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시리즈는 하나의 빌런과 나머지가 똘똘 뭉쳐 싸운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빌런은 바로 몇 년 전 치팅 스캔들로 우승을 차지한 휴스턴 애스트로스였다. 그 빌런을 응원하는 이들 말고, 모든 이들이 반대편을 응원했다. 그런 응원 버프를 받아 무려 사반세기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한 팀이 바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다.

 

이번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 중에서 가장 성적이 떨어지는 애틀란타가 언더독이었다. 아주 오래전, NFL에서 최강팀 램스를 상대로 뉴잉글랜드 페이트리어츠가 기적의 우승을 해낸 기억이 나는군 그래.

 

메이저리그 최고 승률팀은 자이언츠는 디비전시리즈에서 가까스로 WC로 세인트루이스를 격파하고 올라온 다저스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시리즈 전적 3:2로 다저스가 올라왔다.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작년 애틀란타가 3:1로 이기고 있던 시리즈를 다저스에게 내주고 다저스는 결국 1988년 이래 무관의 설움을 털어내는데 성공했다. 드라마의 조연 역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신시내티에서 1871년에 창단했다는 최초의 메이저리그 팀을 강조하기 위해 브레이브즈는 팔뚝에 150주년 패치를 달고 포스트시즌에 나섰다. 브레이브즈의 2021년 시즌은 그야말로 악재의 연속이었다. 우선 팀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 소로카가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527일에는 주전 외야수 마르셀 오수나가 가정폭력으로 역시나 시즌 아웃. 마지막으로 팀의 젊은 슈퍼스타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가 시즌이 한창인 711일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

 

지난 713일 기준 애틀란타는 디비전 3위였고, 팀의 우승 확률은 0.3%에 불과했다. 하지만 애틀란타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실 야구는 소속팀의 선수들이 하는 거지만, 팀의 구성은 구단의 단장에게 달려 있다. 지난 20년 동안 9번의 포스트시즌 첫 번째 라운드에서 애틀란타는 단 한 번도 퍼스트 라운드를 통과한 적이 없었다. 이것도 운빨이라고 해야 할까?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최강자였던 애틀란타가 1999년 월드시리즈 진출 이래 이렇게 망해도 되는 걸까?

 

그렇게 망가진 재건하기 시작한 건 부정 탬퍼링으로 리그에서 영구 퇴출된 존 코포렐라였다. 그 덕분에 지금의 에이스로 부상한 맥스 프리드, 이번 PS에서 그야말로 챈스에 강한 오스틴 라일리, 내야 사령관 댄스비 스완슨 같이 알토란 같은 선수들을 드래프트 혹은 트레이드로 영입할 수가 있었다. 모름지기 팀의 빌드업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물론 팀의 중심은 작년 MVP에 빛나는 1루수 프레디 프리먼이었다. 브레이브스는 2007년 드래프트 두 번째 라운드에서 프리먼을 지명했다. 그 때 총 순위는 78위였다. 팀과 장기 계약을 맺은 프리먼도 한 때,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될 거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끝까지 팀에 남아 이번 영광의 우승 순간에 마지막 공을 잡아내지 않았던가.

 

어찌 됐건 간에 팀 재건에 공헌한 코포렐라가 아웃된 자리를 알렉스 앤소폴루스가 채웠다. 코포렐라와 갈등은 빚고 있던 브라이언 스니커 감독은 계속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가 있었다. 아울러 스니커 후임 자리를 약속받았던 론 워싱턴도 계속해서 팀에 잔류하면서 팀 케미스트리가 빛나기 시작했다.

 

이번 시즌 애틀란타의 경기를 보면, 그야말로 리그를 씹어 먹을 것 같은 기세의 오타니나 블게주 혹은 타티스 주니어 같은 스타 선수들은 없었지만(아마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가 건강했더라면 그들과 경쟁을 벌였을 지도 모르겠다) 적재적소에서 빛나는 선수들이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역시 다시 한 번 야구는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돈만으로 우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돈 많이 쓰는 팀으로 유명한 다저스와 양키즈가 만날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야 할 것이다.

 

2000년 이래 NLDS에서 9번 패한 퍼스트 라운드 저주를 마침내 2020년 깨는데 성공했지만, 다저스의 벽을 넘는데 실패한 애틀란타의 2021년은 달랐다. 작년 팀 홈런의 35% 그리고 타점의 25%를 담당했던 아쿠냐 주니어와 마르셀 오수나의 부재를 앤소폴루스는 외야의 뎁스를 만들기 위해 716일 컵스에서 작 피더슨을 그리고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애덤 듀발과 호르헤 솔레어 그리고 에디 로사리오를 각각 영입했다. , 시즌 전에는 마운드를 두텁게 하기 위해 찰리 모튼과 11,500만 달러 짜리 계약을 성사시켰다. 예상대로 찰리 모튼은 시리즈에서 맹활약을 보여주었고, WS 1차전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으면서도 마운드를 지키는 그야말로 팀의 베테랑 에이스다운 투혼을 불사르기도 했다.

 

앤소폴루스의 이번 여름 트레이드는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그야말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친 에디 로사리오는 클리블랜드에서 이적한 뒤, 부상에서 벗어나 829일에 처음으로 경기에 투입됐다. 정규 시즌 막판 한달여간의 애틀란타 성적은 33경기 26안타 7홈런 16타점 타율 . 271였다. 하지만 로사리오의 진가는 포스트시즌에 진입하면서 빛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팀에서 미친 선수가 한 명 나오면 시리즈는 그대로 끝이다. 다저스와 재격돌한 2021NLCS에서 에디 로사리오는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다저스를 상대로 한 6경기에서 14안타 3홈런 9타점으로 시리즈 MVP는 로사리오였다.

 

캔자스시트 로열즈에서 건너온 호르헤 솔레어 55경기에서 로사리오와 비슷한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에서 휴스턴을 무너 뜨리는 결정타를 잇달아 날리면서 이적생 솔레어가 26년만에 브레이브스 WS MVP에 선정됐다.

 

그야말로 드라마 같았던 월드시리즈의 열기가 가라앉자마자 바로 핫스토브 시즌이라고 불리는 내년도 우승을 위한 레이스가 벌써 시작했다. 일년의 반이 리얼 경기로 치러진다면, 나머지 반은 바로 그 우승을 위한 준비의 시간들이다. 각 팀들은 프리 에이전트로 풀리는 선수들에게 퀄러파링 오퍼를 제안할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작년 터론토의 로비 레이 같은 로또 투수를 뽑기 위해 벌써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수들 역시 자신의 가치를 최고로 쳐줄 구단을 상대로 해서 프리 에이전트 시장을 나선다. 팀의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들이 잇달아 방출되고 있다. 어디까지나 실력으로 검증받는 무대인 메이저리그는 최상의 실력을 보여주는 선수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냉정한 모드로 돌아서 버린다. 야구가 스포츠인 동시에 비즈니스이기도 한 때문이라고나 할까. 여러 가지 요소들이 뒤섞인 짬뽕탕이라 그래서 더 재밌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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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10 11: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애틀란타가 우승하였군요~!! 오랜만에 우승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요즘 관심이 안가서 안봤는데 완전 재미있었을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11-10 13:10   좋아요 3 | URL
네 1995년 이래 26년만의 우승
이라고 하네요 :>

그 시절에 태어난 친구들이 선수
로 뛰어서 우승할 정도네요 ㅋㅋ

페넬로페 2021-11-10 12: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박찬호선수가 다저스에 있을 때 엄청 메이저리그 야구 많이 봤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나 싶게 아예 관심이 없어졌어요.
이래저래 사랑은 변하는건가봐요~~
보스턴 레드삭스는 어떤 성적인지 궁금한데요^^

레삭매냐 2021-11-10 13:12   좋아요 3 | URL
아무래도 그 전만 못한 것 같습
니다 메자리그의 인기가요.

사랑은 변하는 거인가 봅니다 -

레드삭스는 ALCS까지 올라 갔
으나,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박살나서 시즌 접었답니다.

라로 2021-11-10 15: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71위였다니,,, 프로야구 1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얼마나 많기에 271위?? 이랬어요.
이 글 완전 매냐님 프로야구 전문 해설가 같습니다.
좋아하는 것이라면 이정도는 알아야지!! 오늘도 멋짐 터지십니다.^^

레삭매냐 2021-11-10 16:48   좋아요 3 | URL
271위라 ㅋㅋ 라로님은
야알못이시군요 ^^

제가 오래 전에 야구에 미쳐
살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레드삭스가 PS에서 탈락한
다음에는 애틀란타를 밀었
답니다. 애틀란타가 우승해
서 마치 제가 응원하는 팀이
우승한 것 같더라는.


라로 2021-11-10 19:47   좋아요 4 | URL
매냐님 댓글 읽고 다시 보니까 그건 등수가 아닌 건가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 정말 야알못!!ㅋㅋㅋ
1도 모른다는 말씀을 미리 드렸으니 좀 덜 창피해요,,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11-10 20:05   좋아요 2 | URL
고것은 타율이라고 해서
안타 나누기 타석을 계산한
것이랍니다.

.300 이라고 하면 10번 타
석에 들어서서 세 번 안타
를 쳤다는 말이랍니다.

뭐 그 중에서 희생타와
사사구는 제외하고 블라
블라... 뭐 그렇습니다.

mini74 2021-11-10 17: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남편꿈이 은퇴하면 저랑 메이저리그 보러 가는게 꿈이라는데 저는 ㅠㅠ 하도 옆에서 들어서인지 매냐님 글 속 남정네들 이름이 옆집 총각들 이름처럼 반갑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1-11-10 17:45   좋아요 2 | URL
오호라, 저는 이미 남편 분의 꿈
을 이룬 닝겡이로군요 ㅋㅋㅋ

저의 꿈은 메이저리그 모든 구장
을 돌아 보는... 그냥 꿈으로 만족
하렵니다. 그 시절에 한 번 시도
했었어야 했는데 까비.

붕붕툐툐 2021-11-10 2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레삭매냐님 덕분에 먼 나라 야구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니 넘 좋아요~ 신선신선. 좀 과장하면 외계어 읽는 기분!ㅎㅎ

레삭매냐 2021-11-11 07:45   좋아요 0 | URL
만날 책 야기만 하니 쫌
거시키해서 다양한 썰을
풀어 볼라구 합니다.

오늘은 아마존 전기차로
알려진 리비안에 대해
리뷰해 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