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버텨!
장자크 상페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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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어김없이 그래픽노블들을 몇 권 만나게 되었다. 관심 가는 신간들은 계속 사들여서(도서관보다도 빨리!) 읽는 속도가 사제끼는 속도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등산객들과 도서관 주차장 경쟁을 하니 좀 짜증이 나긴 했지만 재미진 그래픽노블들과 만나니 기분이가 좋았다.

 

내가 아마 처음 만난 장자크 상페 작가의 책은 <얼굴 빨개지는 아이>가 아닌가 싶다. 그 다음에 간간히 상페 작가의 책들을 주섬주섬 읽고 있다. 이러면서 또 팬은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하나. 118쪽 정도를 읽고 나서 맨 끝에 보니 그동안 나온 상페 작가의 책이 스무권이 넘더라. 내가 그 중에서 본 게 몇 권이더라.

 

<계속 버텨!>는 우리가 지나온 지난 2년여에 걸친 코로나 시절에 대한 회상이 아닌가하고 내 맘대로 생각하고 싶다. 모든 게 갖춰진 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면서도, 외발 수레 하나에 기뻐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라. 항상 기술 문명의 진보가 과연 우리를 예전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동시에 자연의 효용에 대한 사유로도 이어졌다. 빌딩 숲에서 예전의 사냥 대신 다른 방식으로 먹거리 벌기에 나서고 있는 우리 인간은 푸르른 초원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페 작가는 고런 부분들을 아주 예리하게 짚어낸다. 내가 이래서 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니깐 그래.

 

늦은 시각, 조용한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어느 사람의 실존에 대한 분석은 또 어떤가. 아마 작가라면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상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도대체 이 늦은 시각, 저 사람은 무엇을 하다가 언제 올지도 모를 그런 열차를 기다리고 있을까. 비록 한 컷에 불과한 크로키 수준의 그림이지만,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칡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 내 눈을 통해 뇌에 전달된 시각적 정보에 상상력을 얹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반전도 없지 않으니, 알고 그 사람은 그저 기차를 기다리는 거였다는 결론이다. 이런 게 상페 작가의 한 방이었던가?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될 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계시인가.

 

지금은 쇠락했지만, 가톨릭 국가 프랑스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성당을 찾은 노부인이 희한하게 구부러진 초를 봉헌하면서 읊조리는 독백도 재밌다. 문득 그렇게 구부러진 초에 불을 켜면 곡선을 따라 가며 초가 탈까 싶기도 하다. 다른 컷에서는 호시탐탐 타인의 개인사에 관심을 갖지만 정작 그들의 고민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하지 않고, 아니 나에게 부담이 되는 걸 거부하는 현대인들의 이중성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우리를 현대인이라는 타이틀에 가두는 것은 적당한 거리감이 아닐까?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항상 외롭다며, 거대한 인간 공동체 속에 살면서도 부담스러운 관계는 싫고, 적절한 거리 유지만으로 나의 실존만을 추구하려는 이기적 마인드의 노예가 된 건 아닌가 싶다.

 

고전적 글쓰기를 고집하다가 기술자 처남의 도움으로 신기술의 종노릇을 하게 된 남자의 모습도 우스꽝스럽다. 또 한편으로는 작가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는 어쩔 수 없는 돈벌이에 나서야 한다는 아주 간단한 명제를 절실하게 느끼기도 했다. 하긴 만화가로 떠서, 이제는 만화를 그리는 대신 전업 너튜버로 변신해서 기상천외한 컨텐츠로 수익창출과 자신의 재미나 수다 세 가지를 모두 챙길 수도 있지. 누구나 그럴 수는 없겠지만.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너튜브 생태계는 참으로 다양한 삶의 행태가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로 동영상 컨텐츠를 만들고, 대중이 그 컨텐츠를 소비하게 만들어서 수익을 내는 신박한 시스템의 탄생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상페 작가는 올해로 구순을 맞이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좋은 작품들을 계속해서 발표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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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13 14: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반가운 작가네요. 제가 바로 얼굴 빨개지는 아이 ㅎㅎ 재채기 하는 친구는 못 찾았어요. 구순을 맞이하셨군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책을 내주셨음 하는 욕심 ㅎㅎ 입니다 ~

레삭매냐 2022-06-13 19:13   좋아요 3 | URL
최근에 작고하신 송해 샘도
그렇고, 아무래도 한 시대가
그렇게 가는가 봅니다.

부디 오래 작품활동을 해주시길.

프레이야 2022-06-13 14: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장자크 상페가 구순이군요. 제목도 ㅎㅎ현존하는 줄 몰랐네요. 오래 건강하게 집필할 수 있으면 합니다. 재미나게 보여요.

레삭매냐 2022-06-13 19:13   좋아요 4 | URL
제가 다 담지 못해서 그렇지
재미진 에피들이 많답니다 :>

약간 프랑스틱해서 그렇지,
공감대를 만들어 주는 이야기
들이 많습니다.

페넬로페 2022-06-13 16: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장 자크 상페의 책을 한 권 정도는 읽은 기억이 나요~~
계속 버텨!
제목에 따른 내용들이 좋아요^^
왠지 오늘 힘이 빠지는데 힘이 좀 솟는 기분입니다**

레삭매냐 2022-06-13 19:14   좋아요 4 | URL
hangin‘ tough !!!

무슨 일로 기운이 빠지신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다같이 힘내
BoA요.

저녁 때가 되어 날이 선선해
지니 좋네요.

얄라알라 2022-06-14 1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도 (비교적 너그럽게) 구매해주는 그래픽 노블의 작가가 바로 장 자크 상페일 거 같은데, 요 책 레삭매냐님께서 소개해주시니 바로 검색들어갑니다

레삭매냐 2022-06-14 13:20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

다른 그래픽노블은 안되도
상페 아자씨의 그래픽노블
들은 죄다 알아서 척척 사
주더라구요.

가넷 2022-08-12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돌아가셨네요. 지금은 예전만큼의 애정은 아니지만… 슬픈 소식이네요 ㅠㅠ

레삭매냐 2022-08-13 22:1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힌 시대가 저무는
걸 절실하게 깨닫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