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본다.

 

'나는 과연 자리에 연연하는가? 아니다! 다만 前轍(전철)을 밟고 싶지 않을 뿐이다. 노무현 정부 때를 봐라. 대통령을 모욕하던 검사들. 검사들은 자신이 세상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검사들의 조직을 어찌 개혁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내게 제기되는 의혹에 나는 솔직히 잘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허니 이 난리가 아니겠는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벌여놓은 일, 내가 수습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힘들다. 물러서고 싶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러나, 그러나 물러서지 않겠다. 이게 내 生(생)에 부과된 책무 아닌가.'

 

사진은 淸澗亭(청간정, 강원도 고성에 있는 정자)에 걸려있는 액자이다. 액자의 시를 보며 문득 조국을 떠올렸다. 그가 지금 마음 한 편으로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이런 곳 아닐까 싶었던 것. 사람이 싫어질만큼 시달리는 그가 찾을만한 곳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청강정은 주변의 風致(풍치)가 좋아 옛 문사들이 많이 찾았다. 지금도 여전히 풍치가 좋다.

 

 

 

 

사진의 시는 이 풍치를 노래했다. 한 번 읽어 보자.

 

天敎滄海無潮汐 천교창해무조석    조석 일지 않는 평온한 곳

亭似方舟在渚涯 정사방주재저애    방주처럼 물가에 고요히 서있네

紅旭欲昇先射牖 홍욱욕승선사유    붉은 해 뜰 적에 들창문 비추고

碧波纔動已吹衣 벽파요동이취의    푸른 물결 일 땐에 그 바람 옷깃에

童南樓艓遭風引 동남루접조풍인    아해들 실은 배 바람따라 왔으나

王母蟠桃着子遲 왕모반도착자지    서왕모 먹던 복상 그대까지 못가리

怊悵仙蹤不可接 초창선종불가접    선인 자취 찾으나 찾을 길 없나니

依闌空望白鷗飛 의란공망백구비    부질없이 난간 기대 갈매기만 보누나

 

청간정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쓴 시 같다. 첫 두 구에서는 청간정의 모습을, 그 다음 두 구에서는 청간정 안에서 바라본 풍경을 그렸다. 그 다음 두 구에서는 이곳의 정취를 仙境(선경)에 비겨 말했고, 마지막 두 구에서는 만날 수 없는 仙人(선인)에 대한 아쉬움을 말했다. 이 시의 지은이는 문장가로 유명한 澤堂(택당) 李植(이식, 1584-1647)이다. 이 시의 결론격에 해당하는 마지막 두 구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잠시나마 부질없이 불로장생을 희구했던 것에 대한 자책으로 볼 수도 있는 것. 세 번째의 두 구에서 이미 불로장생이 불가능했던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조국은 부질없는 인생에 부질없이 나서서 부질없는 행동을 하여 부질없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인생은 짧은데 그런 부질없는 생각에 시간을 낭비하느니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에 그저 충실한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가 물러나든, 물러나지 않든, 언젠가는 이 곳에 한 번 들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리 대단한 것도 자연 앞에서는 다 부질없는 것이다.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느낀다면, 자리에 있든 물러나든 남이 비난하든 칭찬하든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의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다섯 개만 추렸다.

 

汐은 氵(물 수)와 夕(저녁 석)의 합자이다. 저녁 때 밀려 들어왔다가 나가는 조수란 뜻이다. 석수 석. 汐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潮汐(조석), 海汐(해석) 등을 들 수 있겠다.

 

牖는 片(조각 편)과 戶(문 호)와  甫(남자의 미칭 보)의 합자이다. 나뭇조각으로 테를 두른 벽에 나 있는 들창이란 뜻이다. 甫는 음(보→유)을 담당한다. 들창 유. 牖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牖下(유하, 들창 밑. 방 안, 집 안의 뜻), 牖戶(유호, 들창과 문) 등을 들 수 있겠다.

 

艓는 舟(배 주)와 枼(잎엽, 葉과 통용)의 합자이다. 거룻배란 뜻이다. 舟는 뜻을, 枼은 음(엽→접)을 담당한다. 거룻배 접. 艓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艓舟(접주, 거룻배) 정도를 들 수 있겠다.

 

蟠은 虫(벌레 충)과 番(차례 번)의 합자이다. 쥐며느리란 벌레를 지칭한다. 虫은 뜻을, 番은 음(번→반)을 담당한다. 쥐며느리 반. 일반적으로는 '서리다(웅크린 모양)'란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원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서릴 반. 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蟠桃(반도, 신선 세계에 있다는 큰 복숭아. 장수를 기원하는데 사용)와 蟠龍(반룡, 땅 위에 서리고 있어 아직 하늘에 올라가지 아니한 용) 등을 들 수 있겠다.

 

悄는 忄(마음 심)과 召(부를 소)의 합자이다. 슬퍼하다란 뜻이다. 忄은 뜻을, 召는 음(소→초)을 담당한다. 슬퍼할 초. 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怊悵(초창, 슬퍼함), 怊乎(초호, 슬퍼하는 모양)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생활이 바빠 길을 떠나지 못한다. 마치 청간정에 다녀온 듯 썼지만, 사실은 인터넷에서 취재하여 쓴 것이다. 바쁜 일정이 끝나면 한 번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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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알 비누 사오너라!"

 

 아버지는 꼭 다이알 비누를 고집하셨다. 때가 잘 빠진다고 하셨다. 비누를 사오라고 하실 때  꼭  '다이알'이란 이름을 붙이셨다. 내게 비누는 곧 다이알이었다. 30년도 더 된 일이다.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비누를 사오라고 시킨다면 무슨 비누를 사오라고 시킬까? 아무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비누를 사오라고 할 일이 없다. 여기저기서 선물받은 비누가 쌓여있기 때문. 격세지감을 느낀다.

 

 오늘 아침 새 비누를 꺼내려 포장지를 뜯는데 포장지에 사진의 이름이 써 있었다. 絪泫珍(인현진). 풀이가 잘 안돼 잠시 고민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造語(조어)였다. 絪(인)은 기운이란 뜻인데, 자신의 일에 당당한 여성을 의미한단다. 泫(현)은 빛나다란 뜻인데, 자신의 아름다운 미를 가꿀 줄 아는 여성을 의미한단다. 珍(진)은 보배란 뜻인데, 세상의 중심이 되는 보배로운 여성을 의미한단다. 화장품 제조업체인 신사임당에서 만든 화장용 고급 비누 이름이다. 재료를 보니, 여러가지 약초 성분이 들어가 있다. 화장용 고급 비누라 이름도 거기에 걸맞게 짓느라 이런 조어를 사용한 것 같다. 때만 잘 빠지지면 최고의 비누로 알고 있는 내겐 다소 사치스런 비누이다. 피부가 안좋아 고민하는 아내가 전용으로 사용하려 구입한 것 같았다.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댈 수 있나, 뜯던 포장지를 다시 여며 원자리에 놓았다. 다른 비누를 뜯을까하다 귀찮아 그냥 비누없이 세수를 했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머리를 감을 때도 비누나 샴푸를 사용하지 않는다. 물을 쓰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세탁 효과가 있는데 굳이 비누나 샴푸를 사용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나도 그이처럼 하고 싶은데, 못한다. 왠지 물비린내가 나서 남에게 폐를 끼칠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간 익숙해진 비누와 샴푸 사용에서 손을 떼기가 쉽지 않은 것도 있다. 오늘은 용기를 내서, 아니 귀찮아서 물로만 세수를 한 것이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을 보면 매일같이 세수를 한다. 까쓸까슬한 혀로 제 몸 이곳 저곳을 핥는다. 개들이 세수하는 것은 못봤다. 이따금 가려우면 흙바닥에 뒹구는 건 봤다. 사람도 넓은 의미의 동물이라고 보면 굳이 세수를 안해도 무방할 것 같다. 닦는다면, 지인처럼, 물로 닦아도 충분할 것 같다. 비누나 샴푸를 쓰는 건 자연스런 세수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피부를 더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아내에게 혼날 소리지만 비누나 샴푸를 사용하지 말고 그냥 물로만 세수하거나 머리를 감아보면 어떻겠냐고 권해보고 싶다. 더불어 나도 언젠가 직장을 그만 두고 타인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게 되면 고양이나 개처럼 지내거나 아니면 물로만 닦고 싶다. 가능할까?

 

한자를 자세히 살펴본다.

 

絪은 糹(실 사)와 因(인할 인)의 합자이다. 실이 상호 꼬여있듯 천지간의 기운이 합쳐진 기운이란 의미이다. 기운 인. 絪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絪蘊(인온, 만물을 생성하는 기운이 왕성한 모양) 정도를 들 수 있겠다.

 

泫은 氵(물 수)와 玄(검을 현)의 합자이다. 땅 속 깊이[玄] 흐르는 물이란 의미이다. 깊은물 현. 빛나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의미에서 연역된 뜻이다. 땅 속 깊이 흐르던 물이 지상으로 분출하여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빛날 현. 눈물을 흘리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한다. 泫이 결합한 단어는 주로 이 뜻으로 사용된 것이 많다. 깊은 물이나 빛나다란 뜻으로 다른 단어와 결합된 예는 찾기 어렵다. 泫이 들어간 예로 泫露(현로, 떨어지는 이슬), 泫歎(현탄, 눈물을 흘리며 한탄함) 등을 들 수 있겠다.

 

珍은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㐱(숱많을 진)의 합자이다. 보물이란 의미이다. 王으로 뜻을, 㐱으로 음을 나타냈다. 보배 진. 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珍奇(진기, 희귀하고 기이함), 珍味(진미, 썩 좋은 맛)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비누라는 단어는 한자어도 외래어도 아닌 순 우리말이다. 조선 시대에 콩 · 팥 · 녹두 등을 갈아 세수할 때 쓰거나 빨래에 비벼서 때를 빼는 데 쓰고 이것을 '비노'라 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이 <박통사언해>(1677)에 있으며 한글로 '비노'라 쓰여 있다. 이 비노가 음운 변화를 거쳐 비누가 되었다. 개화기에 현재의 비누가 들어오며 양비누라 불렸다. 초창기에는 石鹸(석감)이나 '사분'이라고 불렀는데, 석감은 돌[石] 같은 고형의 잿물[鹸]을 뜻하고, 사분의 경우 포르투갈어의 Sabão(사버웅)이 일본을 통해 전해진 것을 음역한 것이라고 한다(이상 인용 출처: https://namu.wiki/w/%EB%B9%84%EB%8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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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성인들이 소인들의 마음을 이렇게도 잘 알까?"

 

정수리에 얼음물 세례를 받은 느낌이었다. 수업을 담당하시던 분이 결강을 하게 되었다. 육십을 넘긴 도인 풍모의 노인이 보강을 하셨다. 학식의 깊이는 원수업 담당자보다 못하지만 생각의 깊이는 그 분만 못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란 말씀은 내게 충격이었다. 성인(군자)과 소인의 대비적 언급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 수업 시간 내내 머리속에는 저 말만이 맴돌았다. 30 여년 전의 경험.

 

성인들이 소인들의 마음을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인들의 마음에도 소인들의 마음이 있다는 것 아닐까? 반대도 가능하다. 소인들의 마음에도 성인들의 마음이 있다는 것 아닐까? 성인과 소인의 마음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다. 그러면 성인이 성인된 所以(소이)와 소인이 소인된 소이는 무엇일까? 선택의 결과일 것이다.

 

확대해보자. 고통과 기쁨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고통의 이면이 기쁨이고, 기쁨의 이면이 고통이다. 이 역시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다. 보강을 나왔던 노인의 自問(자문)은 이러한 이치를 자신도 모르게 누설한 것이다. 깊은 생각의 결과일 것이다. 30 여년이 지난 뒤 드는 생각.

 

사진의 한자를 읽어 보자. 낙관 부분은 생략한다. 설중화도리(雪中花桃李) 용화불원재(龍華不遠在) 멸도무집고(滅度無集苦) 아정유상락(我淨有常樂). 이런 뜻이다. 눈 속에 도리화 피어나니 / 용화세계 먼 곳에 있지 않네 / 열반은 고통 없는 자리 / 내 마음 맑으면 항상 기쁘리.

 

눈 속에서 복숭아와 오얏 꽃이 필까? 불가능하다. 비유이다. 눈은 시련 혹은 고통을, 복숭아와 오얏 꽃은 행복 혹은 기쁨을 비유한 것이다. 첫째 구는 이런 뜻이다. 행복과 기쁨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생긴다! 둘째 구, 용화세계가 멀리 있지 않다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낙원은 저 멀리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이 사바 세계에 있다는 것! 셋째 구 열반의 의미도 매 한가지이다. 고통이 끊긴 자리, 거기가 열반이지 별도의 열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론 격의 넷째 구는 무슨 의미일까? 이렇듯 聖俗(성속)이 不二(불이)한 삶과 세계에서 항상 기쁠 수 있는 방법을 말한 것이다. 무엇일까?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맑고 고요한 물처럼!

 

유교는 행복과 기쁨 그리고 고통과 시련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성인의 길과 소인의 길을 말한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는 본인의 몫이다. 불교는 성인의 길과 소인의 길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행복과 기쁨의 길 그리고 고통과 시련의 길을 말한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는 본인의 몫이다.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르지만 주체의 자각적 선택이란 점에서는 두 가르침이 일치한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얻었다.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80201&docId=332381825  사진을 게시한 분의 사전 허락은 받지 않았다. 내용이 좋아 인용했다. 사진을 올린 분이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낯선 한자를 서너 자 자세히 살펴 보자.

 

滅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烕(없앨 혈)의 합자이다. 지상의 물이 햇빛에 말라 다 없어졌다는 의미이다. 멸할 멸. 滅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消滅(소멸), 滅亡(멸망) 등을 들 수 있겠다.

 

執은 무릎 꿇은 죄수의 두 손에 수갑 채운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잡을 집. 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執行(집행), 執權(집권) 등을 들 수 있겠다.

 

淨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爭(다툴 쟁)의 합자이다.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氵로 뜻을 표현했다. 爭은 음(쟁→정)을 담당한다. 깨끗할 정. 淨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淨化(정화), 淸淨(청정) 등을 들 수 있겠다.

 

常은 巾(수건 건)과 尙(숭상할 상)의 합자이다. 깃발이란 의미이다. 巾은 뜻을, 尙은 음을 담당한다. 깃발 상. 항상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의미에서 유추된 뜻이다. 천자와 제후 장군 등 귀한 이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항상 세워놓는 것이 깃발이란 의미로. 항상 상. 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通常(통상), 常識(상식)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그간 경어체로 글을 썼는데 평어체로 바꿔 봤어요. 어떠신지요? 아울러 어려운 용어의 경우, 그간은 한글을 쓰고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했는데 이번엔 반대로 해봤어요. 한자를 쓰고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는 방식으로. 이유가 있어요.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해봤자 많은 이들이 한자를 모르기에 무의미한 표기란 생각이 든 거예요. 그럴 바엔 차라리 한자를 쓰고 괄호 안에 한글을 병기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경우도 한자를 못읽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괄호 안의 한글을 통해 한자를 인식하는 효과는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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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이병욱 2019-08-1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찔레꽃님의 이 글은 동양철학의 총화입니다!

2019-08-16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심이병욱 2019-08-16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어체로 바꾼 것, 한자 병기 방식을 바꾼 것, 모두 좋습니다

찔레꽃 2019-08-16 23:16   좋아요 0 | URL
무심 선생님, 조언 감사합니다. ^ ^
 

              



"항산(恒産, 생계를 유지할 일정한 재산)이 없어도 항심(恒心, 도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이는 사(, 군자)이지만, 일반 백성은 그러기 어렵습니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게 됩니다. 그러면 무분별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범죄도 저지르게 됩니다. 그때 이들을 처벌하는 것은 흡사 투망질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투망질은 어떻게 합니까? 고기가 모이도록 떡밥을 던진 후 고기가 모이면 투망을 던지지요. 백성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고 범죄를 저질렀다고 처벌하면 이는 투망질하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일장 훈계하는 장면이에요. 훈계라는 말이 어색한가요? 맹자 당시는 각국이 지식인을 우대하는 기풍이 있어 군주라 해도 어렵게 여겨 할 말을 못하는 법은 없었어요. 특히 제나라는 직하학궁(稷下學宮, 직하에 있던 연구소)라 하여 자유롭게 사상과 학문과 정치를 논하는 씽크 탱크를 운영했기에 그런 기풍이 더 강했지요. 제선왕에게 훈계했다고 해도 대과 없어요.

  

유학하는 선비 하면 왠지 남산 골 샌님의 가난하지만 꼬장꼬장한, 즉 가난에 초연한 모습이 연상돼요. 그러나 유가의 종주(宗主, 우두머리)라 할 맹자의 주장을 보면 사(, 앞서는 군자라 했지만 지식인 혹은 리더라 봐도 무방)에겐 그런 모습을 허여해도(견딜 수 있기에) 일반 백성에겐 그런 모습을 강요하지 않아요(견딜 수 없기에). 항상 배불리 먹고 부모 잘 모시고 형제 처자 잘 거느려야 한다고 말해요. 지배층에겐 희생을 요구해도 피지배층에겐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죠.

  

가난이 미덕인 법은 없는 것 같아요. 주변에 가난한데 행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가난은 악덕이에요. 그런데 이 악덕을 없애는 건 위정자의 몫이죠. 만일 그것을 없애지 못한다면 그는 위정자의 자격이 없어요. 맹자의 말을 빌면, 그것은 백성을 범죄자로 모는 행위와 같아요. 가난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범죄자의 잘못 이전에 위정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이엠에프(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저축으로 돈을 모을 수 없는 사회가 됐어요. 저축으로 돈을 모을 수 없는 사회가 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있는 사람은 더 있는 사람이 되고, 없는 사람은 더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해요. 저축으로 돈을 모을 수 없으니 이른바 투자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돈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돈이 없는 사람은 하기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러니 있는 사람은 더 있는 사람이 되고, 없는 사람은 더 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요

  

이런 상황이 됐으니, 맹자의 말을 빌면, 없는 사람은 자꾸 수렁에 빠져 범죄에까지 이를 수밖에 없는 지경이 돼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를 해결할 수 방책은 무엇일까요? 복지의 확대 밖에는 없지요. 그래야 없는 이들이 수렁/범죄에 빠지지 않게 되지요. 복지 확대를 반대하는 이들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잘못 보고 있는 거예요.

  

사진의 한자는 재()라고 읽어요. 재물이란 뜻이지요. (조개 패, 재물의 의미)(재주 재)의 합자예요. 로 뜻을, 로 음을 표현했어요. 활용된 예로는 財物(재물), 財貨(재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재물이란 한자를 보니 정치와의 함수 관계가 생각나 몇 마디 해봤어요. 사진은 동네 쓰레기 모아놓는 장소에서 찍었어요.

  

성장도 잘 되고 복지도 잘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세상사가 그렇듯, 둘 다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과거 고도 성장기는 그 이전에 워낙 못살았기 때문에 성장을 위해서라면 복지는 뒤로 미뤄도 괜찮다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그러나 이제 성장도 쉽지 않고 풍요의 일부 단맛도 본 상태에서는 복지를 뒤로 미뤄도 괜찮다는 공감대는 형성되기 어려워 보여요. 거기다 부익부 빈익부 현상도 심화되고 있으니. 복지 확대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정책임에 틀림없어요. 지금 정부[위정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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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은 우리 생활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죠. 주변 물건 중에 플라스틱 제품 아닌 것이 몇 개나 될까요? 예전엔 그와 반대였는데. 저 어릴 적만 해도 쌀을 씻을 때 실제 박을 켜서 말린 바가지를 썼던 기억이 나요. 초등학교 고학년 쯤에 실제 바가지 대신에 플라스틱 바가지를 사용했어요. 이렇게 플라스틱 제품이 널리 퍼진 건 용이한 제작과 저가라는 실용성 때문이죠. 이 때문에 플라스틱엔 빈티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달려있는데, 이는 편견이에요. 고가도 많아 하이브리드 자동차 엔진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의 경우엔 그 가격…. 플라스틱은 석유에서 얻는 부산물인데, 그 종류가 무척 많아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플라스틱의 재료는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이에요.


사진은 '취병희(聚丙烯)'라고 읽어요. 중국어로는 '쮸빙시'라고 읽고요. 폴리프로필렌의 중국어 표기예요. 폴리프로필렌은 무색 무취 무독의 반투명고체물질이에요. 저 자루 속에 있는 내용물도 그럴거예요(직접 열어서 확인해 보지는 못했어요). 서울  남산 에 갔다가 찍었는데, 으슥한 골목에 방치되어 있어 찍을 때 약간 겁이 났어요(슬럼가를 다룬 중국 액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 듯). '취병희[쮸빙시]'는 폴리프로필렌을 의역한 거예요. 폴리프로필렌의 사전적 정의는 '프로필렌을 중합(衆合, 화학적 합성)하여 얻은 열가소성 수지'인데, 취[쮸]는 중합(衆合)이란 의미의 폴리를, 병희[빙시]는 프로필렌(탄화수소, 그 중에서도 알켄에 속하는 화합물)을 표현한 거예요.


聚와 烯 두 자를 자세히 살펴 볼까요?


聚는 衆(무리 중)의 약자와 取(취할 취)의 합자예요. 사람들이 모여사는 촌락이란 의미예요. 衆의 약자로 의미릂 표현했어요. 取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사람들이 모인[取] 곳이 촌락이란 의미로요. 마을 취. 모으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 일부를 사용한 거예요. 모을(일) 취. 聚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聚落(취락), 聚斂(취렴, 세금을 가혹히 징수함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烯는 火(불 화)와 希(바랄 희)의 합자예요. 불꽃 색이란 의미예요. 火로 의미를 표현했어요. 希는 음을 담당해요. 색깔 희. 지금은 에틸렌계의 탄화수소를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해요.



석유 부산물 추출은 우리나라가 그 기술력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들었는데, 저 중국어 폴리프로필렌 자루를 보니 이제는 석유 부산물도 가격 경쟁력 때문에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조사해 보지 않아 정확한 사실은 모름). 중국의 저가 공세에 관련 업체 무너진 곳이 한 두곳이 아닌데 이제 석유 부산물 관련 업체도.


최근 한일간 무역분쟁으로 관련 업체들이 힘들어 하고 있죠. 강대국들은 자기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언제든 미소뒤에 감췄던 칼을 꺼내 들죠. 중 · 일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낀 우리는 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운명인 듯 싶어요. ·  일 무역 관련 업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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