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적 없는 나라 영국에는 <그랜타>라는 아주 잘난 문학 잡지가 있다. 거의 모든 잡지들이 온라인으로 기사를 송출해서, 전세계 문학에 굶주린 이들에게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하지만 그랜타는 얄짤 없다. 글과 기사를 보고 싶다면, 돈을 내라. 한편으로 동의하면서도 또 왠지 실물이 아닌 온라인 글에 돈을 내기가 꺼려진다. 뭐 그렇다고.
그랜타에서는 몇 년 주기로 젊고 유망한 작가들을 소개한다. 최근에 소개한 게 아마 2017년인가 보다. 하루의 일상이 되어 버린 신간 검색찾기를 하다 보니 가나계 미쿡인 야 지야시라는 작가의 <밤불의 딸들>이라는 책이 열린책들에서 나왔다고 한다.
야 지야시는 가나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해서 앨래배마 헌츠빌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리고 서부 유수의 대학인 스탠퍼드에서 학사를 그리고 아이오와 작가 워크샵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모양이다. 일단 학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다. 누군가 문창과가 소설 업계를 망쳐 놓는다고 했는데 그건 아마 미국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하도 발표되는 글들이 많다 보니, 신예들은 이런 학벌을 들이밀지 않으면 독자들의 눈길을 받기 어려운 현실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랜타의 버프까지 받아 야 지야시는 2016년 발표한 데뷔작 <홈고잉>(이번에 출간된 <밤불의 딸들>)으로 대박이 난다.

발표된지 5년 만에 국내에 상륙했다. 하긴 50~60년이 걸리는 알베르토 모라비아 같은 작가의 책들도 있는 마당에 5년이면 껌인가. 국내에서 책 읽는 이들이 점점 줄어 들고, 소수의 책쟁이들만 어렵사리 출간된 책을 찾는다면 점을 고려해 본다면 아무리 그랜타와 스탠퍼드 버프를 받았다고 하지만 신출내기 작가의 데뷔 소설을 내는 건 어쩌면 모험에 가까운 게 아닌가 어쩐가 싶다.
1760년대 가나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7대를 거쳐 현대 미국에 도달하는가 보다. NPR 리뷰를 슬쩍 찾아보니 아우슈비츠, 난징, 히로시마 그리고 운디드 니 같은 현대사 비극의 장소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만큼 뿌리 깊은 미국의 노예 제도 그리고 그로 유발된 인종주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말이지 싶다.
내가 개인적으로 그랜타가 애정하는 작가들을 추종하는 책쟁이니 또 이런 떡밥을 물지 않을 수가 없다. 읽을 책들이 부지기수지만 또 잘 쌓아둔 적립금과 네이버페이 포인트를 동원해서 아낌없이 지르련다. 아, 다른 동네에서 사야 하나. 이런 책은 도서관 희망도서가 아닌 직접 구매해서 밑줄도 좍좍 그으면서 읽어야 또 제 맛이지 않은가.

별로 궁금해 하시지 않겠지만... 나는 요즘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경멸>에 푹 빠져 있다. 드럽게 재밌더라. 장 뤽 고다르가 연출하고 한창 시절의 브리짓 바르도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버전인 <사랑과 경멸>도 조금 보았는데... 처음부터 드랍게 야하다. 개고기 먹는다고 한국 사람을 야만인 취급하던 바르도는... 정말 여신이었다. 소설은 너무 재밌고, 영화는 한 술 더 뜬다. 뭐 그랬다고 한다. 모라비아 선생이 무능력한 부르주아의 일상과 권태를 저격하는데 달인이라고 하시던데, 고런 평가가 조금도 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늘 중고책으로 주문한 <권태>와 <로마의 여인>이 도착한다. <표범 같은 여자>는 구입에 실패했다. 광활한 우주점으로 주문했는데 고새에 누군가 사간 모양이다. 이럴 수가! 덤으로 주문한 이반 부닌의 책은 당장 사지 않아도 되는데... 고놈의 적립금 1,500원 쓰려다가 이게 머선 일이고!

야 지야시의 두 번째 소설 <트렌센던트 킹덤>은 작년에 나왔다고 한다. 이 책은 또 언제 나오려나 그래.
[뱀다리] 처음에 작가의 이름을 '야 지라시'로 지각한 거슨 안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