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바다 - 그 바다는 무엇을 삼켰나
황현필 지음 / 역바연 / 2021년 12월
평점 :
품절



 

어려서부터 내셔널리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탓도, 월드컵도 잘 보지 않았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거의 모든 이들이 봤다는 <명량>도 보지 않았다. 그러다 세밑에 도서관에 갔다가 황현필 작가의 <이순신의 바다>가 보였다. 냉큼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계묘년 첫해의 첫 번째 책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술술 읽혔고, 그림과 지도들이 많아서 읽는데 전혀 부담이 없었다.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다.

 

영웅을 뛰어 넘어 성웅이라 불리는 역사적 인물이 우리나라에 또 있을까. 세종과 이순신 정도가 아닐까 싶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군주에게 핍팍과 억압을 당하고 결국 7년 전란을 마무리짓는 마지막 전투에서 산화한 신화적 인물이 바로 이순신이 아니던가. 자그마치 5,000여명이 되는 이들이 이순신 연구를 하고 있다니 그가 얼마나 문제적 인간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처음부터 타협적인 태도를 지닌 정치적 인간이었다면 원균의 모함이나 조정이나 선조의 탄핵을 받아 백의종군하거나 그런 일은 처음부터 없었으리라.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태생부터 그렇게 생겨 먹은 위인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색당파로 분열된 조정에서 한낱 지방관에 불과한 무인을 주무르는 건 일도 아니었으리라. 그나마 그를 발탁한 서애 류성룡을 필두로 한 인물들이 이순신을 비호해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이 가시화되고 있었지만, 개국 이래 200년간의 태평성대로 조선은 외적의 대대적인 침략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15924월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 정예부대가 부산진에 상륙했을 때 육전에서 조선군은 일본군에게 판판히 박살이 나고 있었다. 결국 임금 선조는 파천하고 의주로 튀어 버렸다. 한국전쟁 때 최고책임자처럼 말이다.

 

조국이 파국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조정으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일군의 수군을 이끌고 왜군의 수륙병진작전에 쐐기를 박았다. 가장 먼저 왜군이 상륙한 경상도 바다를 지켜야 했던 원균은 아무런 작전도 하지 않은 채 도주했다. 이런 인간을 선조는 계속해서 중용하다가 결국 칠천량에서 사단을 내고 만다. 그를 비호한 조정 인사였던 윤두수는 원균과 사돈지간이었고, 또 윤두수는 선조와 사돈지간이었다고 한다. 망조 들린 나라 조선 몰락의 이유에는 이렇게 정실인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 재정의 1/3을 책임지는 호남을 왜군에게 넘겨준다면, 전쟁 수행을 위해 보급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조선 원정군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다. 일본 수군의 서해 진출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이순신은 자신 휘하에 배속된 수군은 물론이고 끌어 모을 수 있는 모든 병사들과 주력함선인 판옥선을 모으는데 집중했다. 일대일 대결에서는 일본 소년 무사 하나를 당해낼 수가 없었기에 원거리 아웃복싱을 주력으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수군의 장기인 등선육박전을 피하고, 대신 원거리 함포사격으로 왜군 격파를 시도했다.

 

한편, 조정으로부터 아무런 지원과 보급을 기대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판옥선의 건조는 물론이고, 군량미와 화약 등 전쟁 필수물자들을 자급자족해야 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가 도입했다는 둔전제 실시에도 적극적이었다. 전쟁이 소강기를 맞이했을 때는, 이순신이 직접 농기구를 들고 밭을 갈기도 했다고 한다. 뛰어난 지방관으로서의 모습도 보인다.

 

전략가로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적에게 아군의 의도를 숨긴 채 기동하는 기도비닉은 기본이었다. 사전에 실전에 가까운 빡센 모의훈련으로 얼마 안되는 조선 수군을 정예병사로 키워내는데 성공했다. 지속된 정찰로 적의 동태를 파악하는 데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전장으로 적을 유인해서, 아군의 피해는 최소한으로 하면서 적을 섬멸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옥포해전을 필두로 해서, 마지막 노량해전을 제외하고 스무 차례에 달하는 전투에서 아군의 피해가 말도 안되는 가성비를 자랑했다.

 

물론 가장 많은 적은 쳐부순 한산도대첩도 중요했지만, 이순신 자신은 당포해전을 중요시했다는 점도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견내량과 한산도를 장악한 이순신은 일본 수군의 서진을 철저하게 막았다. 오죽했으면, 타이코 히데요시가 일본 수군에게 이순신과 맞붙지 말라는 명을 내렸을까.

 

고려 천자라 불리던 만력제의 결단으로 선조가 그렇게 고대하던 명군이 마침내 참전하면서 내내 밀리던 육전에서도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한 명군이 조선군처럼 열심히 싸우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명군과 왜군과의 정전협상이 개시되면서 1597년까지 4년간의 냉전이 시작됐다. 명에서 파견된 협상가 심유경의 주작질로 협상이 질질 끄는 동안, 일본은 자그마치 9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서 진주성을 함락시키고 대학살을 자행한다. 그동안 이순신은 조정을 명을 받고 일본군을 요격하고자 부산진까지 출진했지만, 협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명나라의 제지를 받고 군사를 돌리게 된다.

 

이 와중에 사사건건 이순신의 전쟁을 방해하던 원균이 올린 장계를 철썩 같이 믿은 멍청이 임금 선조를 결국 이순신의 파직시키고 조정으로 압송을 명령한다. 도대체 이순신이 무슨 역적질을 했단 말인가? 나라를 잃고 파천한 임금이 자신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조커 같은 카드를 이렇게 대하다니 그저 할 말이 없을 뿐이었다. 인조와 더불어 조선 역사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암군 선조가 그렇게 믿고 의지한 원균이 이순신이 수년간 애를 써가면서 키운 조선 수군을 칠천량 전투에서 한 방에 들어먹었다. 이순신이 건재하던 시절에는 얼씬도 못하던 남해 바다가 왜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일본이 재침공한 정유재란의 시발점이 되었다.

 

아무리 멍청한 임금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카드가 달랑 하나 남아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은 선조는 백의종군한 영웅을 다시 복직시킨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영웅은 남아 있는 한 줌의 패잔 부대를 끌어 모아 기세등등한 일본 수군에 맞선 전투가 바로 명량대첩이었다. 아무래도 영화를 봐야 하나 싶다.

 

그간 황현필 작가의 임진왜란 역사 콘텐츠를 많이 보았는데 그중에서도 백미는 역시나 임진-정유재란을 마무리짓는 노량해전이 아닌가 싶다. 조국의 강토를 짓밟은 왜군이 다시는 조선 땅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사기가 떨어진 채 철군하는 왜군을 섬멸하는 것이 이순신의 최우선 목표였다.

 

울산왜성의 가토 기요마사 부대와 사천왜성의 시마즈 요시히로 부대는 조선 수군의 작전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타겟이 될 수가 없었다. 대신 순천왜성에 주둔하던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는 그대로 돌려보낼 수가 없다는 게 이순신의 판단이었다. 해상으로 철군하지 않으면 고사당할 위기에 처한 일본군의 발악은 예상을 뛰어 넘었다. 그만큼 조선군의 피해도 막심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이순신은 마지막 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실제 역사지만, 이렇게 완벽한 서사가 또 있을 수가 있을까 싶다. 무과에 급제해서 변방에서 실력을 기른 장수가 국난의 위기에 분연히 일어나 연전연승하며 조국을 구했다. 국가 지도자는 이런 영웅에게 어떠한 지원도 해주지 않은 채, 터무니없는 명령만 주문한다. 라이벌의 모함을 받아 들여 그를 파직시키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막내 아들과 어머니를 전란 중에 잃었다. 자신도 사천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1년 간 고생했다. 역병에 걸려 운신이 어려운 와중에도 뜨거운 조국애와 애민정신으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어느 누구도 생전에 영웅의 노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면 결국 자신은 해도 그만인 망궐례를 임금에게 하지 않고, 항명을 빌미로 파직과 탄핵을 당할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전쟁의 대단원을 알리는 마지막 전투에서 영웅의 죽음은 이 위대한 서사의 화룡점정이었다. 다양한 변주를 통해 두고두고 우려먹을 수밖에 없는 완벽한 서사라는 점을 도저히 부인할 수가 없다.

 

왜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가. 정의조차 취사선택되는 수상한 시절 탓을 해야 하는 걸까. 내우외환, 고물가 그리고 경제 위기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모든 지표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시기에 지도자의 자질과 품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3-01-01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려천자 ㅎㅎㅎ 딱 맞는 말같아요. 칠전량전투 너무 열받더라고요. 마지막 문단 와닿습니다 매냐님 ~ 편한 저녁 보내세요 *^^*

레삭매냐 2023-01-02 10:01   좋아요 1 | URL
어제 결국 영화 <명량>을 봤는데
진차 국뽕 원탑이었습니다.

칠천량 전투는 정말 -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3-01-01 2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제 역사지만 너무 드라마틱해서 더 감동적인것 같아요~!! 사실 그대로의 국뽕은 너무 좋은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3-01-02 10:02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실제 역사가
이렇게 드라마틱할 수 있
다니...

명량-한산 그리고 마지막
노량이라고 하는데, 마지
막 작품은 눙물바다가 될
것 같습니다.

bookholic 2023-01-01 2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황현필 유튜브도 좋더라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레삭매냐 2023-01-02 10:03   좋아요 1 | URL
네 황작가님 너튜브
즐겨 보고 있답니다.

좋은 콘텐츠에 박수
를 보내는 바입니다.
쨕쨕쨕.

감사합니다, 북홀릭님
도 새해 복 많이 받으
셔요.

coolcat329 2023-01-02 0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국뽕할 만 해요. 정말 영웅의 서사입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레삭매냐 2023-01-02 10:06   좋아요 1 | URL
저의 디폴트는 국뽕 결사
반대지만, 이 정도면 예외
를 두어도 되지 싶습니다.

<명량>에서 적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대장선이 울돌목으로 빨
려 들어갈 때, 갑자기 등
장한 백성들의 포작선(?)
이 침몰 위기를 구해내는
장면은 진차 압권이었습니다.

책은 쉬워서 슬슬 읽힙니다.
감히 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