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 젊은 괴짜 곤충학자의 유쾌한 자력갱생 인생 구출 대작전
마에노 울드 고타로 지음, 김소연 옮김 / 해나무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어려서 아마 메뚜기를 잡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메뚜기 잡기를 아주 좋아한다. 포충망을 이용해서 잡는 건 일도 아니고, 손으로 잡는 것도 문제 없다. 방아깨비, 따닥개비, 팥중이, 송장메뚜기 등등... 내 손에 안 잡혀 본 녀석들이 아마 없지 않나 싶다. 추석 즈음에 증조할아버지 산소에 찾을 때가 연중 가장 즐거운 시간 중의 하나였다. 지천에 널린 메뚜기를 잡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시흥 갯벌생태공원에 갔을 적에도 메뚜기가 많아 몇 마리씩 잡으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아, 참고로 자고로 메뚜기가 많은 곳에는 천적 개구리가. 그리고 개구리가 많은 곳에는 역시나 뱀돌이가 우글우글대니 참조하시길.

 

나 역시 <파브르 곤충기>를 통해 곤충의 세계에 입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나보다 고수가 이웃나라 일본에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에노 울드 고타로, 사막메뚜기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작가 분이시다. 아키타 출신 고타로 씨는 파브르 선생을 동경하다 못해 아예 생업을 곤충학 연구로 정하고 삶을 매진해왔다. 일본에 사막메뚜기가 살지 않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고타로 선생은 어느 필드를 선택해서 실험실을 박차고 뛰어나갔을까? 그의 목적지는 서아프리카 끝에 위치한 모리타니였다. 말로만 듣던 누악쇼트라는 지명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리오.

 

해외연구원 자격으로 지원을 받아 바바 소장님의 메뚜기연구소에 안착하는데 성공한 고타로 박사는 바로 메뚜기 연구에 돌입한다. 문제는 아프리카 대륙의 대재앙으로 알려진 메뚜기 대군이 항상 출몰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연구와 관찰에 따르면 메뚜기 대군은 보통 기록적인 비가 온 뒤에 출몰한다고 한다. 이전에 독일의 대규모 연구단도 메뚜기 연구를 위해 오랫동안 모리타니에 머물렀지만 대군의 실체를 보지는 못하고 성과 없이 귀국했다나. 그런데 우리의 아마추어 박사님에게 그런 횡재가 주어질지 자못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참 회교국가인 모리타니 입국에 앞서 부러 준비한 소량의 비어들이 압수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사람 사는 곳에 술이 없을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지. 사막운전의 베테랑이자 영어 통역까지 할 수 있는 티자니는 고타로 박사의 최상의 파트너였다. 그와 함께 사막을 누비며 몇 안되는 메뚜기를 잡고 환호하는 모습을 비롯해서, 희귀한 사막메뚜기 대신해서 독메뚜기나 거저리 연구에 집중하는 장면도 재밌게 읽었다.

 

또 한편으로는 박사후 과정 그리고 2년 간의 유급연구생활이 끝난 뒤에 불안감에 대한 저자의 고민에서는 요즘 젊은 세대의 최대 고민거리는 취업에 대한 걱정근심도 엿볼 수가 있었다. 수많은 박사들이 넘쳐 나는 가운데, 논문 발표를 바탕으로 해서 제한된 연구직에 응모하려는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하다고 고타로 박사님이 친절하게도 알려 주신다. 우리의 메뚜기 박사님도 취업전선에서 예외는 아니어서 아프리카 대륙을 시시때때로 습격하는 메뚜기 대군의 습성을 연구해서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방제작업을 해서 인류에 공헌하겠다는 심대한 계획의 실현이 과연 자신의 안정적인 일자리 찾기와 매치가 되는지에 대해 지속적인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그 외에도 모리타니 체류 중 어린 시절 자신의 우상이었던 프로방스 지역의 세리낭 마을에 위치한 성지 파르브 생가를 찾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같다고 해야 할까. 저자의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모리타니에 좀 더 체류하기 위해서 무수입자 신분을 탈출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기도 한다. 그래서 고타로 박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메뚜기 연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인 홍보전에 나서게 된다. 몇 명 방문하지 않는 블로그를 개설하고, 비즈니스맨들이 구독한다는 <프레지던트>에 은인 이시이 씨의 권고로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토대학에서 지원하는 대망의 하쿠비 프로젝트에도 응모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낸다. 게다가 모리타니에서는 고대해 마지 않던 대망의 메뚜기 대군이 출현해서 언젠가 메뚜기떼에게 잡아 먹히겠다는 신의 형벌프로젝트도 가동한다. 물론 초록색 쫀쫀이를 입은 고타로 박사님이 모리타니에 사는 사막메뚜기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멋잇감으로 보이지 않아, 허무하게도 신의 형벌은 내리지 않았다. 아 참, 그전에 한밤중에 메뚜기 유충 관찰에 나섰다가 불시에 전갈에게 물린 에피소드도 있었지.

 

사막 현장르포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는 생생한 현장의 리얼리티가 담긴 마에노 울드 고타로 박사의 모리타니 사막메뚜기 연구체험기다. 동시에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을 위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고타로 박사님에게는 조금 미안한 표현이지만) 또라이들이 진보를 이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웃 일본 과학계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과 전혀 상관없이 보이는 모리타니의 메뚜기 방제사업에 자금지원을 하고, 누악쇼트 부근에 수산물가공공장을 세워 일본산 문어와 식감이 비슷한 모리타니산 문어를 일본의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즐긴다는 고타로 박사의 말이 지나가는 말로 들리지 않았다. 고타로 박사의 메뚜기 연구를 응원한다. 그의 블로그도 한 번 보고 싶은데 일본어를 할 줄 모르니 안되겠지.

 

어쩌면 이 책이 내가 2018년에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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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30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메뚜기 매니아시네요~나비박사 석주영, 메뚜기박사 레삭매냐님 ㅎㅎ

stella.K 2018-12-30 18:10   좋아요 1 | URL
석주명으로 알고 있는데요...

카알벨루치 2018-12-30 19:09   좋아요 0 | URL
제가 계속 석주명을 석주영으로 기억하네여 스텔라님 오셔서 인제 안 헷갈릴 듯 합니다 무서버 ㅜㅜ

stella.K 2018-12-30 19:22   좋아요 1 | URL
아니 제가 뭘 어쨌다고...
근데 전 왜 이렇게 재밌을까요?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12-30 19:29   좋아요 1 | URL
원래 놀리면 놀리는 자는 잼나고 놀리킴을 당하는 자는 소송 들어갑니다 ㅋ

레삭매냐 2018-12-30 20:23   좋아요 1 | URL
매니아급까지는 아니구, 파브르 곤충기를
보고 곤충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시절이
떠올라서 아주 유쾌하게 읽었답니다.

syo 2018-12-30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올해도 레삭매냐님 리뷰 덕에 아무 망설임 없이 몇 권의 책을 손에 쥐었습니다. 감사합니다ㅎㅎㅎㅎ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2019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레삭매냐 2018-12-30 20:24   좋아요 2 | URL
시오님도 한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

알라딘 북플을 통해 알게 된 많은 분들
과의 상호작용으로 저도 모르게 더 달리
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시오님
에게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지만요 ㅋㅋ

그렇게혜윰 2018-12-30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파격적이에요 ㅎㅎㅎㅎ

레삭매냐 2018-12-30 20:27   좋아요 0 | URL
‘신의 형벌‘이라 해서 메뚜기 떼에게
먹히는 게 꿈이었다고 하네요...

정말 일본에는 기인들이 많은 것 같
습니다. 그게 한 편으로는 국가발전
의 원동력이기도 하구요.

저희는 너무 순치되서 그런 또라이
정신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12-31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산매냐님의 깊이 있는 독서로부터 읽을 과제를 많이 부여받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레삭매냐 2019-01-01 16:19   좋아요 1 | URL
부족한 닝겡의 독서를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무술년에도 열심으로 읽겠습니다.

겨울호랑이님의 독서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