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달궁 모임에 다녀왔다.
언제나처럼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단골 마욤님이 나오시지 않아 쫌 아쉬웠다.
다른 동지들도 나오지 못하신 분들이 있어 아쉬웠고... 선수들이 모여야 모임이 더 재밌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을.
우리 독서 중독자들은 실컷 책 이야기와 주변에서 확성기로 핏발을 세워 대는 모 부대원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네. 여기가 과연 한국인가. 너무나 초현실적인 현실이 인지부조화되어 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제 우리의 타겟은 존 그레이 교수의 <꼭두각시의 영혼>이었다. 이 양반 영지주의론에 비판적인 것 같다가 어느새 현대는 영지주의의 승리였다는 말로 결론을 내는 바람에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기독교에서는 절대 이단으로 간주되는 그노시즘에 대해 좀 더 책을 읽어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날 읽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이야기도 신나게 했다. 참고 도서가 참으로 많다는 점이... 나는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을 추천했다가 어마무시한 분량 때문에 스스로 포기했다. 오이겐 루에의 <빛이 사라지는 시간>도 추천했다가 뻰찌... 나부터 읽다만 책을 마무리지어야지 싶다.

모임이 끝난 뒤, 피잣집으로 자리를 옮겨 2차전을 이어나갔다. 술과 피자로 배를 채우면서 신랄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예전에는 들쑥날쑥하고 책도 안 읽어 오던 색채남의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는 우리 달궁의 고정이 되었다.

8시가 못되어 조촐하게 모임을 끝내고 나서 나홀로 아름다운가게 종로책방을 찾았다. 집에 가는 길에 책이라도 한 권 사서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에. 원래는 알라딘 종로점을 가보려고 했지만 귀찮아서 바로 포기.

2만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데 과연 그 정도가 되는진 모르겠다. 다음은 내가 업어온 책들이다. 책의 회전이 빠른 느낌이 들었다. 알라딘 북플 친구인 폴스태프님이 추천해 주신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 있기에 냉큼 집어 들었다. 각권 3,000원 씩해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데려왔다. 컨디션도 굿.

내가 가장 먼저 집어 든 책은 바로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였다. 며칠 전 인스타에서 중고책으로 ‘층간소음’에 관한 책이냐 뭐 그런 문구를 보고 눈여겨 보고 있던 책인데 내 수중에 들어왔다. 물론 문동 버전으로 가지고 있지만 읽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드디어 읽어야 할 시간이 왔는가.
마지막으로 고른 책은 2018년 교유서가에서 처음으로 나온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였다. 이런 장르의 책은 내가 좋아하는 책인데. 그냥 책 제목과 출판사만 보고 사들였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내 취향에 아주 딱 들어맞는 이야기더라. 전쟁과 야만 그리고 반전에 대한 컨텐츠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아, 거페이 작가의 절판된 <복사꽃 피는 날들>은 작년엔가 김용민 씨의 방송을 듣고 교보문고에서 새책으로 샀는데(물론 읽지 못했다) 억울하다 억울해. 이렇게 중고로 만나게 될 줄 알았으면 다른 책을 사는 거였는데 캬오~~~ 칼럼 매캔의 <댄서>도 있더라. 중고서점에서 이런 레어 아이템들을 기대하고 가는 게 아니었나.
금요일날 읽은 쥴퓨 리반엘리의 <살모사의 눈부심>의 후광 덕분인지 파묵 선생의 <내 이름은 빨강>도 아주 쑥쑥 읽히는 기분이다. 사마온공의 <자치통감>도 마저 읽어야 하는데. 내 전공파트라고 할 수 있는 중국사에 관한 이야기라 그런지 술술 페이지가 넘어간다. 마치 예전에 학습한 내용을 다시 복습하는 그런 기분이라고나 할까나. 파묵 샘의 첫 책이 마음에 들면 어쩌면 또 책을 일단 사들이고 전작 도전한다고 떠들어 댈 지도 모르겠다. 책이나 더 읽다가 자야겠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