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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같은 나날--

이라면 일반적으로 행복 속에 몽롱하게 보내는 즐거운 비명같은 느낌이 아닐까

나는 좀 다른 빛깔로 느껴지는 말이다. 같은 24 시간의 하루, 어떤 때는 두통과 치통과 불면, 그리고 느닷없이 엄습하는 종아리나 발가락 쥐, 그리고 음식에 대한 거부감과 거기에 따른 허약함, 혈당 강하의 공포, 등등 자질구레한 신체의 불편함이 있다. 원인을 알수 없이귀에서 흐르는 불길한 액체는 아직 끊이지 않고 미리 진통제를 안 먹으면 엄청나게 겁나는 두통, 또 긴 밤의 불면은 매일 밤, 불안과 심한 피로감을 준다.

총체적 난관, 나이먹은 몸의 병적인 변화는 내게 막연한 불안과 회의를 주며 싦의 종착역에 따르는 공포를 준다.

그러나 마술처럼 활짝 개인 아침을 맞으면 새로운 하루의 시간이 선물처럼 나를 뿌듯하게 안아주고 배속에서 먹을 것을 요구할 땐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감사함과 삶의 환희를 느낀다. <그늘이 깊으면 햇빛은 더욱 찬란하다> 아마 평소 모든 소음으로 부터 유폐당한 베토벤이 온갖 내면에서 터져나오는 삶의 리드미컬한 소리가 벅찬 기쁨의 심포니로 터져나오듯이.

긴 밤에서의 고통과 불안이 아침햇살로 인해 감사와 환희로 바뀌는 이 오묘한 삶의 명암.

이렇게 넓은 바위 위에 푸르게 흐르는 가을 여울처럼 감미롭게 흐르는 나의 세월이여.

하루하루 삶에 감사하고 흐르는 시간에 내 몸을 맡겨 부담없이 흐르는 나의 나날들이여.

꿈같은 나날이다.


  모르겠다. 이 나이에도 소망하는 것이 있고 그것에 가슴 설레이고, 또 꼭 이루고 싶은 것도 있어 나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다면 그래도 되는걸까,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며 어떤 익사이링한 변화를, 또는 반짝반짝하는 소식을 기대하느라 언제나 새롭게 다가오는 새 날에 설레이는 나,그래도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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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주변, 또는 사회면에 떠들썩한 기사에 자살에 대한 소문이 많음을 본다.

물론 그런 극단의 결단을 하기까지에는 피치못할 정황과 판단이 각자 다르고 다양하겠기에 그 건건에 대한 

문제는 나로서는 다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이 있어 피력해 보고자 한다.

내 나이 칠십 오세. 태어나길 1945 년,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같아선 언감생심 세상을 볼 수 없었던 -셋 째도 낳느냐 마느냐 매몰차게 계산하는 세상인데- 일곱 남매 중 여섯 번 째라니.

누구나 그렇다시피 조그만 빈 손에 팔뚝만한 발가숭이로 태어나 입이 째지게 울어대던 나를 따듯한 품에 보듬어 이미 다섯 자식을 길러낸 헐렁한 젖무덤을 또다시 아낌없이 어린 것 입에 물려주시던 어머니.

당시 어려운 살림살이에 기저귀는 본체를 알 수없는 누더기를 그래도 때때마다 깨끗이 빨아 아기의 연한 살이

무르지 않게 갈아주시고 '어화둥둥' 안고 업고 길러주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와 형제들. 내 어린 기억 속에 한 번도 소외감으로 서럽거나 외로운 적이 없었다.  

혹자는 의아할 것이다. 자기 어린 시절을 어떻게 그렇게 뚜렷이 알거냐고? 그러나 내가 다섯 살때 동생이 하나 더 태어나 그 아기를 키우던 과정을 뻔히 보았으므로 미루어 내게도 적용하는 것이다.

한없이 조그맣고 연약하고 까다롭기만 했던 그 어린 생명체를 공들여 키워주신 부모님 덕분에 이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소중하고 대견한 것이다.


  부모님의 가이없는 사랑과 정성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내 목숨을 내 맘대로 포기한단 말인가.


  나는 늘 내 생일이 올 때마다 나를 낳고 기르시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먼저 나서 창호지에 습기가 젖어들듯 마음에 눈물이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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