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서
콜럼 매칸 지음, 성귀수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인터넷으로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본 적이 있다. 이게 사람의 발인가 싶었다. 루돌프 누레예프의 삶을 그린 칼럼 매캔의 <댄서>에서도 오페라단 소녀들의 발에서 흘린 피로 하수구가 피로 물들 거라는 표현이 오랫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사실 그동안 발레를 하는 사람들이라고는 미디어나 영화에서 본 바츨라프 니진스키나 영화 <백야>에 등장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그리고 강수진 정도가 전부였다. <댄서>를 통해 전설적 발레리노 누레예프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댄서>는 기이하게도 대독일전쟁, 구소련에서는 애국전쟁이라 부른다, 이 한창이던 혹한의 전쟁터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같은 밀덕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겠지만, 예술 중의 예술이라는 발레 무용수에 대한 이야기가 전쟁으로 시작하다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타타르계 무슬림 집안 출신 누레예프의 삶이 그런 전쟁 같았다는 하나의 비유일까.

 

천부적 재능을 가졌지만 아직 다음어지지 않은 원목 같은 소년 누레예프를 가르친 것은 소비에트의 소도시 우파에서 추방생활을 하던 전직 발레리나 안나와 사샤였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부부는 미래의 전설이 될 타타르 소년에게 발레의 기초를 가르친다. 혁명과 뒤따른 숙청의 엄혹한 시대를 경험한 이들에게 재능 있는 소년을 발견하고 그에게 정식 발레를 가르치는 건 삶에 하나의 활력소가 된 게 아니었을까. 아, 서두에 파리 무대에서 수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 발레계의 스타가 된 누레예프에 대한 간략한 초상으로 시작하는 점도 기억해 둘만하다.

 

물론 누레예프의 발레 인생이 순탄하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하멧은 아들 루딕이 의사나 기술자 혹은 공산당 정치위원이 되길 원했다. 그것도 어쩌면 소비에트 혁명을 경험한 이들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년은 춤이 좋았고, 그 대가는 아버지의 혹독한 매질이었다. 항상 삶에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등장하는 법이다. 하멧의 매질은 오히려 춤에 대한 루딕의 열정을 밀어 붙이는 계기가 된 게 아닐까. 자고로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한 것처럼 하멧은 결국 루딕에게 레닌그라드로 가는 차비를 마련해준다.

 

<댄서>를 흥미롭게 해주는 요소 중의 하나는 메인 캐릭터인 루디 누레예프의 목소리가 아니라 전적으로 그의 주변인들이 들려주는 그에 대한 서사다. 칼럼 매캔은 이 소설의 스타일을 빌린 위대한 발레리노의 평전의 객관성을 더 높이기 위해 그런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뇌피셜이 종종 공식적인 서사로 인정받는 이 시대에, 그런 점에서 칼럼 매캔은 어쩌면 시대에 역행하는 선구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타인의 존중과 숭배를 통해 깨닫게 된 천재의 오만함이 소설을 그대로 관통한다. 물론 그런 점들은 <댄서>를 통해 그려지는 누레예프의 초상을 가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의 전설에 광휘를 빛나게 만들어준다.

 

거의 야만에 가까울 정도로 매력적인 야성미를 자랑하는 이 타타르 남자에 대한 내러티브는 황홀하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성격이야말로 루디 누레예프를 상징하는 그 무엇일까? 그는 또한 주변인들에게 요즘 대세인 힐링의 원천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우파의 안나에게는 제자에게 발레를 가르침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매너리즘에 빠진 안나의 딸 번역가 율리아에게는 영감을 제공한다. 발레 아카데미의 동료들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그들의 발끝을 저릿저릿할 정도의 노력과 희생을 자극한다.

 

1부에서 누레예프에 대한 주변인들의 탐색전이 주를 이루었다면, 드디어 2부에서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소설에서는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지 않지만 1961년 6월 16일, 빈번하게 파리 공연 중에 게이 바를 드나든다는 첩보를 입수한 KGB는 그들의 인민예술가 누레브(Noureev:누레예프의 프랑스식 표기)를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핑계로 모스크바로 소환할 계획을 꾸민다. 이에 눈치를 챈 누레브는 문화상 앙드레 말로의 아들 지인이었던 클라라 세인트와 파리 경찰을 협력을 받아 결국 망명을 시도한다. 1부 말미에서는 그렇게 서방세계로 망명한 인민예술가를 회유해서 조국으로 끌어 들이려는 공안요원들의 가족을 동원한 공작이 펼쳐진다. 한창 서방세계와 체제 경쟁을 하던 소련에게 천재적 안무가의 정치적 망명은 그야말로 국가적 망신이 아니었던가. 누레브는 결석재판에서 결국 7년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그리고 조국의 배신자라는 오명이 뒤따른다.

 

다른 예술 장르가 아이디어를 실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특정한 도구(회화와 음악)를 필요로 한다면, 발레는 태초의 인간의 모습 그대로 가능했다. 물론 토슈즈나 발레부츠, 무용벨트 그리고 발레 복장이 필요하겠지만. 아, 연습을 위한 사방에 거울이 달린 댄스 스튜디오도 필요하겠구나. 결국 예술이란 장르는 어떤 식으로든 비용이 든다는 걸까.

 

인기의 정점을 달리던 순간, 서방세계로 망명한 누레브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일약 안무계의 슈퍼스타로 등극한 미스터 누레예프는 온갖 기행으로 주변인들을 서슴지 않고 놀라게 만든다. 예전에 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가 그랬던 것처럼 느닷없이 닥친 명성과 불나방으로 달려드는 여성들의 물질 공세는 천재를 나락으로 인도하는 모양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파리와 런던 그리고 뉴욕을 비롯한 전 세계 대도시를 누비며 누레예프가 유명인사들의 찬사에 휩싸여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아들의 공연을 보지 못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소비에트 체제에 갇혀 있는 어머니와 누이 타마라의 빈곤한 경제적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누레예프가 죄책감에 시달리는 건 당연지사였을까.

 

전성기를 지나 은퇴할 무렵의 마고 폰테인(1919년생)과의 만남은 누레브 전설의 시작이었다. 자그마치 19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이십대의 야성미 넘치는 타타르 청년과 원숙미를 자랑하는 로열 발레단 출신 발레리나의 만남은 그야말로 한 시대를 가름하는 하나의 이벤트였다. 1964년 마고 폰테인의 남편 파나마의 국회의원이자 국제변호사, 저널리스트 출신 로베르토 아리아스(전직 대통령의 아들)가 파나마시티에서 정적에게 저격을 당해 평생을 하반신 마비로 살게 됐다. 그 결과 그녀는 나이 예순이 될 때까지 남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야 했다고 한다. 소설 <댄서>에서는 그런 에피소드들이 자세한 설명 없이 무심하게 넘어가기를 반복한다. 케네디 대통령의 저격사건으로 추모 열기에 쌓인 미국에서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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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예전에 미리 써둔 리뷰였다. 아마 이렇게 써두지 않았다면 난 아마 다시 <댄서>를 펼 생각도 하지 못했으리라. 성공의 정점에서 이 바닥의 관종이라 불릴 수 있는 미스터 누레예프는 온갖 기행을 일삼는다. 특히 당시만 하더라도 금시기되던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누레예프가 서방 세계에 알려지기 전까지 최고의 발레리노였던 덴마크 출신 발레리노 에릭 브룬과의 스캔들은 시작일 뿐이었다. 오로지 무대 위에 공연 밖에 몰랐던 누레예프는 밤이 되면 쾌락의 노예가 되어 에버라드를 드나들고, 노즈캔디(nose candy:코카인)를 즐기는 엽색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 부분은 베네수엘라 출신 빅터 파레치의 증언 형식으로 이어진다. 구두점이 없고, 너무 자극적인 부분들이 많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 외에도 파리의 저택에서 그의 시중을 든 가정부 오딜, 그리고 솜씨 좋은 영국 출신 제화공 톰 같은 주변인들의 증언이 잇달아 무대에 오른다. 1975년 6월 뉴욕에서 마사 그레이엄이 연출한 <루시퍼> 공연을 앞두고 방탕하기 짝이 없던 누레예프의 그것은 피크를 친다.


모든 서사에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난 책을 다 읽고 나서 전설적인 미스터 누레예프의 무대 위의 퍼포먼스들을 찾아봤다. 나같이 발레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 보더라도, 그의 퍼포먼스는 완벽 그 자체였다. 그보다 더 선배격인 니진스키는 무대에서 공중을 나는 동안, 잠시 쉬라고 했던가. 발끝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누레예프의 육신은 그렇게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40대를 넘긴 누레예프의 몸은 도저히 정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1980년대를 휩쓸 AIDS로부터 누레예프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가운데 망명한 지 사반세기가 지나 드디어 소련 당국은 조국의 배신자 누레예프에게 48시간짜리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꿈에 그리던 어머니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아들이 우파를 찾아왔건만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칼럼 매캔은 1991년 영국 브라이턴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앞에 배치하고,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으로 그야말로 풍운아 누레예프의 불꽃같았던 삶을 그린 전기소설을 끝맺는다.


내가 어떻게 해서 처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2년 전에 이미 책은 절판된 상태였다. 아주 추운 겨울날, 중고서점에 버스를 타고 가서 책을 산 기억이 난다. 퇴근 길 버스에서 마지막 몇 장을 결국 다 읽는데 성공했다. 3년 걸려서 책을 다 읽어서 그런지 너무나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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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11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년에 걸쳐서 읽은 책이어서 더 뿌듯하실거 같아요. 표지에서 절판의 냄새가 납니다^^

레삭매냐 2021-05-11 14:53   좋아요 1 | URL
넵, 2년 전에 이미 절판된
책이었답니다.

다 읽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답니다.
리뷰로 쓱싹쓱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