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보헤미안 랩소디 / 브라이언 싱어


감상일 : 2018년 12월 15일 롯데시네마 아시아드


입소문이 자자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모두 아시다시피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이 1975년 발표한 네 번째 앨범 <오페라의 밤>에 수록된 곡으로 퀸을 상징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늦게 상영관에 들어가서 내가 보기 시작한 부분은 퀸이 밴드로 결성되어 소규모 클럽을 전전하며 틀린 가사로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를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히스로 공항에서 짐꾼으로 일하던 대학생 프레디 머큐리는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파르시 집안 출신이었다. 파키스탄 출신이라고 하는데, 파르시라 특이하지 않은가. 나중에 밝혀지게 되는 그의 성적 정체성 만큼이나 복잡한 연대기의 시작이 아닐 수 없다.


그 시절 만난 메리 오스틴은 프레디의 평생의 연인이었다. 나중에 밴드가 뜨고 나서 반지를 주면서 청혼을 하는데, 결혼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사랑을 나누고, 시대의 명곡이 되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멜로디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참고로 내가 처음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었을 적에는 그 노래는 금지곡이었다. 친구네 집에 가서 어디선가 튀어나온 빽판의 첫 번째 곡으로 실린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었을 때의 감동이란. 그 때 이미 헤비메틀에 심취해 있어서 어지간한 로큰롤은 취급도 안했었는데 퀸의 노래는 확실히 클라스가 틀렸다. 그리고 바로 퀸의 팬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다시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천체 물리학자를 꿈꾸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까탈스러운 여왕(hysterical queen)을 뒷받침하는 re-write의 대가였다. 사사건건 프레디 머큐리와 부딪히는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치과 의사가 될 지도 모를 청년이었고, 조용하지만 팀에서 개그맨 역할을 맡은 베이스주자 존 디콘은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프레디가 엘튼 존의 매니저를 맡고 있던 미래의 자신들의 매니저와 만나면서 한 말이 인상적이다. 사회부적응자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 거라고 했던가. 투어에 꼭 필요한 밴을 팔아 만든 데모 앨범이 EMI 관계자의 눈에 띄면서 그들은 비로소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초창기 퀸의 음악적 특성은 실험(experimental)이라고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밤을 세워 가며 갖가지 실험성 짙은 창조성을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을 브라이언 싱어는 기가 막힌 카메라 워크로 잡아낸다. 자, 다음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등장할 차례다. 당시 디스코가 판을 치던 음악계의 히트 공식(formula)은 3분 이내의 짧고 강렬한 노래를 만들어 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퀸의 멤버들이 제시한 오페라적 요소를 가미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 두 배나 되는 6분에 달라는 음악이 아니던가. 자신들의 음악을 고집하겠다는 퀸의 멤버들과 EMI 관계자들의 사투는 결국 퀸의 승리로 끝이 났고, 희대의 명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갈릴레오” 파트는 목이 찢어라 하이톤을 반복하는 로저 테일러의 작품이었다는 걸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여느 밴드가 그렇듯, 완성작을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박터지는 갈등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밴드의 엄청난 성공은 필연적으로 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법이다. 우선 평생의 사랑이라던 메리와의 관계는 프레디가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계속되는 앨범과 투어의 엄청난 성공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세속적 부를 거머 쥐었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주변에 그가 원하는 진정한 친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폴 같은 날파리(fruitflies)들만 들끓을 뿐. 설상가상으로 밴드 내의 불화도 한 몫했다. 자신이 밴드를 대표한다는 프레디의 생각에 다른 밴드 멤버들은 질리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관중들을 음악에 참여 시켜 보자는 브라이언 메이의 ‘꿍꿍따’ 아이디어로 시작된 "We Will Rock You"나 존 디컨의 환상적인 베이스 리프가 돋보이는 “Another One Bites the Dust" 같은 명곡들을 배출해냈다. 영화에서 마약을 의미하는 "the dust"를 흙이라고 번역하는 건 정말 웃겼다.


어쨌든 그렇게 정상에서 선 프레디 머큐리의 추락은 시작된다. 엄청난 돈을 들여 파티를 열고 화려한 시간들을 보내지만, 훗날 그를 배신하게 되는 폴의 말마따나 그는 그저 외로운 파키스탄 소년(Paki boy)였을 따름이다. 파티 서버로 일하던 짐 허튼이라는 아저씨에게 집적거렸다가 봉변을 당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그와의 파트너 관계는 프레디가 에이즈로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지 아마. 록 허드슨에 이어 치명적인 에이즈로 죽은 유명인사로 아마도 프레디 머큐리를 빼놓을 수 없으리라. 밴드와 거의 해체 수준까지 이르렀던 솔로 앨범 제작을 하면서 프레디의 무분별한 성관계에 대한 폭로는 비열한 폴이 방송 인터뷰로 다 까발렸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영국의 한다하는 기레기들이 총출동해서 퀸의 새로운 앨범 발표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는 장면도 최고였다. 브라이언 메이가 거듭해서 앨범에 대해서 질문해 달라는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추문에만 열중하는 기레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언론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물론 대중이 원하는 호기심을 충족시킨다는 기능도 있겠지만, 본질보다 가십에 열광하는 대중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지 않았나 싶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1985년 7월 13일, 밥 겔도프가 기획한 아프리카 기아난민을 돕자는 라이드 에이드 공연이었다. 런던의 웸블리 구장과 필라델피아의 JFK 스타디움 두 곳에서 열린 세계의 공연에 퀸도 당연히 초대 되었지만, 폴이란 놈이 중간에서 농간을 부려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메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고. 어쨌든 회심한 프레디가 그동안 소원했던 멤버들에게 사과하고(초장부터 쎄게 나간다), 자선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합주 연습을 하던 중 프레디 머큐리는 밴드 멤버들에게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린다. 물론 이건 사실과 다른 부분이다.


영화가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마지막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끝낸 건 정말 탁월한 엔딩이었다. 그 이후는 추락의 연속이니 가장 강렬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밴드에 대한 에피타를 마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 중에 “I don't wanna die, I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가 왜 그렇게 와 닿는지 모르겠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뱀다리]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은 라디 말렉의 키가 실제 프레디 머큐리의 키와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서 좀 아쉬웠다. <라이브 에이드> 실황 가운데, 프레디가 연주하던 피아노 위의 펩시 콜라(처음에는 단순한 PPL인 줄 알았다)와 피아노 연주를 마친 프레디에게 스탭에 무선 마이크를 건네 주는 장면 같은 디테일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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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ulemono 2018-12-17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곡 제목이 빠져 있네요.

레삭매냐 2018-12-17 19:43   좋아요 0 | URL
제가 불초한 탓입니다...

2018-12-17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2-17 19:45   좋아요 1 | URL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조지 마이클의 경우를
보면 또 꼭 그런 게 아닌 듯 합니다.

퀸도 전성기를 지나면서는 좋은 곡들이 예전
같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영감이 마구 솟아나는 특정한 시기가 있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봅니다.

cyrus 2018-12-17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와 심장을 즐겁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몇 년 후에 보랩처럼 어떤 팝스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나온다면 대박날 수 있을까요? 보랩의 성공이 대단해서 아무리 뛰어난 팝의 전설을 다룬 영화라고 해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레삭매냐 2018-12-17 19:46   좋아요 0 | URL
다음 주자는 비틀즈나 혹은 롤링 스톤즈가
되지 않을까요?

전 개인적으로 스톤즈를 더 좋아하지만
믹 재거를 주인공으로 한 롤링 스톤즈 영화
가 개봉한다면 아마 보랩 정도의 인기는 끌
지 못할 듯 합니다.

아무래도 시대정신 혹은 타이밍의 문제가 아
닐까 싶네요.

stella.K 2018-12-17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년 전까지 만해도 프레디 머큐리에 관한 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고샵에 팔았다는 거 아닙니까?
영화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까지 이끌어낸 마당에
제가 그런 시대착오를 범했습니다.ㅠㅠ
빨리 봐야할 텐데 시간 끌다 나중에 VOD로 보는
시대착오를 또 범할지도 모릅니다.ㅠㅋㅋ

레삭매냐 2018-12-17 19:47   좋아요 2 | URL
오호 통재라 ~~~

보랩이 이렇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

제가 관람한 곳은 떼창하는 곳이 아니라
그런지 다들 조용하게 관람하더군요.

마마~! 하면서 막 따라 부르고 그러면
정말 라이브 콘서트를 방불케 하지 않았
을까 싶네요 ㅋㅋ

stella.K 2018-12-18 12:33   좋아요 0 | URL
마마~! ㅋㅋㅋㅋ
그거하고 갈릴레오 하면 완전 흥분의 도가니...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