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의미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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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로맹 가리를 읽으려고 시작하는 독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로맹 가리가 죽기 전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된 <내 삶의 의미>는 작가이자 레지스탕스 전쟁영웅, 외교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를 아우르는 로맹 가리 인생 전부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깔끔한 모둠회 같은 책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로맹 가리는 할례 받은 유대인 출신으로, 러시아-폴란드-프랑스 그리고 미국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주변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최근에 귀화한 프랑스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보르 항공학교에서 장교 임관을 받지 못하고 하사관이 되어 어머니 니나가 기다리는 니스로 돌아올 때의 열패감은 진짜 대단했다. 최근 월드컵에서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가 우승을 차지했다는 점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이웃 독일은 외국인 혐오주의, 특히 무슬림 터키 출신 외질의 국가대표직 반납을 두고 소음이 일지 않았던가. 반세기도 더 지난 후에도 여전히 통합의 문제가 이슈가 되는 유럽의 오늘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짧은 인터뷰 집을 통해 로맹 가리는 자신의 신화를 때로는 인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정하기도 한다. 우선 전자의 경우에는 <하늘의 뿌리>에서 프랑스 최초의 생태주의 작가로 보여준 코끼리 보호 선봉에 섰던 경력을 자랑한다. 로맹 가리 인생의 초반부에 그 누구보다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 주었던 어머니 니나의 영향력 자장 아래, 절대 여자의 돈을 받지 말라던 정언명령대로 파리 유학 시절 한 때 타락의 길로 들어설 뻔 했던 경험도 숨기지 않는다. 와인의 나라 후예답게 술고래라는 별명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평소부터 알코올을 멀리했다고 하는데, 왜 나같은 얼치기 독자는 술고래 작가라는 이미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로맹 가리에게 자유프랑스군의 지도자 드골 장군은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주입한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미지였다. 앙드레 말로를 따라 스페인 내전에도 참전했었고 아비시니아 전쟁에도 참전했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아쉽게도 이번 인터뷰집에서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도미니크 보나가 썼다는 로맹 전기를 한 번 읽어야 하나 싶다. 어쩌면 로맹 가리 읽기의 완성은 그의 평전으로 끝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악전고투 끝에 다 읽은 <새벽의 약속> 덕분에 인터뷰 대담집 읽기는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지, 로맹 가리는 이때 이런 고민들을 했었지.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저자의 일생을 돌아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또 어떤 미진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새롭게 알게 된 정보들도 많았다. 특히 어머니의 소망 대로 프랑스 대사 혹은 국가를 대표하는 외무장관이 되지는 못했지만(후보에까지 거론되었다고 한다) 불가리아 대사관 서기관, 유엔 대표부 대변인, 볼리비아 대리공사 그리고 훗날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이루게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로스앤젤레스 총영사에 이르는 다양한 경력의 나열이 경이롭게 펼쳐진다.

 

연상의 아내 진 세버그와의 만남, 그리고 할리우드 판에 뛰어 들어 작가답게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아내를 주인공 삼아 만든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도 있다고 했던가. 연출자로서는 혹평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해당 영화를 찾아 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프랑스 내의 혹평대로 영화 초반부부터 너무 과다한 노출과 폭행 장면이 부담스럽더라. 그런데 왜 나중에 진 세버그는 주인공으로 보이는 남자와 바닷가를 거닐며 바닷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 걸까. 대충 봐서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영화적 재미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지상 최대의 작전>의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가하고, 요즘으로 치면 블록버스터 영화에 해당하는 <클레오파트라>의 주인공 카이사르 역으로 캐스팅 될 뻔 하기도 한 할리우드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히 흥미롭다. 실버스크린의 매력으로 할리우드의 부유한 제작자들은 그야말로 로맹 가리를 똥개 부리듯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들의 철저한 오판이었다. 죽는 날까지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바람둥이 작가는 길들여지지 않는 “흰 개”였을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로맹 가리는 자기가 사는 동안 유일한 관심사는 바로 여성, 여성성이었다고 고백한다. 어쩌면 그건 자신의 성공을 유일한 인생의 목표로 삼은 어머니 니나 카체프의 바람에서 기원한 게 아니었을까. 자신의 아들이 모든 여성의 영원한 연인이 되길 원했던 어머니의 소원대로 레지스탕스, 작가, 외교관, 전쟁영웅, 영화제작자 그야말로 남자라면 원하는 모든 걸 이룬 사람이 된 아들은 여성성에 대한 사랑을 모토로 해서 작가 생활에 뛰어들었다. 로맹 가리의 그런 경향은 나이가 들고 작가로서 원숙해질수록 동경을 넘어 집착에까지 이르렀던 게 아닐까 싶다.

 

모든 시대에 기존의 작가들은 다시 읽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처음이지만, 그의 작품들을 섭렵하면서 로맹 가리를 재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모든 작가들이 그렇듯 범작도 있고, 또 예상을 뛰어 넘는 수작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네 삶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그래서 로맹 가리의 작품들이 더 매력적이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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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4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

레삭매냐 2018-07-24 14:25   좋아요 1 | URL
열심으로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9권 남았네요.

카알벨루치 2018-07-24 14:35   좋아요 0 | URL
화이팅 레삭매냐님~

목나무 2018-07-24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로맹 가리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읽어보면 좋겠다는 정보 잘 챙겼습니다. ^^

레삭매냐 2018-07-24 17:39   좋아요 0 | URL
에밀 아자르 말고도 외교관 시절에 가명으로 낸
책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마음산책에서 다 펴낼 진 모르겠지만 말이죠.

로맹 가리 책들의 판권이 마음산책-문학동네-
문학과 지성사에 퍼져 있는 것도 신기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