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가 제철 트리플 14
안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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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회를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주말어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물고기 잡는데 미친 듯이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종은 도미였는데, 밑밥을 물었을 때 파르르 떨리는 손맛의 추억은 잊을 수가 없다. 엄청 많이 잡았는데 누가 다 먹었는지 모르겠다. 안윤 작가의 <방어가 제철> 소설집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그 때 잡던 도미 생각이 났다. 자목련님을 통해 알게 된 책, <방어가 제철>을 읽었다.

 


130쪽 남짓한 얇다란 책에는 세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에세이가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다 읽고 나서 왜 자꾸만 군침이 도는 걸까. 우리 인간은 먹지 않고 살 수가 없다. 다른 조건은 몰라도 끼니 때우기라는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숙명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첫 이야기 <달밤>의 화자는 생일을 맞은 아는 지인을 위해 생일상을 차리고, 또 망자가 된 작가 언니를 위해서는 제상을 차린다.

 

그러니까 끼니, 음식으로 산 자와 죽은 자를 기리는 것이다. 뭐랄까 음식이라는 기준점이 삶과 죽음을 가른다는 말일까. 그 중심에는 육개장이 살포시 자리한다. 아마 외국의 독자들은 이런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음식들에 대한 정감을 그리고 말맛을 알 수 있을까. 미슐랭 셰프들이 만드는 거창한 요리가 아닌 이런 소박한 요리의 조리 과정이 정감 있게 다가온다. 그렇게 우리는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했던 음식 혹은 끼니의 추억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절친과 불쑥 떠났던 어느 늦여름, 지리산 피아골에서 먹은 닭백숙의 추억이 피어난다. 얼음 같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쏘주 댓병을 까고 나서 친구는 피로에 곯아떨어졌다. 너무 시원해서 취한 줄도 몰랐지. 그전에 시킨 닭백숙을 그나마 덜 취한 나 혼자 뜯어 먹던 기억.

 

같이 했던 끼니를 통해 망자의 기억을 소환하는 화자의 이야기가 짠하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언젠가 소멸하게 되겠지. 언젠가 한 줌의 재가 될텐데 왜 이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폭풍처럼 몰려든다.

 

표제작인 <방어가 제철>은 사실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뒤에 붙은 해설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죽은 화자의 오빠의 친구였던 정오 선배(?)는 겨울이 되면 화자에게 방어회를 사주었다. 술은 안동소주를 먹었던가. 그 둘은 청소년 시절을 같이 보낸 전우 같은 존재였던가. 아니 오빠와 정오 사이에 들러붙은 곁다리? 영화에 미쳐 살던 그 시절의 영화잡지 <키노>와 왕칼 아니 왕가위의 전설적인 <중경삼림>의 제목을 읽는 순간, 할리우드 키드를 꿈꾸던 시절의 소소한 기억들이 즉각적으로 소환된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아니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되는 대로 살자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소설의 주인공들인 정오와 화자 모두 과거에 잘못된 무언가를 고치거나 그러려고 하지 않는다. 그날 오늘의 하루를 덤덤하게 사는 것이다. 각장의 일터에서. 화자는 14년 전에 잃은 아들 때문에 생긴 술병으로 결국 간이 상해서 돌아가셨다. 예중에 진학해서 미대생을 꿈꾸었던 화자는 오늘도 어머니가 이모님들과 하시던 반찬가게의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노동에 자신을 구겨 넣는다. 어떤 지고의 행복을 추구하는 대신, 그냥 아무 일도 없이 조용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은 우리 보통사람들의 심리에 안윤 작가는 총알을 명중시킨다. 부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부디 어제와 오늘이 같기만을 바랄 뿐이다. 젊어서는 어제와 다를 게 없는 오늘을 한탄했었는데 그 반대를 바라게 된 걸 보니 확실히 늙긴 늙은 모양이다.

 

원래 기름진 생선 대신 단백한 녀석들을 애정했는데, <방어가 제철>을 읽고 나니 얼마 전 너튜브에서 본 바닷가 갯바위에서 통통한 잿방어를 잇달아 걷어 올리던 강태공들 생각이 났다. 그렇지 낚시는 모름지기 갯바위가 최고지. 오늘 점심에는 스시가 먹고 싶어졌다.

 

<만화경>에도 어김없이 죽음과 끼니가 등장한다. 남편과 이혼하고 새롭게 둥지를 나경의 이야기. 친구는 애 둘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다. 가끔 전화를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게 친구 사이는 멀어져 간다. 자주 보지 못하면 그리고 자주 만나지 못하면 관계는 소멸의 수순으로 접어들기 마련이다. 전화 연락인 카톡이라는 끈을 유지해야 하는 게 우리네 관계의 숙명인가.

 

집주인 숙분, 세입자 나경 그리고 숙분의 고향친구 단심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살갑다. 여자들은 연대해서 음식을 나눈다. 치자 가루를 넣어 노릇노릇한 때깔의 부침개라고 했던가. 남자들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먹거리 제조법이다. 확실히 신이 여자를 나중에 창조해서 남자보다 현명하게 만들었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삶은 눈에 띄지 않지만 죽음은 그렇지 않다. 건강한 누구라도 예외는 없다. 나경의 전에 살던 세입자 미리내의 이야기에 문득 숙연해진다. 그리고 환풍구에 붙여진 야광별 스티커도. 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예의 야광별 스티커가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줄까라는 부질 없는 환상을 품어본다.

 

다른 소설도 좋았지만, 집필 후기 같이 맨 끝에 실린 에세이는 더 좋았다. 무뎌진 고통이라. 우리는 그렇게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는 이상한 인간이 되는 건 아닐까. 소중해질 기회가 박탈된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보고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 것 같다. 한 방의 정중앙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책무더기는 논외로 하자. 홍콩에서 왔다는 철제 쿠키 상자를 필두로 해서 오만 것들을 버리지 못한 채, 끌어안고 살아간다. 마음 같아서는 50리터 짜리 종량제 봉투에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모두 다 때려 넣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종량제 봉투에 투척하기 전까지의 마음이고, 그 순간에 또 변심할 거다. 나만의 이유를 만들어내며 그런 잡동사니들을 끌어안고 가야할 논리를 순식간에 만들어내겠지. , 왠지 꽁꽁 숨겨둔 속마음을 들켜 버린 느낌이랄까. ‘공간 낭비라는 말에 찔끔했다.

 

짧지만 강렬한 글들이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다 읽고 나니 개운했다.

, 책에서 만난 네그리타 5구를 주문했다. 구근이 4천원, 배송료가 4천원이었다. 봄에 멋들어진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봄을 기다린다.

 


[뱀다리2] 점심은 예고한 대로 스시를 먹었다.

원래는 9,900원 세또를 먹으려고 했으나...

이천원 더 얹어서 포식을 했다.


이제 만원으로는 맛난 점심 먹기가 어려워졌다.



새우와 대게 덴뿌라는 일품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츄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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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3-01-06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밥을 물었을 때 파르르 떨리는 손맛의 추억˝이라고 쓰신 것을 보니
주말어부라 불리실 만 한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중독성이 깊게 느껴집니다!
네그리다가 어떤 꽃인지 몰라서 검색해봤어요.
그랬더니 ‘네일 그리다‘와 ‘네그리‘만 검색이 되네요. ^^;;
암튼 작년 한해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레삭매냐 2023-01-06 14:55   좋아요 0 | URL
그 땐 그랬지이~~~
카오 참말로 그립습니다,
그 시절이.

같이 다니던 동생들 밑밥
도 죄다 끼워 주고 채비도
맹글어 주고 그랬는데 말
이죠.

한 번은 클램으로 갈매기
도 잡...

네그리타는 보라돌이 튤립
품종이랍니다.

* 밥 먹으러 가느라 서둘러서
치다가 그만 오타가 나고 말
았네요. ‘네그리타‘라고 합니다.

독서괭 2023-01-06 14:40   좋아요 1 | URL
저도 궁금해서 검색에 돌입 ㅋㅋ ‘네그리타‘라고 치니 나옵니다^^ 색깔이 예쁘네요.

바람돌이 2023-01-06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랑 반대
저는 낚시는 좋아하지 않고, 회는 엄청 좋아합니다. 지금 딱 방어철인데 아직 못먹었어...ㅠㅠ
레삭매냐님이 말하는 이 소설은 뭔가 아련한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네요. ^^

레삭매냐 2023-01-06 15:46   좋아요 1 | URL
지금이 방어철이로군요.

파도가 촤아~ 치는 바다
에서 시간을 낚는 낚시야
말로 감히 최고의 레저라
고 생각한답니다.

아련함 크하.

독서괭 2023-01-06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마음을 찔끔하게 만든 에세이 ㅎㅎ
마지막 튀김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역시 먹는 건 중요하지요.
˝그냥 아무 일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 아 저도 점점더 그런 것 같아요. 평온하게 지나간 하루가 소중합니다. 저녁도 맛있게 드세요^^

레삭매냐 2023-01-06 15:51   좋아요 1 | URL
술밥향꽃으로 이루어진 소설들도
좋았지만, 엔딩의 에세이가 만점
이었습니다.

튀김, 카오 ~

되는 대로 살자주의자인 제게
오늘도 그저 무사히 -

오늘 저녁에는 매주 금요일마
다 세일한다는 바른치킨의 치
킨을 먹습니다.

자목련 2023-01-09 0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모의 트리플 시리즈는 말씀처럼 마지막의 에세이가 더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읽고 바로 리뷰를 쓰시는 매냐 님, 대단하세요^^

레삭매냐 2023-01-09 13:13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 덕분에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이 방어철이라고 어제
장에 갔더니, 어물전 주인장
이 목이 터져라 외쳐서 살포
시 웃었답니다.

인스타에 올린 피드에는 안윤
작가가 들러서 살짝 좋아요
누르고 가셨더라구요 ㅋㅋㅋ

자목련 2023-01-12 13:07   좋아요 1 | URL
아마도 안윤 작가 님이 더 좋으셨겠지 싶어요.
인스타의 세계, 저도 시작해볼까 싶은 요즘입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