랑이 새끼 코시모가 피렌체의 독재자로 나서게 된다. 그 때 그의 나이 17세였다. 2권의 표지에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훗날 토스카나 대공이 되는 코시모 1세다.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브론치오가 그린 초상화는 교활하고 영명한 군주라기 보다 왠지 전사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자신에게 돌아온 권력을 코시모는 누구와도 나눌 생각이 없었다. 당시 피렌체가 속해 있던 이탈리아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일단 코시모는 자신을 가장 든든하게 지지해줄 수 있는 인물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칼 5세라는 점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스스로를 합스부르크 가문의 봉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가신들을 동원한 공포정치를 가동해서 우선 피렌체의 지배를 확보한 다음 토스카나에서의 지배권을 확립해 가기 시작한다.

 

일 마니피코 시절부터 왕관 없는 제후라는 가문의 약점을 지워내기 위해 코시모는 철저하게 마키아벨리주의자로 변신하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마저 자신의 아들이 그렇게 냉철한 권력의 화신으로 변하게 될 줄 미처 몰랐던 모양이다. 자신의 아내도, 자식들도 모두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메디치 가문의 권세가 강화될수록, 개인사는 비극으로 얼룩져 간다. 파트릭 페노 작가는 권력의 정점에서 예술애호가 코시모가 키마이라라는 조각을 얻기 시작하면서 잇달아 벌어지기 시작한 비극을 소설적 코드로 다루는데 성공한다.

 

사랑하는 아내 엘레오노라의 아버지이자 장인 돈 페드로가 출정을 앞두고 사망하고, 많은 자식들 역시 차례로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장남 프란체스코보다 더 유망했던 차남 추기경 조반니가 삼남 가르시아와 사냥 중에 다툼을 벌이다 죽고, 다른 아들을 카인이라 부르며 아버지가 직접 처벌에 나선다. 자신의 반대파를 없애기 위해 코시모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백합의 도시, 피렌체는 피로 물들어 갔다.

 

냉철한 군주 코시모는 피렌체 사람들에게 계속된 번영만 약속해 준다면, 자신에게 반기를 들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걸까? 정적들에게는 가차 없는 지도자였지만, 자신의 기반이 되는 백성들과 자기가 다스리는 국가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고 능수능란한 줄타기 외교를 구사하면서 프랑스-신성로마제국-교황 사이에서 실리로 대표되는 국익과 명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일 마니피코가 왕관 없는 제후로서 중세를 주름잡은 메디치 가문의 기틀을 닦았다면, 마키아벨리주의자 코시모는 조상들이 결코 이루지 못했던 토스카나 대공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물론 대공의 왕관을 쓰기까지 많은 희생과 우여곡절이 필요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교황의 눈 밖에 난 개신교도 자문이자 대공의 친구였던 피에르 카네르스키였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걸 위해, 코시모는 결국 카네르스키를 교황의 손에 넘기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카네르스키는 화형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파트릭 페노는 코시모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과연 그가 그랬을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피렌체의 절대 군주로 군림하던 코시모 역시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코시모의 뒤를 이은 장남 프란체스코는 후사를 남기지 못해 로마에서 추기경 생활을 하던 페르디난도가 메디치 가문의 당주가 되는 것으로 메디치 두 번째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파트릭 페노의 <메디치>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권력 무상을 느꼈다. 소설에 묘사되는 대로 코시모 데 메디치가 확실히 민심과 당대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한 뛰어난 군주였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자신의 국정 운영이 자식의 치세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좋은 후계자를 세우는 것도 지도자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가문의 영속을 위해 아무리 노력했어도, 아버지를 능가하지 못한 자식들 덕분에 메디치가의 영화는 존속되지 못하고 쇠락하기 시작했다. 역사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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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2-07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분들 뵈러 부천 ...
의왕에서 멀지도 않은 그 거리를 가시는 ˝김에˝ 또 책 겟하셔서 읽어내시는...게다가 리뷰 쓰기 (저는 솔직히 귀찮아서 읽고만 말 때가 많은데...)까지 다 하시는 매냐님^^ 존경합니다

레삭매냐 2023-02-07 15:37   좋아요 1 | URL
여전히 부족한 독서인으로
책읽기의 완성은 리뷰? 독후감
쓰기라고 생각한답니다.

다른 거는 귀차니즘에 포기해
버리지만, 독후감은 꾸역꾸역
쓰는 제가 대견하기도 합니다.
넵.

술 퍼먹고 복귀하려니 넘 힘들
었습니다.

얄라알라 2023-02-07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저도 요즘에요...˝~~한 나를 칭찬해˝ 그 말이 그렇게 귀엽게(?) 들리더라고요. 쑥스럽지만 제 스스로에게 선물하듯 그 말을 쓰는데, 레삭매냐님께서도 ˝리뷰를 꼬박꼬박 쓰는 나를 칭찬해˝하셔도 좋겠어요^^ 멋지십니다!

레삭매냐 2023-02-07 18:35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헷 -

책 읽고 나서 바로
바로 리뷰를 쓰지
않으면 그 때의 기
분이 모두 날아가
버려서 나중에는 쓰
지 않게 되더라구요.

밀리지 않고 쓰려고
노력합니다. 감사합
니다.

새파랑 2023-02-08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부천 알라딘 단골입니다 ㅋ
저도 어디가면 꼭 알라딘 우주점이 있는지 확인하게 되더라구~!!

레삭매냐 2023-02-08 15:50   좋아요 1 | URL
그러시군요 !!!

저는 오늘 송도 가서
제프 다이어의 <그러
나 아름다운> 신판
땡겨 왔답니다 ^^

서니데이 2023-03-13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thkang1001 2023-03-15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샥메냐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가필드 2023-03-1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축하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