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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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를 떠나지 못한다는 거지? 카다레의 신간을 보고 든 생각이 들었다. 읽다 보니 떠나지 못하는 여자가 아니라, 떠날 수 없는 여자가 맞지 않나 싶었다.

 

대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다 걸작은 아니라는 사실을 설터를 읽으면서 깨달았다. 이번에 만난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전에 만난 <잘못된 만찬>은 내가 좋아하는 주제라 그런지 아주 마음에 들었었는데.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다. 그리고 주인공이자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로 극작가 루디안 스테파가 등장한다. , 참 부제가 <린다 B를 위한 진혼곡>이었지. 극자가 양반은 당 위원회에 소집된 상황이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알바니아에는 민주화의 바람이 불지 않았고, 여전히 공산주의 감시체제가 작동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모든 대화는 도청이 되고, 전 국민의 1/4의 서로를 감시하느라 눈에 불을 켜던 그런 시절이었나 보다.

 

저명한 극작가 루디안이 당 위원회에 소환된 건, 그의 애인인 미제나(에니그마의 은유라나)가 그의 서명을 받아 건네준 린다 B라는 인물 때문이다. 그녀는 유배상태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했던가. 카페 플로라에서 만난 판사는 린다 자살의 원인에 대해 스테파에게 말하길 거부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피델 카스트로의 장장 여섯 시간에 달하는 연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이런 부분들은 아무래도 엔베르 호자(대지도자?) 아래 자행된 알바니아 공산 독재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우매한 독자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고백해야할 것 같다. 결국 해외문학 읽기의 한계일 지도 모르겠다.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이라는 스칸데르베그에 대한 언급도 나오는데 역시나 문외한으로서는 이름조차 낯선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 그만큼 알바니아라는 나라가 우리와 거리가 멀다는 방증이지 않을까 싶다.

 

어느 순간, 나머지를 다 읽어야 하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맥락 없는 전개와 오르페우스-에우디리케까지 넘나드는 서술에 마음이 불편해 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어쩌랴 일단 펴든 책이니 다 읽어야지. 대지도자도 한 때 참가했던 지하저항군 시절을 다룬 루디안의 극본은 공연을 위해 검열을 받아야 하는 모양이다. 모든 것이 감시당하고 주시되는 통제사회의 단면이라고나 할까. 연애는 물론이고, 예술 창작까지도. 그런 시절에도 예술가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창작열을 불태웠다.

 

화자 루디안 스테파의 관점에서 이동해서, 이야기는 거주 제한을 당하고 유배 중인 린다에 집중되기 시작한다.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는 린다에게 가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이상향 같은 곳이라는 걸까. 미제나가 유방촬영을 한다는 말을 들은 린다는 자신도 검사에 나서며 병 치료를 핑계로 티라나행을 꿈꾼다. 그 가운데 애증의 삼각관계가 피어났던가.

 

지루하게 전개되던 이야기는 말미인 12장과 13장에 가서야 비로소 베일을 벗는다. 그리고 왜 루디안이 집요하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타령을 해댔는지에 대해서도 드러난다. 린다에 대한 풀리지 않는 거주지 유배형과 극작가 루디안의 작품에 대한 검열이 주요한 소설의 갈등을 빚는 요인으로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린다의 그것이 상대적으로 더 가혹해 보인다. 문화애호를 자처하는 대지도자는 정신분열적 증상을 보이는 루디안을 저승의 신부에게 보내 주라는 말에, 루디안을 옹호하고 나선다.

 

어쨌든 읽는 동안, 그전에 만난 이스마일 카다레의 다른 작품에 비해 너무 집중할 수가 없었다. 철저한 스탈린주의자였던 대지도자의 몰락에 환호해야 하나? 악랄한 알바니아 독재 시스템의 실상을 알았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루디안을 그가 보호하지 않았던가. 린다가 독재의 희생양이라는 점은 분명히 알겠지만, 그녀의 억울함에 감정이 전이되지 않는다.

 

여러 모로 보나 이번 독서는 씁쓸하기만 하다. 돌아오지 않을 나의 시간을 투자해서 읽었건만 뒷맛이 영 개운하지가 않다. 뭐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넘어가 보련다. 나중에 다시 읽게 되면 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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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7 19: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책이 기대를 저버릴때도 있지요. 제일 아쉬울 때는 그래도 뭔가가 있겠지 하고 중간에 안 집어던지고 끝까지 읽었을때예요. 아 내 시간 하면서 말이죠.

레삭매냐 2021-03-09 19:08   좋아요 0 | URL
그래두 마지막에 가서 나름 분전하는데
좀 그랬네요...

잠자냥 2021-03-08 0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랑 비슷한 시기에 읽으셨군요. 저는 이 책 좋았어요. 책 읽는 중간중간 알바니아 역사도 찾아보게 되고, 평소라면 관심 없었을 나라에 대해 찾아보게 되는 것도 문학의 힘이 아닌가 싶더군요.

레삭매냐 2021-03-09 19:11   좋아요 0 | URL
공감하는 바입니다 :>

그나저나 이스마일 카다레는 알바니아 어로
글을 쓰는 지 아니면 프랑스 어로 글을 쓰
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