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도대체 얼마나 책을 많이 읽으면 눈이 멀게 될까? 실명한 도서관장(같은 경우로 실명한 네 번째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이라고 한다) 보르헤스에게 수년간 책을 읽어준 알베르토 망겔의 이야기다. 그는 긴 유목민 생활을 마치고 캐나다에서 살다가 도서관장직 제안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같은 저주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지만, 망겔은 위대한 독서가이고 그의 책 <서재를 떠나보내며>는 우리 같은 독서인들에게 참으로 위험한 책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단테의 <신곡>을 읽지 않았느냐는 준엄한 꾸지람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같은 대지의 숨을 쉬는 이런 동지가 있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나의 독서 스타일은 일단 꽂히는 작가가 생기면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그의 책들을 모은다. 그리고 읽는 건 나중의 일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사서 바로 읽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달만 하더라도 홋타 요시에 작가에 꽂혀서 일단 책부터 사들이지 않았던가. 기세 좋게 시작한 <고야>는 아직도 1권을 못 읽었다. 그동안 다른 책들을 읽느라.

 

누가 뭐래도 내가 읽는 이유는 즐거움 때문이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다른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망겔 선생 역시 도서관장으로 부임한 이래, 새로운 독자들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책읽기가 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열혈독서광인 선생은 단발성 캠페인으로 새로운 독자들을 양성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모바일 게임에 흥미진진한 넷플릭스 드라마 그리고 너뷰트를 상대로 수천년 동안 종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책이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건덕지가 1도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애서가 혹은 열혈독서광들은 쿨하게 패배를 선언해야 하는 걸까?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망겔 선생은 솔직하게 자신이 탐욕스러운 책의 약탈자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나도 예전에는 책을 아주 소중하게 여긴 적이 있었다. 책에 메모는커녕, 접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비닐로 싸서 보관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게 다 무어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4B연필로 간단한 메모와 밑줄을 죽죽 그어 가며 망겔 선생에 버금가는 탐욕스러운 약탈자로 변신하게 되었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오독일 지도 모르겠으나, 망겔 선생에 따르면 글쓰기라는 문학의 스타일은 모방과 반복의 연속이다. 조금은 신학적 귀결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완벽한 창조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밖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세상에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은 불완전하다는 말일까. 저자도 언급한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이 세상의 모든 동식물들에게 명명하는 장면은 지난 수세기 동안 논의되어온 고전적인 주제라고 한다. 원래 그들의 이름이 존재했던 걸까? 아담은 무슨 수로 세상에 존재하는 그 많은 동식물들의 이름을 명명할 수가 있었을까. 무지한 일개 독자로서는 저자가 제기한 질문들에 골이 깨질 지경이다.

 

또한 망겔 선생은 문학은 영원불멸의 골렘이라고도 선언한다. 요 골렘이라는 녀석은 내가 즐겨하는 모바일 게임에 나오는 몸빵 돌멩이 몬스터가 아니라, 유대인의 무슨 설화에 나오는 진흙으로 만들어진 창조물이라나. 우습게도 어리석은 독자는 대가가 만든 명제를 앵무새처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저자가 만들어낸 보편(이데아)의 질서를 따라가야 하는 걸까? 내가 짐작할 수 없는 무언가를 억지로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부질없어 보인다. 창작 자체가 불완전한 것일진대, 불완전한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고? 오만가지 질문들이 책을 읽는 내내 쏟아져 내린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알베르토 망겔 선생이 의도한 것은 아니고? 자신의 책을 읽고 누군가 회의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새로운 책에 대한 도전정신을 불태우게 만드는 것 말이다. 무언가 알려고 사유의 단계로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될 테니까.

 

망겔 선생은 사전 예찬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니 나도 어려서 국어선생님이신 아버지가 집에 비치해 두신 엄청 두꺼운 두 권짜리 국어사전으로 모르는 낱말들을 찾아보곤 했었다. 자전은 또 어떤가? 그나마 사전은 쉽기라도 하지, 부수를 모르면(사실 획수도 아직까지도 헷갈린다) 김찬삼 선생이 세계일주를 구술한 여행기를 읽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횡서가 아닌 종서라 읽다 보면, 줄을 틀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정자도 아닌 약자를 왜 그리 쓰셨는지. 세상의 온갖 정의를 담은 사전의 세계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책을 통해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무지의 벽을 부수기 위해 꼬마 독서전사는 사전에 자신의 계몽을 의탁했었다.

 

문득 어제 오랜 친구와 전화를 하다가 너튜브 콘텐츠의 깊이 없음에 대해 이야기한 기억이 났다. 하긴 짧은 시간 동안에 영상을 통한 정보 전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 무엇이 다룰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에 대한 전권이 주어지지 않았던가. 아니 어쩌면 밀레니엄 시절에 콘텐츠 제작은 새로운 스타일의 글쓰기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기존의 작가들이 글쓰기라는 전통적 방식으로 책이라는 콘텐츠를 만들었다면, 새로운 시대에는 동영상 제작이라는 방식으로 책을 대체할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우리 독자들은 예전에 책을 소비하던 방식대로, 그렇게 생산된 동영상 콘텐츠들을 비판 없이 꾸역꾸역 소화해 내고 있는 중이다. 전통의 책이 지배하던 시절과 달리 댓글이라는 유용하면서도 치명적인 소통의 방식이 더해지면서 콘텐츠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거나, 창작자의 창작 의욕을 깨부수기도 하면서 말이다.

 

어쨌든 책을 대체할 새로운 미디엄으로 너튜브 세계의 확장에 그렇게 비판적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너튜브 콘텐츠에서 영감을 얻은 새로운 독자들은 자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다시 책을 찾게 될 테니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01-27 1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튜브에서 눈과 손가락을 못떼고 있는 1人 매냐님말에 동감 ㅋㅋㅋ

레삭매냐 2021-01-27 14:36   좋아요 1 | URL
저도 비판적으로 보지만,
어쩔 수 없이 너튜브에 이미
영혼을 털렸네요...

syo 2021-01-27 1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이라는 곳에 무슨 문제 있는 게 아닐까요? 석면이라든가..... 헛소리입니다.

레삭매냐 2021-01-27 14:40   좋아요 1 | URL
아 씨오님!
씨게 쳐주시네요... 점심 묵다 보고
는 빵 터져부렀습니다.

석면 때문이었고나.

2021-01-27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1-27 14:46   좋아요 1 | URL
아, 참말로 부끄럽습니다.

대가 망겔 선생이 의도한 바를
과연 제가 얼마나 이해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나
세상에 허명은 없는가 봅니다.

얼마나 열심으로 책을 읽으시면
그런 지경에까지 도달할까요.
전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 적당
하게 읽어야지 싶습니다. 아 무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