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간이 정말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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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서가에서 나의 독서를 기다리던 책과 만났다. 바로 성석제 선생의 <이 인간이 정말>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자그마치 7년 전에 나온 책인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동안 읽지 않고 뻐팅겼단 말인가. 고전읽기에 지친 나에게, <이 인간이 정말>은 그야말로 불량식품 같은 맛으로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모두 8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인 <이 인간이 정말>에서 내가 최고로 꼽고 싶은 작품은 바로 <찬미>. 처음에는 사람의 이름인 줄 알았고, 두 번째는 讚美라고 착각했으나 이도저도 아닌 贊美였다. 자고로 수컷들은 아름다움에 지극히 약했다. 아름다움의 공인은 누가 해주었던가? 자신의 기준으로 볼 때 아름다움이 중요한 걸까? 아니면 자타가 공인하는 그런 아름다움을 칭하는가? 아무래도 후자에 더 가깝지 싶다. 나레이터를 비롯한 모든 남자들은 이민주에게 그렇게 불나방처럼 들이댔다. 화자는 아마도 그런 아름다움을 가까이 했다가 자신이 입을 화를 걱정했던 걸까? 왜 나는 격렬하게 작가의 페르소나가 구사하는 그런 이야기 속으로 뛰어들었을까. 끊어질 듯 하면서도 이어가는 인연 속에 엔딩에 준비된 묵직한 한 방은 이제 더 이상 소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수컷들의 멘탈붕괴를 유도한다. 이 정도는 되야지 그렇지?

 

그때 나는 아름다움에는 사람을 다치게 하는 독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반 사람과 유별나게 다르게 되는 데는 어떤 대가든 치러야 한다. 그것이 아름다움이라고 하더라도. 유별난 사람과 접촉하는 데에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나는 도망칠 준비를 했다. (90)

 

표제작 <이 인간이 정말>에서는 소개팅 혹은 선자리에 나선 남정네의 넋두리에 그만 넉다운이 되고 말았다. 부동산 부자인 어머니의 후광으로 먹고 사는 놈팽이가 분명한데, 기막힌 미인을 앞에 두고 객쩍은 썰을 푼 게 화근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릴 없이 늘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의 재물의 여유가 있어 사는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지식들을 쌓았고 또 선자리에서 점점 더 지루해 하는 상대방에게 난사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요즘 햄버거병으로 알려진 용혈성 어쩌구로 스테이크를 기운차게 썰려던 상대방의 식욕을 사라지게 만들었으며, 면화 1K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물이 필요하다는 자리에 걸맞지 않은 이야기로 그녀를 불편하게 만든 대역죄는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놈이 하는 말이 다 족족 상황마다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일갈, 멋진 결말이 아닐 수 없다고 단언한다.

 

두 중년남자의 라오스 여행기를 다룬 <남방>을 읽다 보니 이제는 갈 수도 없게 된 해외여행에 대한 뜨거운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우리는 왜 고달픈 해외여행을 가고자 하는 걸까? 무언가 이곳에서는 이룰 수 없는 기이한 경험이 단조로운 삶에 필요해서가 아닐까? 우스갯소리로 문지방을 넘는 순간부터 고생이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겠지. 그들의 라오스 기행에서 가장 유혹적이었던 것은 값싼 물가였는데, 오래전에 갔던 캄보디아 여행에서 너무 저렴한 가격에 잔뜩 구입한 망고스틴(처음 먹어 보았는데 완전 반해 버렸다)을 쉴 새 없이 까먹으면서 느낀 죄책감도 슬며시 고개를 들기도 했다.

 

성석제 선생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문학의 위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시공간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 그야말로 종횡무진 누비는 이야기의 힘은 대단했다. <유희>에서는 5백 년 전 임진왜란 시절로 돌아가, 전쟁에는 무능했지만 개인적 복수에는 능했던 복수장의 비겁하기 짝이 없는 복수극에 방점을 찍는다. 백성의 지아비라는 역대급의 무능한 군주는 자신의 영토와 백성을 지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몽진이란 이름의 도망에는 LTE급 실력을 보여주었다. 굳이 압록강을 넘어 명나라로 넘어가겠다는 걸 간신히 뜯어 말리지 않았던가.

 

전쟁이 끝난 뒤, 암군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군주는 변변찮은 무장과 대의만으로 근왕군을 자처하며 일어난 의병들에게 베푼 포상은 적었지만 자신을 호위한 자들에게는 내시까지도 호종공신인가를 제수했다지 아마. 이런 학습 효과 덕분에 훗날 일어난 또다른 전란에서 백성들이 왕을 지키겠다고 나선 근왕군이 있을 턱이 있나 그래. 작가 선생은 계속해서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간 채유희에 대한 에피타를 강조한다. 죽은 뒤에 뭔 놈의 허울 좋은 관작이 중요하냐며.

 

<홀린 영혼>의 주인공(벌써 이름도 까먹어 버렸다) 썰에서는 왠지 작고한 김소진 작가의 울프강이 연상됐다. 희대의 노가리꾼, 뻥쟁이이자 거짓말쟁이였던 주선의 행적은 어쩐지 작가의 초기작 <조동관 약전>의 똥깐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구전과 불확실한 기억만으로 전승되던 신화가 더 이상 유효하게 되지 않은, 어쩌면 전통적 내러티브 구조의 이야기가 실종된 유투브 세상이 세상의 관심을 집어 삼키기 전의 연대기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번에 성석제 선생이 짧은 소설을 발표했다고 하는데, 궁금하다. 선생의 글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이야기에 지나치게 자신을 매몰하고 있는 자아를 발견하고 놀랐다. 그렇게 격렬하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해서 몰입할 만한 그런 멋들어진 이야기였다는 증거이리라. 만족스러운 독서였다고 고백한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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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7-11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움에 독성이 있다고 하니 독버섯이 생각납니다.

레삭매냐 2020-07-12 08:49   좋아요 1 | URL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 대가
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성석제 선생은 글로 보여 주
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