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만찬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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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이스마일 카다레의 두 번째 책이다. 1963년에 발표된 그의 데뷔작 <죽은 군대의 장군>에 이어 2008년에 발표된 소설이 바로 <잘못된 만찬>이다. 불어로는 2009년에 나온 것 같은데, 이번에 소개된 책은 이 불어판을 원전으로 삼았다. 영어 제목은 <석조 도시의 함락> 정도라고나 할까.

 

소설의 공간적 배경 그러니까 돌로 지어진 알바니아와 그리스의 국경 도시 지로카스트라는 이스마일 카다레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스만 제국 지배시절의 흔적까지 담고 있는 지로카스트라에 일단의 독일군이 진입하면서 사건이 일어난다. 알바니아를 지배하던 이탈리아가 추축국 동맹에서 이탈하면서 독일군은 동맹군에서 폭압적인 지배자로 변신을 감행한다.

 

알바니아에는 새로운 지배자인 독일군에 대한 무력투쟁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를 비롯해서 왕정주의자에, 독일군과의 평화로운 관계설정을 원하는 민족주의자까지 복잡다단한 정치 지형을 가지고 있다. 독일군 기갑연대의 프리츠 폰 슈바베 대령이 도시로 진입하기 전, 명백한 경고장을 날리고 이에 무장 항독단체들 역시 저항에 나서라는 격문을 뿌리는 등 혼란 그 자체였다. 그리고 독일군 전위부대의 오토바이 척후병이 도시에 들어왔을 때, 레지스탕스에게 총격을 받는다. , 이제 지로카스트라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 그전에 카다레는 친절하게도 마을에는 두 명의 구라메토라는 솜씨 좋은 외과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킨다. 전자는 독일 유학파 출신 그리고 후자는 이탈리아에서 선진 의술을 배워와 지로카스트라 주민들에게 봉사해왔다. 그리고 프리츠 대령이 대구라메토의 대학 동창이었다는 점이 밝혀진다. 프리츠 대령은 알바니아 전통인 두카지니법을 배신하고 손님맞이법인 베사(신의)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탓을 하며, 정복자에 대한 저항을 이유로 인질을 잡아들일 것을 명령한다.

 

, 이제 가짜뉴스가 등장할 차례다. 대구라메토를 제외한 그 어느 누구도 그날 밤의 만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 만찬에 대한 억측이 난무할 충분한 계제의 상차림이 차려진 셈이다. 최근 목격한 미디어가 연출한 마녀사냥과 광기가 연상되는 장면이었다. 파렴치하게 나치와 협력했다는 전언부터 인질을 구출한 도시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등 그야말로 극과 극을 내닫는 복잡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대로 독일은 패전해서 결국 알바니아에서 조용하게 물러났다. 그전에 살짝 작가는 코소보와 차머리아까지 포함하는 대알바니아 민족주의의 부활을 경고하는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레이트 워 시절부터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린 발칸반도의 복잡다단한 역사성에 대한 대가의 예리한 지적이라고나 할까. 알바니아 공산주의 빨치산의 지휘관들이 세르비아 출신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전쟁이 끝나고 티토의 배신과 냉전이 시작되면서 알바니아는 이웃의 독재자가 드리운 철의 장막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지로카스트라의 짧은 혼란기가 진행된 다음, 다시금 망각 속에 잠자고 있던 예의 만찬이 다시 소환되었다. 공산주의 독재자 스탈린에 충성을 맹세하는 일단의 젊은 판사들이 주동이 되어 기억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오스만 제국 시절의 샤니샤 감옥으로 끌려온 대구라메토는 9년 전에 있었던 만찬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하라는 판사들의 심문에 직면한다. 그 와중에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는데 그건 바로 구라메토의 대학 동창이라는 프리츠 폰 슈바베 대령이 가짜라는 점이었다. 그는 1943916일보다 훨씬 전에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가 아는 프리츠 대령은 누구란 말인가? 정말 초대에 응한 죽은 손님이란 말인가. 그런 초자연적인 존재의 부상은 진실을 가리기 위한 작업에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황이야말로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더 놀라운 반전과 음모가 기다리고 있다.

 

이스마일 카다레 작가는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독자에게 난해한 질문을 던진다. 기록에 기반한 진실이라는 게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가. 고문과 협박에 못 이겨 자백한 진실을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과거사청산 과정에서 조작된 간첩사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과거 진실의 실체를 밝히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작가 나름의 고민이 담겨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카다레식 유머도 책을 읽는 재미중의 하나였는데, 당국이 거리의 맹인 시인 베힙이 체포되었을 때, 구경꾼들이 그 사실을 보고서도 자기들 눈을 믿지 못했더라는. 지로카스트라에는 광인로라는 길 이름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같은 동네에 살았던 스탈린에게 충성을 맹세한 알바니아 독재자 엔베르 호자에 대한 기발한 비판이었다. 오스만 제국 시절의 재판관들이 새로운 공산주의 시대를 맞아 다시 기용할 기회를 노렸다가 정중하게 거절당한 사연도 신선했다.

 

발칸반도의 소국 알바니아에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알바니아 현대사를 관통하는 카다레의 저술을 읽으면서 기억 혹은 다른 표현으로 역사에 대한 전쟁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10월의 쿳시의 달이었자면, 11월은 어쩌면 카다레의 달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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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eola 2019-11-07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냥반 같으니라구^^ 오늘 배송되어 오는데 벌써 다 읽어 본 기분이 ㅋㅋㅋ 며칠 후에 봐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