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9 - 블러디 선샤인 신미양요 본격 한중일 세계사 9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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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 9편에서는 그동안 아쉽다 싶을 정도로 중국과 일본에 비해 아쉬운 분량으로 진행된 조선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일단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문화학자는 개뿔,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남의 나라 임금의 할아버지 묘를 파헤친 도굴꾼이다.

남연군묘에는 나도 가보았는데 정말 두 명의 천자를 배출할 만하다는 그런 명당 자리다.)


사실 중국과 일본의 강제 개항과 그에 따른 부작용에 비하면 조선의 경우는 상당히 양호했다. 아들 고종이 즉위하면서, 공식적인 직함도 없이 실질적인 조선의 최고 권력자로 부상한 대원군 석파 이하응은 기본적으로 쇄국정책을 실시해서, 서양문물과 교류를 사전에 차단한다. 그가 격렬하게 쇄국정책을 시행한 이유를 제공한 에른스트 오페르트 일당의 남연군묘 도굴사건에서 그야말로 절정을 이룬다. 종주국 청나라마저 양이에게 무릎을 꿇은 마당에 소중화를 자처하는 조선 땅에서 파묘하는 사건이 어디 가당키나 한 설정이란 말인가.

 

한편, 일본에서는 그동안 소원했던 조선과 수교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종래 조선과의 무역은 쓰시마 번주를 통한 것이었는데, 국가 대 국가로 자신들이 강제 개항 와중에 배운 그대로 조선에 써먹기 위한 예행연습이라고나 할까. 물론 조선에서는 이미 기존의 부산에 왜관을 통해 교류하고 이는 마당에,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한 일본과 굳이 수교할 생각은 없었다. 문서상의 미비를 이유로 삼아, 일본의 수호 요청을 무시한다.

 

이제 본격적인 미국과의 한판 대결인 신미양요를 앞두고, 굽시니스트 작가는 그동안 풀어온 썰을 복습하는 시간을 갖는다. 숨 가쁘게 진행된 1800년대를 스케치하는 작업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천지개벽 같은 일들이 지구가 생긴 이래, 아마 처음으로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시절이 아닌가 싶다. 서구를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은 서양이 동양을 압도하고, 자신들이 주도하는 세계적 표준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도량형부터 시작해서 언어와 기술에서 세계를 선도한 것이다. 그렇게 개발된 신무기를 바탕으로 식민지 경영에 나섰고, 숱한 전쟁을 통해 저항하는 세력들을 일소했다. 비로소 제국주의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신미양요에 앞서, 유럽의 새로운 강자의 출현을 알린 보불전쟁에 대한 굽시니스트 작가의 소개도 반가웠다. 스페인 왕위계승 문제로 출발한 프랑스와 동방의 신흥 강국 프로이센의 대결은 어쩌면 피할 수 없었던 시대적 과제였다. 보오전쟁으로 오스트리아의 대독일주의를 분쇄하고, 오스트리아의 간섭을 배제한 가운데 추진한 북독일연방은 남부의 독일어권 4개국마저 아우를 계획이었다. 당연히 유럽의 대국 프랑스에서는 이웃에 강력한 대국이 들어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괴제로 알려진 나폴레옹 3세가 불 보듯 뻔한 전쟁 개시를 주저했다는 말도 있지만, 개전의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 1870713일 엠스 전보 사건(비스마르크의 주작질)이 발생한다. 프랑스 대사가 스페인 왕위계승 문제로 엠스에서 휴양 중이던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를 모욕했다는 소식을 들은 프로이센에서는 대 프랑스 개전 강경론이 대두하고, 남부 독일의 4개국마저 독일 편에 서면서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프로파간다가 성공한 것이다. 프랑스의 선전포고로 전쟁은 1870719일 시작되었다.


 


(프로이센군의 파리 포위전에 사용된 크루프 24파운드 후장식 대포의 발사 장면, 1870.9.19-1871.1.28)


프로이센군은 이미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철도를 동원한 신속한 병력 이동으로 개전 후, 지지부진한 프랑스의 군대 동원령을 압도했다. 실제 전투에서도 수만 많았던 프랑스군은 전략과 전술에서 노련한 프로이센 참모부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메츠와 스당 전투에서 막마옹 원수와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연전연패하였고, 특히 스당에서 프로이센군에게 포위되어 항복 선언을 했다. 정치공작에는 능했지만, 괴제 나폴레옹 3세는 전쟁에서 큰아버지 같이 눈부신 능력은 보여 주지 못했다. 결국 제정이 붕괴되고, 파리에서는 제3공화국이 들어섰다. 주력군이 부재한 가운데, 프로이센군은 파리를 포위하고 개와 쥐 그리고 동물원의 코끼리까지 잡아 먹어가며 버티던 프랑스는 결국 프로이센군에게 항복한다. 역사는 희비극으로 반복된다는 말처럼, 69년 뒤 승리한 적군의 수도 퍼레이드라는 치욕이 반복될 예정이다.

 

전투에서는 프랑스군의 샤스포 소총이 프로이센군의 드라이제 소총의 성능을 능가했지만, 크루프사가 개발한 프로이센의 후장식 대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서방의 전쟁에서는 이런 첨단 무기의 혁신이 이어지는데, 당시 조선에서는 여전히 화승총과 홍이포 같은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 같은 무기들을 들고 양이와의 전쟁에 나서야했다. 1866년 제너럴 셔먼 호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파견된 미국의 함대가 1871년 신미양요를 일으킨다.



(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국 전함에 올라 맥주를 받은 조선 아저씨의 사진이라고 한다. )


조선이 보유하고 있던 대포들은 미국 전함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미국 해병대가 강화도에 상륙해서 결사항전에 나선 조선군들을 초전부터 박살냈다. 중과부적이었지만 조선군은 양이 대표선수 미국의 침략군을 상대로 나름 선전을 펼쳤다. 다수의 지휘관들이 난전 중에 전사했고, 부상당한 병사들도 양이의 포로가 되느니 자결을 택했다. 그러나 미국은 좀 더 대국적인 전략으로 조선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승리를 거두었지만 후속부대와 병참 등의 문제를 고려해서 철군하기에 이른다. 두 번의 양요를 승리라고 착각한 조선은 압도적인 서양의 기술에 대한 근본적이 사고를 수정하지 않은 채 근대화의 결정적 시간들을 허송세월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의 깃발을 올렸지만 여전히 일본의 정국은 어수선했다. 왕정이 복고되었다지만, 에도 막부 250년 동안 누적된 적폐 청산의 길은 요원했다. 우선 단일국가 완성을 위해, 메이지 각료들이 주도한 폐번치현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성공시켜야 했다. 막부 말기, 조슈나 사쓰마 같이 도막에 나섰던 강력한 번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였다. 아울러 원활한 계급의 사다리를 만들기 위한 신분 제도의 정비도 필수였다. 기존의 사무라이들을 정점으로 한 계급 제도가 일본 국가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메이지 지도자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그런 하급 사무라이 출신임에도 말이다. 일본 국왕에서 충성하는 신민들을 제조하기 위한 국민 교육의 도입도 시급한 과제였다. 그렇게 양성된 신민들은 훗날 산업의 역군으로, 또 한편으로는 군의 중심이 되어 미래 침략전쟁의 선봉에서 아시아 각국을 누빌 참이었다. 근대화의 갈림길에서 조선의 그것과 너무 비교되는 점이 아니던가.

 

신년 들어 쉴 새 없이 굽시니스트 작가의 시리즈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달려! 일단 이번 권까지 해서 시중에 나온 책들은 모두 섭렵했다. 다음 권인 <강화도 조약>의 빠른 출간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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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3 10: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달려요 달려 크루프사가 개발한 프로이센의 후장식 대포가 성능좋은 소총을 이김 ! 메이지 유신 그리고 다음편은 강화도 조약 기대 합니다 ^.^

레삭매냐 2021-01-13 10:33   좋아요 3 | URL
아숩게도 굽시니스트 선생의 시리즈
는 9권으로 일단 멈춤이네요...

연초부터 만화만 땡기다 보니 제대로
된 소설을 못 읽겠네요 기래.

그리하야 오늘 새벽부터 <만엔원년의
풋볼> 집어 들었답니다. 빠이팅...

참, 후장식 소총의 작동 원리가 무언가
싶어서 인터넷으로도 검색을 해보았네
요. 조선의 화승총은 선장식, 그야말로
무뎃뽀 정신이었네요.

겨울호랑이 2021-01-13 11: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 레삭매냐님의 명당 자리를 살피는 능력에 진심으로 탄복하고 갑니다! 배수임산 수준의 지식 밖에 갖추지 못한 저로서는 레삭매냐님의 풍부한 현장 능력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레삭매냐 2021-01-13 13:17   좋아요 3 | URL
오래 전, 역사학도로 현장답사를
가본 썰일 뿐입니다.

풍수지리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닝겡이랍니다.

그냥 그 시절이 그리워지네요...

붕붕툐툐 2021-01-13 1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맥주 들고 뿌듯해 하시는 저분.. 왠지 익숙한데, 아무래도 저의 조상님 같습니다!! 저는 저런 흑백 사진이 너무 좋더라구요😍

레삭매냐 2021-01-13 17:01   좋아요 2 | URL
저 분이 들고 계신 맥주는 빈 병이었다고
하던데, 그것으로 무얼을 하셨을 지
궁금합니다.

이런 사진이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흑백 갬성!

붕붕툐툐 2021-01-13 17:04   좋아요 1 | URL
뭐라구요? 빈 병이라구욧? 시무룩....

scott 2021-01-13 20:29   좋아요 2 | URL
툐툐님 ㅎㅎ
빈병이라는 말에 ㅋㅋ

소총으로 시작한 댓글이 풍수지리로 가서 맥주까지 ~ㅋ

굽시니스트 다음편은 언제 나오나요?

레삭매냐 2021-01-14 09:28   좋아요 1 | URL
고건 잘 모르겠네요.

저도 지난 달에 처음으로 도서관
에 들렀다가 만난 책이어서 말이죠 :>

mini74 2021-01-14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병제와 병오는 신이 나서. 이렇게 외우던 근대사가 생각나요 ㅎㅎ조선아저씨 저기에 참기름을 담아 팔기 시작 , 이것이 참기름을 맥주나 소주병에 담아파는 기원이 되는데~ 라고 상상해 봅니다ㅎㅎㅎ

레삭매냐 2021-01-14 16:49   좋아요 1 | URL
역사를 배우던 시절에 이렇게 유용한(?)
만화가 있었더라면 그 내용이 더 쏙쏙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주변 배경을 알고 배웠다면 좀 더 깊숙
하게 역사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마냥 외우라고만 하니 흥미도 떨
어지고... 뭐 그랬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참기름 들기름 담기
에 제격이 아니었을까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