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 또는 사회면에 떠들썩한 기사에 자살에 대한 소문이 많음을 본다.

물론 그런 극단의 결단을 하기까지에는 피치못할 정황과 판단이 각자 다르고 다양하겠기에 그 건건에 대한 

문제는 나로서는 다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이 있어 피력해 보고자 한다.

내 나이 칠십 오세. 태어나길 1945 년,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같아선 언감생심 세상을 볼 수 없었던 -셋 째도 낳느냐 마느냐 매몰차게 계산하는 세상인데- 일곱 남매 중 여섯 번 째라니.

누구나 그렇다시피 조그만 빈 손에 팔뚝만한 발가숭이로 태어나 입이 째지게 울어대던 나를 따듯한 품에 보듬어 이미 다섯 자식을 길러낸 헐렁한 젖무덤을 또다시 아낌없이 어린 것 입에 물려주시던 어머니.

당시 어려운 살림살이에 기저귀는 본체를 알 수없는 누더기를 그래도 때때마다 깨끗이 빨아 아기의 연한 살이

무르지 않게 갈아주시고 '어화둥둥' 안고 업고 길러주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와 형제들. 내 어린 기억 속에 한 번도 소외감으로 서럽거나 외로운 적이 없었다.  

혹자는 의아할 것이다. 자기 어린 시절을 어떻게 그렇게 뚜렷이 알거냐고? 그러나 내가 다섯 살때 동생이 하나 더 태어나 그 아기를 키우던 과정을 뻔히 보았으므로 미루어 내게도 적용하는 것이다.

한없이 조그맣고 연약하고 까다롭기만 했던 그 어린 생명체를 공들여 키워주신 부모님 덕분에 이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소중하고 대견한 것이다.


  부모님의 가이없는 사랑과 정성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내 목숨을 내 맘대로 포기한단 말인가.


  나는 늘 내 생일이 올 때마다 나를 낳고 기르시느라 고생하신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먼저 나서 창호지에 습기가 젖어들듯 마음에 눈물이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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