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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데나의 세계
뫼비우스 지음, 장한라 옮김 / 교양인 / 2021년 12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607/pimg_7234051033438604.jpg)
보통 그래픽노블은 도서관을 이용한다. 사실 아주 어지간한 작품이 아니라면 소장가치를 느끼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래픽노블의 출간을 찬양하면서도 막상 내 돈주고 사는 것에 대해서는 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항감을 느끼지 않나 싶다. 이율배반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어제 주말 행사가 된 도서관 방문에서 그래픽노블을 몇 권 빌려 왔다. 그 자리에서 바로 읽기 시작한 책이 바로 뫼비우스 작가의 <에데나의 세계>였다. 우선 25,000원이라는 가격에 놀랐고 그 다음에는 작가의 불친절함에 놀랐다. 처음부터 대놓고,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경고문이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다. 그러니 읽을 사람은 읽고, 또 무한한 해석의 자유도 동시에 배부된 거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4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에데나 세계관을 읽고 나서도 과연 내가 무엇을 읽었나 그리고 도대체 뫼비우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해 알지 못하겠다고 고백해야겠다. 자신이 어려서 잃어버린 잠수함으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는 상상을 초월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주로 향한다.
우주여행을 하는 두 명의 우주비행사 스텔과 아탄. 이들은 우주선 고장으로 불시착하게 되고 중성적이었던 그 둘은 그 항성에서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 진화(?)하게 된다. 그리고 아타나가 된 아탄에게 들이대던 스텔을 버리고 아타나는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만다. 이 부분에서는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의 스토리가 생각나지 않는가. 그 항성이 공기 호흡을 할 수 있고, 사과나 체리 같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있다는 점 그리고 사자가 나타나 그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이 눈길을 끈다. 다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로 돌아가, 그렇다면 그들을 창조한 창조주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피라미드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선택받은 인간 스텔이 탁월한 실력을 지닌 우주비행사로 선택받아 사람들을 끌어 모아 어디론가 출발한다. 떠남과 귀향의 서사는 왠지 호메로스의 오딧세이가 연상되기도 한다. 피라미드의 어딘가에 적혀 있는 바에 따르면,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던가. 이미 수천년 전에 선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사의 세계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말이다.
피라미드가 안착한 항성에는 ‘둥지’라는 곳에 코쟁이들이 살고 있었다. 오염된 외부 환경에 대해 거의 편집증적 증세를 가지고 있던 그들은 코끼리 코 같이 생긴 가면을 쓰고 있는데 이들은 아버지라 부르는 창조주의 지배를 받는다. 그들에게 사로 잡힌 아타나는 죽음을 맞던가. 그들에게는 언젠가 스텔과 아탄이라는 신들이 강림할 거라는 전설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아는 대로 서사를 이끌어 나가면서도 순서가 맞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내가 느낀 대부분의 서사는 그렇게 아버지에게 조종당하던 코쟁이들이 반란에 성공해서 마침내 자유를 되찾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에 따른 반동으로 다른 곳에서 새로운 ‘둥지’를 만든 도마뱀붙이의 조종을 받는 이들이 다시 한 번 스텔과 아타나를 위협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말미에 가서는 대사도 없는 ‘복원’의 서사로 마무리된다. 마지막에 이 일견 황당해 보이는 세계관을 펼친 뫼비우스 작가의 작업실이 등장하던가.
애초에 <에데나> 시리즈는 시트로엥사의 의뢰로 출발했다고 한다. 그리고 뫼비우스는 작가는 계속해서 그 세계관을 발전시켜 방대한 서사의 기초로 삼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구동하는 시트로엥 자동차의 우수성을 선전하고 싶었나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607/pimg_7234051033438607.jpg)
한편, 혁명의 관점에서 본다는 각종 페이크 뉴스로 시민들의 자유를 억누르고, 시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을 마치 자신의 사유물인처럼 행사하려는 아버지 일당에 대한 일격 그리고 그에 대한 반동 서사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적당량의 진실과 가짜를 섞어서 시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전술의 위력은 대단했다. 코쟁이들은 콧병에 걸리면 바로 죽는다는 위협에 살기 위해 그 갑갑한 복장을 고집하지 않는가 말이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다양한 방식의 거짓 선동에 시달리다 보니 뫼비우스 작가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뫼비우스 작가는 그래픽노블의 상당 부분을 주인공들의 꿈에 등장한 것을 차용하는데, 작가가 구사하는 서사를 따라가기사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사실 그래픽노블의 중심 서사가 모호하다 보니,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자유로운 해석에 의존하다 보니 너무 자의적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정답 없는 문제를 푸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자세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건 나의 무지 탓이리라. 그냥 나는 단순하고 명징한 서사를 좋아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