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블로그 이웃분의 집에서 독서 결과를 엑셀로 정리하는 파일을 하나 퍼왔다. 예전에는 싸이월드에서 주로 했었는데, 옛 생각이 나서 간만에 한 번 해봤다. 세상 편해졌다 정말. 엑셀로 이런 작업도 다하고.
지난 달에는 모두 27권의 책을 읽었다. 11월까지 186권을 읽어서 대망의 200권을 채우기 위해 월초에 엄청 달렸다. 그래서 얍삽하게도 주로 얇아서 금방금방 읽을 수 있는 책들로 읽다가 목표 달성이 눈앞에 이르자 그 다음부터는 주로 서가 책파먹기를 실시했다.
새해에도 그렇지만 서가에 사두기만 하고 읽지 않은 책들을 좀 읽어 보련다. 당장, 반다시 읽어야 하는 신간이 없는 이상(그리고 도서관 희망도서를 이용하기로 했다, 신간은 한 달에 두 권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좀 여유로운 독서를 해보자~라고 마음 먹었으나 그게 내 뜻대로 될 리가 없지. 어쨌든 조바심 내지 말고, 되는 대로 독서의 미학을 실천해 보자고 다짐해 본다.
<나의 월간 베스트>
1. 클링조르를 찾아서 / 호르헤 볼피
2.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 / 에마뉘엘 제라르와 브루스 쿠클릭
3. 반역의 책 / 조너선 스펜스
역시 지난 달에 읽은 책 중에 최고는 메히코 출신 작가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였다. 분량도 대박이지만 내용도 최고였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즈음해서 원자의 비밀 그리고 미래의 세계를 지배하게 될 핵폭탄 개발에 나선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의 경쟁에 얽힌 이야기들이 종횡무진하게 전개되는 과정에 그만 매료되어 버렸다. 나같은 과학에 문외한도 쉽게 빠져들 만한 이야기였다. 로베르토 볼라뇨 덕분에 알게 된 메히코 작가 호르헤 볼피의 다른 책인 <세계 아닌 세계>는 내가 올해 처음으로 산 책이다. 절판되어 온라인 중고서점의 개인판매하시는 분에게 구입했다. 어제 도착했는데 일단 집에 고이 모셔 두었다. 이게 또 분량이 적지 않은 지라 주변 정리를 좀 하고 시작해야지 싶다.
에마뉘엘 제라르와 브루스 쿠클릭이 저술한 <누가 루뭄바를 죽였는가>도 만족할 만한 역작이었다. 아프리카 중앙의 콩고에서 식민지 탈출을 선언하면서 자주독립의 기수였던 젊은 정치인이 세계열강의 무관심 속에 어떻게 죽어갔는가는 정말 슬프고 비참한 스토리였다. 또 한편으로는 짐바브웨의 독립투사 로버트 무가베가 타락하는 걸 보고, 과연 파트리스 루뭄바가 살아서 국가권력을 행사했어도 무가베처럼 타락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책인 <블라드>와 <아우라>도 읽었다. <아우라>는 결국 리뷰를 쓰지 못하고 반납하게 됐다. 나중에라도 리뷰를 쓰기 위해서라도 재독해야지 싶다.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반역의 책>은 결국 8년 만에 읽고야 말았다. 언젠가 가지고 있으면 이렇게 읽게 될 것이다. 제 아무리 지상 최대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황제라도 하더라도, 민중의 뜻에 반하는 언론 통제에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역사가 증명해 주는 실질적인 예라고 해야 할까. 옹정제 황위 계승에 있어 소문들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황제가 술고래에 황음무도하다는 이야기를 제압하기 위해 옹정제는 유언비어 제조와 역모를 주모했던 시골 출신 쩡징을 주벌하지 않고 오히려 황은을 칭송하기 위한 선전 도구로 판단하고 <대의각미록>을 대대적으로 출판해서 전국에 유통시킨다. 그의 뒤를 이은 건륭제는 반대로 철저한 사상통제에 나서게 되는, 역설적으로 <대의각미록>의 내용이 왜곡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역사란 언제나 그렇듯 위정자들의 뜻과 반대로 흘러가기 마련이 아니던가.
그나저나 새해에는 의무와 강박적 책읽기에서 탈피해서 좀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읽고 싶다. 문제는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흘러가는 독서 편력이 문제겠지만. 이상 끝.

뽀너스, 최근 회사 근처에 생긴 카페 레이크 라떼...
누가 한 겨울에 아이스 커피를 마시나 싶었는데
내가 그 짓을 하고 있었다. 내가 돌아이였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