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고 싶다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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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터의 팬이다그의 모든 책들을 읽을 것이다무엇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작고해서 하늘의 별이 된 설터의 <소설을 쓰고 싶다면>은 2년 전에 나왔을 때부터 소장각인 그런 책이었다하지만근간을 사서 구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우매한 독자는 일단 구매를 유보했다그리고 중고서점에서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소설을 쓰고 싶다면>을 기다렸다불행하게도내가 접근할 수 있는 부근의 중고서점에서는 도대체 설터의 <소설>을 만날 수 없었다그래서 하는 수 없이 2년 만에 도서관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것도 책을 빌린 뒤 반납할 때가 다 되어 읽기 시작했다설터의 책들이 모두 좋은 건 아니다어떻게 항상 작가가 균일한 퀄리티의 책을 발표할 수 있단 말인가그런다면 그건 소설 쓰는 기계지작가로서 사람일 수 없겠지그런 노파심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정도로 <소설>은 나에게 대만족이었다.

 

일단 설터의 팬이 아니고소설읽기 선수들이 아니라면 <소설>이 재미없는 그런 책일 수도 있으리라하지만 책중독자나 선수들에게 <소설>은 상당히 위험한 책이다일단 시작부터 내가 모르는 미지의 작품들과 작가들이 연달이 튀어 나온다아는 이들은 알 것이다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아마 대학교 강연 내용을 책으로 만든 것 같은데아직 만나 보지 못한 윌라 캐더를 필두로 해서 이제는 좀 익숙한 이름의 소설쓰는 기계 발자크작가의 고등학교 선배 잭 케루악(이 작가의 책들도 구해 놓고 읽지 못했다), 플로베르모파상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한 미지의 작품들과 작가들이 우수수 쏟아진다어떻게 보면 노다지일 수도 있겠지만나같은 책증독자들에게는 정말 위험한다벌써 윌라 캐더와 드라이저의 <시스터 캐리등을 검색창에 타이핑해 본다이거 정말 큰일이다!

 

나에게 읽을 책이 항상 없는 것은 아니지만이러한 대가의 유혹을 정말 이겨낼 자신이 없다이런 걸 책쟁이들의 숙명이라고 하나대가 역시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는단다그렇다책읽기의 본질은 바로 즐거움이다영화는 도저히 책에 비할 바가 없다소설가 지망생들에게 피와 살이 되는 팁들도 부지기수다어디선가소설에 등장하는 사건이나 인물들이 사실과 유사하다면 우연이라는 말은 모두 헛소리라고 점잖게 타인의 글을 인용해서 저격한다고수다운 발상이 아닌가.

 

결국 소설쟁이들은 어디선가 듣고 주운 이야기들에 살을 붙여 있음직한 이야기라고 한다는 거다그런 점에서 전 세대 소설쟁이들이 글을 쓰기 위해 재미진 이야기거리들을 수집하기 위해 그렇게 술판을 들락거렸는 지도 모르겠다마르케스가 그랬다고 했던가소설의 첫 단락 쓰기가 그렇게 힘들다고아니 다시 쓰기는 또 어떤가대가는 다시쓰기가 소설가의 영원히 끝나지 않을 형벌이라고 했다지그런 점에서 데이빗 설로이도 만만치 않은 다시쓰기의 고수가 아니었던가그이는 책이 이미 나온 뒤에도 계속해서 다시 고쳐 쓴다지작가와의 만남에서 내가 물었을 때는 심지어 자신이 무얼 고쳐 썼는지도 몰랐지 아마.

 

독자제현들이여그렇다고 해서 전혀 주눅들 필요는 없다한국 번역서 시장의 좁고 작음(한 마디로 장사가 안된다는 말이렷다!)으로 저자가 높이 평가한 이사크 바벨 같은 작가들의 책들은 아예 구할 수도 없으니아니 번역서가 없는데 어찌 러시아말로 된 원서를 읽는단 말인가라는 표현이 그대를 구원할지어다최근 관심을 갖게 된 토머스 울프의 책도 마찬가지 이유로 국내에서 구할 길이 없다는 점을 짚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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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절반 정도를 읽고 나서 도서관에 책을 반납했다그리고 다시 빌려서 나머지 절반을 뚝딱 읽었다설터의 위력은 대단했다이 위험한 책을 읽다가 산 책이 몇 권인가우선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시스터 캐리>를 사서 읽기 시작했다그리고 설터가 솔 벨로 최고작으로 꼽은 <비의 왕 헨더슨>와 <허조그그리고 <오기 마치시리즈도 사들였다일단 어떤 작가가 꽂히면 읽는 것보다 사들이는 걸 우선하는 웃기는 독자가 아닌가아마 중고서점에 이 책에 설터가 언급하는 책들이 더 있었다면 다 사들였을 지도 모르겠다그만큼 설터의 <소설을 쓰고 싶다면>은 대단히 위험한 책이다.

 

설터의 소설론을 접하면서 많은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다른 작가는 몰라도 자신은 일상에 대한 자세한 관찰과 기록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던가뭐 조목조목 밝히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오독 또한 독서가 주는 한 가지 즐거움이 아니었던가그가 노트에 기록한 관찰 일지들은 자기 소설의 원천이 아닐까 싶다그렇지쓰지 않은 것들은 모두 사라지는 법이니 말이다글이든 건축이든 요리든재료라는 물질이 필요하기 마련이다소설가들 역시 마찬가지다어떻게 100% 자신만의 창작이 가능하단 말인가그렇다면 좀 더 풍부한 소설을 쓰기 위해서 작가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결론에 도다할 지도 모르겠다.

 

한 시대를 주름 잡은 작가 솔 벨로와의 교류 그리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의 저녁 인터뷰 등일개 아무개라면 할 수 없는 경험을 했던 저자의 에피소들이 현란하게 스쳐 지나간다참 그는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도 참가한 베테랑이라고 했지그런 점에 포인트 추가! 13년인가 하는 군인으로서의 경험을 뒤로 하고전업작가로 새출발했다는 점 또한 특이한 경력이 아닐 수 없다웨스트포인트 출신 소설가라니당연히 설터는 자신의 그런 체험들을 소설에 써먹은 바 있다부끄러움이 아니라 이런 건 오히려 자랑할 만한 그런 게 아닐지.

 

<아트 오브 픽션>의 인터뷰이는 집요하게 설터 작품 세계를 파고든다아니 그의 모든 작품을 읽은 이만이 가능한 그런 인터뷰가 아니었을까나도 못지않게 설터의 책을 읽어서 그런지 팔로우업이 생각보다 쉬었다아니 어쩌면 설터의 책들을 많이 만나지 않은 사람이 만난다면 또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열혈 설터팬을 자처하지만그가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스포츠와 여가>를 세 번씩이나 읽어 보지는 못했다인터뷰이는 그 책을 세 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었다고 했던가노골적인 성애에 대한 묘사로 자신의 단편이 저명한 <뉴요커>에서 거절당했다는 이야기와 묘한 공명을 이루기도 했다. <스포츠와 여가>와 더불어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는 <가벼운 나날>이 출간 당시 혹평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과연 어떤 책들은 시간이 지나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국내에 설터의 책은 모두 9권이 소개되었다그 중에 두 권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과 <그때 그곳에서>를 읽지 못했다전작읽기에 도전하기 위해 나머지 책들도 마저 읽어야지아직도 출간사 목록에 근간으로 <버닝 데이즈>와 <솔로 페이스>가 있는 걸 보면서 조금 행복했다설터 샘은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여전히 읽을 책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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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08 1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도 설터에 지뢰밭을 밞으셨어요.
저는 고전류 이외에는 현대소설 잘 안ㄺ었던 1人인데 설터 소설 읽고 그이후로 독서관이 바뀌었어요.
이분 세상에 나온책들 기고글 까지 싹다 읽었는데 개인적인 인생은 슬픔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첫번째 부인사이에서 낳은 딸이 샤워중 전기 감전사해서 가슴에 뭍었고 연이어 책과 영화가 상업적으로 실패해서 인생에 반은 생활고에 시달렸어도 글쓰기를 포기 하지 않았어요.

레삭매냐 2020-12-08 10:55   좋아요 1 | URL
오오~! 여기서 설터 팬 분을 만나게 되는군요.

전 지난 7년 동안 모두 7권의 설터 책을
읽었네요. 지뢰가 제대로 터졌습니다...
<all that is> 너무 보고 싶어서 읽지도
못하면서 원서로도 샀었더라는 -

이혼했었다는 썰은 들었는데 고런 슬픈
가정사가 있는 지는 미처 몰랐네요.

아, 영화감독 한다고 나섰다가 망했다는
이야기도 리뷰에 담으려고 했는데 이자
묵었네요.

이뿐호빵 2020-12-08 1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울프 저도 최근에 ..
‘지니어스라‘는 영화를 통해 접하고 책을 찾았는데 ...구할 수 없었습니다
중고가 가격이 제법 높은?게 보였지만 선뜻 주문하기는 또 그렇고 ㅎㅎ아쉬움만
그리고
설터의 팬은 아니지만 저도 호기심이 생깁니다ㅋ
덕분에요 ~

레삭매냐 2020-12-08 15:45   좋아요 2 | URL
저는 토마스 울프는 찰스 부카우스키
아저씨가 하도 까서 알게 되었네요
세상에나 :>

그런데 책은 구할 도리가 없더라구요.

미국 사람들도 어렵다고 하는 것 같던
데... 궁금해서 한 번 만나 보고 싶긴
한데 책이 없으니.

설터,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보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