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모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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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페터 한트케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이 책을 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페터 한트케가 노벨문학상을 지난주에 수상했고 작가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좀비처럼 도서관으로 가서 그의 책들을 한 무더기 빌렸다. 다행히도 그의 책들은 분량이 적어서 읽는데 부담이 없었다.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이십대의 패기넘치는 청년 페터 한트케가 1966년 발표한 <관객모독>은 하나의 선언이고 도발이다. 기존의 연극이 어떠해야 한다는 모든 주장과 질서를 청년 한트케는 과감하게 파괴한다. 네 명의 배우가 등장한다고 하는데, 배우들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저 독자는 선언처럼 발표되는 내레이션을 따라갈 따름이다.

 

우리는 연극 무대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아마도 하나의 사건이 아닐까. 그런데 작가는 아무런 사건도 그리고 호기심도 가지지 말라고 선포한다. 내가 만약 관객이라면 이런 황당한 사태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기존의 매표, 극장까지 도착 그리고 암막이 올라간 다음 무언가 기대하는 일단의 과정을 훈련받은 관객들에게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라니.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 와중에 청년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유희를 마음껏 구사하고 관객을 농락한다. , 아무래도 적응이 잘되지 않는다. 그저 청년의 패기를 따라가는 것조차도 버거웠다고 고백해야지 싶다. 주체이면서 동시에 객체가 되어 버린 현대인의 심정을 대변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패전 20년이 지난 뒤 이제 바야흐로 유럽의 주인공으로 다시 부상하게 된 게르만 민족의 영혼에 대한 준열한 꾸짖음이라고 해석을 해야 할까?

 

어느 시점에서 느닷없이 관객은 준비된 욕설을 들어 먹는다. 아마 어느 누구도 장황하게 나열되는 대상화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오 마이 갓! 내가 도대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거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연극은 막을 내린다.

 

청년의 소설은 대단히 실험적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렇다. 그리고 나는 <관객모독>을 읽으면서 다음의 이미지들이 연상됐다. 연출에 있어 완벽을 추구했다는 스탠리 큐브릭, 영화에 코믹한 그리스 희곡 요소들을 도입한 우디 앨런의 <마이티 아프로디테> 그리고 마지막 라스 폰 트리에의 비극 <도그빌> 말이다. 내 마음 속에 발생한 상관관계를 설명하자면 또 한바닥 정도는 써야겠지. 한트케의 욕설 덕분인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문득 그냥 어느 문청이 써제낀 치기발랄한 문학이 비평가들의 능수능란한 비평 솜씨에 힘입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 번에는 <골키퍼>를 읽어봐야겠다.

 

[뱀다리] , 명백하게 이 리뷰는 노벨문학상 기념 나도 숟가락 얹기라고 자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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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0-14 1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숟가락 얹으러 준비(한트케 책 읽기)해야겠어요... ^^;;

레삭매냐 2019-10-14 19:44   좋아요 0 | URL
싸이러스 브로 고고씽~입니다.

stella.K 2019-10-14 1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을 읽으셨군요.
전 전에 사 놓은 책을 이번 기회에 읽으신 것도 아니고 도서관에서 빌리기까지!
정말 진지하고 진정한 독자이십니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시도 안 읽지만 희곡은 더더욱 안 읽지요.
더구나 이런 초현실적인 작품은...
노벨상 기념이면 어떻습니까?ㅋ

레삭매냐 2019-10-14 19:4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저도 아마 볼라뇨의 팬이 아니었다면 그의
시집은 읽지 않았을 겁니다...

페소아의 시집들도 샀는데 와 닿지가 않아
설라무네 짜비.

<관객모독> 읽고 나서 바로 <골키퍼>에
도전 중입니다.

Falstaff 2019-10-14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뱀다리가 진짜 재밌어요. ^^

레삭매냐 2019-10-15 10:11   좋아요 0 | URL
순수한 자백이지요...

노벨상 까면서도 또 궁금해서
엮이게 되는.

초딩 2019-10-19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싸고 얇고 올해 노벨상 수장자의 책이라 샀습니다. ㅎㅎ
독자 모독 당했어요

레삭매냐 2019-10-19 21:06   좋아요 0 | URL
저도 만약에 구입했다면 -

저자가 이 책을 발표할 당시 24세
라는 점을 고려하신다면...

북프리쿠키 2019-10-19 1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관객‘모독‘에 골키퍼‘불안‘에 소망없는 ‘불행‘까지 겪어본 바로 당분간 ‘긴 이별‘을 하고 싶네요^^;

레삭매냐 2019-10-19 21:16   좋아요 1 | URL
제가 읽고 있는 한트케의 저술에
따르면 <관객모독> <골키퍼> 같이
청년 시절에 쓴 작품과 <긴 이별>
처럼 장년기에 접어 들어 쓴 작품
은 좀 결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전자의 실험정신은 아무래도 지금
의 그것과는 다른 듯 하고...

좀 더 한트케를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북프리쿠키 2019-10-19 21:23   좋아요 1 | URL
네네 1970년대 이후 턴 해서 그런지 ㅎ 소망없는 불행부터는 좀 편해졌어요.
긴이별에대한 짧은편지는 텀을 두고 읽어볼려구요~
올가님도 만만치 않던데 저도 레삭님 따라갈께요 ㅎㅎ

coolcat329 2019-10-20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연극을 20년전 대학로에서 봤는데, 관객에게 물바가지를 뿌려서 그 물을 피하느라 긴장한 기억밖엔 없습니다. 공짜표라 본건데 더 이상 할말은 없네요ㅠㅠ

레삭매냐 2019-10-20 18:57   좋아요 0 | URL
아니 관객들에게 물을 멕이려고
하다니... 진짜 모독의 정수를
보여 주었나 봅니다 :>

책은 참, 한 숨만 나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