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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미국에서 최고의 희곡으로 꼽힌다는 아서 밀러 작가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어디서 구했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첫 번째 문동 파티에서 교환하지 않았나 싶다. 참 오래 전에 일이다. 그리고 책은 이제야 읽게 되었다. 어제 설터의 못다 읽은 책들을 찾다가 우연히 만났다.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 역사의 깊지 않은 미국인들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필두로해서 자신들만의 문학적 성과를 발굴하는데 진심이라는 생각이다.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도 비슷하게 발굴된 그들만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때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다. 주인공은 올해로 와그너 상사에서만 무려 36년을 일했다는 전문 세일즈맨 윌리 로먼.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예전의 인맥 세일즈에 집중하는 그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아니 윌리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그는 계속해서 좋았던 과거에 의존하는 그런 삶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매일매일 필요한 경비에 신경써야 하는 윌리와 린다 부부에게는 비프와 해피라는 두 아들이 있다. 삼십 줄에 들어선 이 아들들에게 거는 윌리는 기대는 대단하다. 문제는 이들의 능력이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실 비프는 고등학교 시절 잘 나가는 풋볼스타였다. 하지만, 졸업하는 해에 수학 과목에서 낙제하는 바람에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버지니아 대학 입학허가서를 받아 두고서도, 수학 과목을 망치는 바람에 인생이 꼬여 버렸다.
보통의 아버지라면 그런 아들을 다독여서 계절학기 수업을 듣게 해서라도 위기탈출을 하게 해주었어야 했는데, 그 해 여름에는 참 일도 많았던 것이 나중에 밝혀지게 된다. 반면, 윌리의 친구 찰리네 아들 버나드는 학업에 충실해서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었다. 어쩌면 현재 버나드의 모습은 윌 리가 그렇게 바라던 아들 비프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문제는 윌리가 여전히 자기 아들 비프와 해피의 실체를 모르고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자들간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그야말로 삶은 고구마 백 개 정도는 생으로 꾸역꾸역 먹은 그런 느낌이다. 나이를 그 정도 먹었으면, 정신을 차릴 법도 한데 특히 비프는 한 자리에 지긋하게 앉아서 버틸 재간이 없다고 고백한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상사들의 명령을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이 이 지경이라면, 정말 특단의 수를 내서 서부에 가서 목장을 경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너튜브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에 대한 콘텐츠를 검색해 보니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었다.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더라도, 판타지랜드 미국에서는 자신이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그야말로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신화”가 아메리카에 퍼져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어떤 대통령은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허황된 이야기로 사람들의 지각을 마비시키기도 했었지.
부자=성공이라는 등식이 성공 게임에 내몰린 모두에게 허용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호된 학습을 통해 거의 강제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예전에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덕담이었다면 이제는 어떤 의미에서 조롱에 가까운 표현이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강남에 아파트 정도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며, 사회문화적 자본으로는 명문대 졸업장 정도는 기본 스펙이 된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돈 많은 부모의 상속분까지 가지고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 이런 어떤 조건도 우리의 주인공 윌리 로먼에게는 해당되는 게 없다는 비극의 출발점이었다.
결국 이러저러한 이유로 코너에 몰린 윌리는 생각해서는 안될 일을 실행할 꿈을 꾸게 된다. 심지어 윌리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오래 전에 죽은 형 벤이 수시로 등장해서 인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동생을 자극하니 말이다.
내가 이 희곡에서 가장 답답했던 장면은, 윌리의 친구 찰리가 윌리에게 주급 50달러 짜리 일자리를 제의하는데도 자신은 잘 나가는 세일즈맨이라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는 장면이었다. 자신이 36년간 복무한 와그너 상사에서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어 해고된 마당에 그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단 말인가? 사고를 가장한 자살 보험사기로 남은 가족들에게 20,000달러를 남기고 떠나겠다는 윌리의 플랜 앞에 모든 건 무의미해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작 모든 문제의 시발점은 나중에 비프가 지적하듯이 ‘진실의 부재’였다. 비프와 해피의 능력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함에도 그 진실을 받아들이길 로먼 패밀리의 가장 윌리는 거부했다. 자신의 외도가 아들에게 발각되었을 때, 교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역시 은폐로 무마해 버렸다. 진정한 의미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는 숱한 기회가 있었지만, 당장의 고통스러운 진실을 외면해 버리는 방식으로 성공의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 것이다. 결국 모든 책임은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나에게 있다는 사실로 귀결된다.
너튜브의 바다에서 요즘 잘 나가는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비프도 찾아보았고, 1985년작 영화에서는 젊은 날의 존 말코비치가 비프 역으로 등장하는 장면도 찾아볼 수가 있었다. 영상의 화질 때문에 최근 영화를 선호하는 편이긴 하지만, 확실히 배우들의 연기 수준은 올디스가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
기회가 된다면 연극으로도 한 번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