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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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르케스의 신간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가 도착했고, 단숨에 다 읽어 버렸다. 다음 주자는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이 될 것이다. 이미 책은 준비되어 있다. 읽기 위한 넉넉한 시간이 필요할 뿐.

 

왜 마르케스는 그렇게 집요하게 자신의 책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를 빼놓지 않고 다루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죽음이 등장한다. 마을의 트럼펫 연주자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몸단장을 하는 대령. 트럼펫 연주자의 자연사는 마을에 수년 만에 발생한 일대 사건이라는 점에서 특이점을 지닌다. 그만큼 아무 일 없이 죽기가 어렵다는 말일까. 한편, 소설의 화자인 전직 대령은 참전 군인 연금을 기다린다. 그가 직면한 지독한 가난의 근원을 찾아보자. 지난 15년 간 대령은 금요일마다 자신에게 도착할 군인 연금을 기다린다. 아내의 닦달을 이기지 못한 대령은 변호사를 교체하는 강수도 마다하지 않지만, 언제 연금이 도착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변호사 말대로 수백 년이 걸릴 지도 모르겠다.

 

대령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가난의 이유 중의 하나는 아들 아구스틴의 죽음도 한몫한다. 아마 재단사로 일하던 아들이 살아있는 동안, 끼니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겠지. 아들은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비밀 전단을 투계장에서 유포한다는 이유로 투계장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유일한 아들의 죽음을 대령 부부는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아들이 남긴 수탉이 부부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점은 역설에 가깝다. 사람도 살기 위해서는 먹을 게 필요하지만, 1월 투계장에 나설 수탉 역시 원기 회복을 위해선 충분한 옥수수가 필요하다. 이놈의 집구석에는 부족한 것 투성이다. 대령은 바닥난 커피 깡통을 박박 긁어 대지만, 영혼을 달래줄 한 줌의 커피도 없는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그나마 대령에게 호의를 보여주는 이는 의사 뿐이다. 콤파드레 사바스는 목에 뱀을 두르고 약을 팔던 약장사다. 대령 부부는 팔아서 돈이 될만한 것은 이미 모두 팔아 치웠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대령의 아내는 결혼반지를 그리고 대령의 마지막 존엄을 상징하는 수탉마저 900페소에 협잡꾼 사바스에게 팔려고 한다. 가난에 굴복해서 수탉을 팔고 연금이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 보자는 아내의 제안에 대령을 거의 굴복할 뻔한다. 하지만, 수탉이 상징하는 건 단순하게 미래의 돈벌이 뿐이 아니다. 대령과 마을 사람들을 대표하는 존엄으로 대치할 수 있는 그 무언가란 말이다. 바로 여기에 소설에서 다루는 결정적 갈등이 분출한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아내의 주장과 서서 죽더라도 존엄마저 내팽개칠 수 없다는 대령의 목소리... 나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아마 어떻게 해서든 그전에 세상과 타협해서 그런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56년 10월이다. 대령이 의사에게 빌려 읽는 신문의 국제란을 보면 수에즈 위기에 대한 나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소설에서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건은 콜롬비아의 천일전쟁이다. 대령은 자유당 게릴라 소속으로 내전에 참전했던 것 같다. 정부는 대령에게 군인 연금을 약속했지만 대령의 가난을 한 방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로또 같은 연금은 결코 도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착하지 않는 연금에 대한 기다림은 대령의 일상이 되었다. 아들 아구스틴의 죽음과 가난이 가져다 준 곤궁함은 대령과 아내에게 정신적 고통을 의미한다. 천식에 시달리는 아내의 질병과 변비로 고생하는 대령에게 육체적 고통도 피해갈 수가 없다. 연금이라는 형태의 구원의 손길이 도착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아구스틴이 남긴 수탉이 투계판에서 연전연승해서 소득을 가져다주지 않는 이상 대령에게 고난의 행군을 멈출 다른 방법은 전혀 없어 보인다.

 

콜롬비아 정부가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대령의 배를 곯리고 자존감을 바닥으로 추락시킨다면, 검열과 독재는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계엄 아래 출몰해서 사람들의 단속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일상이 되었다. 도대체 비밀 전단에 담긴 내용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총으로 벌집으로 만들 지경이라는 걸까. 공포의 시대를 경험해 보지 못한 독자로서는 미지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대령에게 유이하게 희망으로 작동하는 연금과 수탉 중에 개인적으로 수탉의 안위가 더 걱정되었다. 사바스에게 팔리기 전에 혹시 수탉이 덜컥 죽기라도 한다면, 또는 동네 꼬마들이 수탉을 잡아다가 치킨 수프라도 만드는 건 아닌가하는 조바심이 일 정도다. 물론 그 정도로 마르케스가 야박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희극과 비극의 변주는 교차되면서 결말로 치닫는다. 앞으로 무얼 먹고 사냐는 아내에게 대령이 마지막으로 던지는 대사는 최고였다.

 

오래 전 종서 스타일로 번역이 되었을 때,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외에도 다른 짧은 소설들이 들어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단독으로 출간되면서 번역을 맡은 송병선 교수님의 자세한 해설을 달고 다시 태어난 모양이다. 마르케스의 단편 중에서 최고라는 평을 듣는 이 소설을 너무 허겁지겁 씹어 먹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사실 100쪽도 안되는 분량이라 더 자시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일단 첫 번째 독서는 요렇게 마무리짓고 나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더 읽는 것으로.


[뱀다리] 소설에서 대령은 10월 타령을 자꾸만 하는데, 알고 보니 천일전쟁의 발발일이 1899년 10월이었다. 마르케스 선생, 자기 나라만 알 수 있는 걸 소설에 써먹으면 어떡하라는 거요 그래. 불친절하시기도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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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11-19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이 제목 낯설지 않다 했는데... 예전에 다른 버전으로 읽은 것 같은. 그런데 종서 스타일은 어떤 스타일인가요? 락 스타일? 긴머리 스타일? (농담입니당.ㅋㅋㅋ)

레삭매냐 2018-11-19 17:57   좋아요 1 | URL
아주 금방 읽습니다... 분량이 너무 적네요 -
센스쟁이 같으니라구 ~ ㅋㅋ

목나무 2018-11-19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에서부터 확 끌리네요.
덕분에 마르케스를 읽고싶은 마음이 불끈합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8-11-19 19:1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시간을 들여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너무 급하게 읽은 느낌이어서요.

일단 마르케스의 책들을 섭렵한 다음
에 다시 돌아와서 읽는 것으로.

Forgettable. 2018-11-19 19: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편집도 정말 좋은데 한국엔 번역이 안되어있거나 너무 오래된 것 뿐이더라구요. 전 영어판으로 읽었지만 스페인어판으로도 이제 도전하려구요. 그러고보니 저도 전작하고 번역 안된 건 영어로도 찾아 읽고 원어의 맛을 느끼기 위해 스페인어도 배웠는데 정작 목적이었던 마르케스 원서 읽기는 등한시하고 있었네요. 전작하시는 분 만나 반가워 덧글 답니다. 쭉쭉 백년고독까지 포기하지 마시고 나가주세요!

레삭매냐 2018-11-19 20:24   좋아요 0 | URL
일단 지금 막 읽기 시작한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읽은 다음에,
<콜레라 시대의 사랑> 그리고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마무리하면 될 것
같네요 일단은.

대단하십니다, 영어는 물론이고 스페
인어 원서까지 !!!

당장 읽어야 하는 책들이 읽어서 일단
<콜레라>와 <백년>은 내년에 읽는
것으로 할라구요.

Falstaff 2018-11-21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에 읽으실 노벨라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추억이 슬프다는 뜻인지, 창녀들이 슬프다는 뜻인지 막 헷갈렸던 적이 있습지요. ^^
매냐님은 왜 별 하나를 뺐을까, 지금 막 궁리중입니다. 어차피 읽을 거 같기는 합니다만.

레삭매냐 2018-11-21 14:23   좋아요 1 | URL
분량이 너무 사악해서요 ㅠㅠ
게다가 해설을 엄청나게 달아서 분량을
늘린 의도가 너무 빤하게 보여서 별
한 개 뺐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11-22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언제 쓰셨어요? 제가 알라딘 출첵은 자주하는데 레샥매냐님 이거 쓴거 보고 깜놀! 이 책 지금 도착해서 검색해보니 ㅎㅎㅎㅎ굿뜨!

레삭매냐 2018-11-22 16:56   좋아요 1 | URL
지난 주말에 주문해서 월요일날 받아서
바로 읽고 나서, 일필휘지 아니 날림
으로 리뷰 작성했습니다만 ㅋㅋ

뒷북소녀 2018-11-28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100쪽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분량에 비해 해설이 너무 길어서... 깜놀했어요.^^

레삭매냐 2018-11-28 13:2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94쪽 내고서 만원
받는 게 미안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싸이러스님에 의하면 그전에 나온
판본에는 다른 단편들도 좀 섞어찌개
로 실려 있다고 하던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