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알 비누 사오너라!"

 

 아버지는 꼭 다이알 비누를 고집하셨다. 때가 잘 빠진다고 하셨다. 비누를 사오라고 하실 때  꼭  '다이알'이란 이름을 붙이셨다. 내게 비누는 곧 다이알이었다. 30년도 더 된 일이다.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비누를 사오라고 시킨다면 무슨 비누를 사오라고 시킬까? 아무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비누를 사오라고 할 일이 없다. 여기저기서 선물받은 비누가 쌓여있기 때문. 격세지감을 느낀다.

 

 오늘 아침 새 비누를 꺼내려 포장지를 뜯는데 포장지에 사진의 이름이 써 있었다. 絪泫珍(인현진). 풀이가 잘 안돼 잠시 고민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造語(조어)였다. 絪(인)은 기운이란 뜻인데, 자신의 일에 당당한 여성을 의미한단다. 泫(현)은 빛나다란 뜻인데, 자신의 아름다운 미를 가꿀 줄 아는 여성을 의미한단다. 珍(진)은 보배란 뜻인데, 세상의 중심이 되는 보배로운 여성을 의미한단다. 화장품 제조업체인 신사임당에서 만든 화장용 고급 비누 이름이다. 재료를 보니, 여러가지 약초 성분이 들어가 있다. 화장용 고급 비누라 이름도 거기에 걸맞게 짓느라 이런 조어를 사용한 것 같다. 때만 잘 빠지지면 최고의 비누로 알고 있는 내겐 다소 사치스런 비누이다. 피부가 안좋아 고민하는 아내가 전용으로 사용하려 구입한 것 같았다.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댈 수 있나, 뜯던 포장지를 다시 여며 원자리에 놓았다. 다른 비누를 뜯을까하다 귀찮아 그냥 비누없이 세수를 했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머리를 감을 때도 비누나 샴푸를 사용하지 않는다. 물을 쓰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세탁 효과가 있는데 굳이 비누나 샴푸를 사용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나도 그이처럼 하고 싶은데, 못한다. 왠지 물비린내가 나서 남에게 폐를 끼칠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간 익숙해진 비누와 샴푸 사용에서 손을 떼기가 쉽지 않은 것도 있다. 오늘은 용기를 내서, 아니 귀찮아서 물로만 세수를 한 것이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을 보면 매일같이 세수를 한다. 까쓸까슬한 혀로 제 몸 이곳 저곳을 핥는다. 개들이 세수하는 것은 못봤다. 이따금 가려우면 흙바닥에 뒹구는 건 봤다. 사람도 넓은 의미의 동물이라고 보면 굳이 세수를 안해도 무방할 것 같다. 닦는다면, 지인처럼, 물로 닦아도 충분할 것 같다. 비누나 샴푸를 쓰는 건 자연스런 세수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피부를 더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아내에게 혼날 소리지만 비누나 샴푸를 사용하지 말고 그냥 물로만 세수하거나 머리를 감아보면 어떻겠냐고 권해보고 싶다. 더불어 나도 언젠가 직장을 그만 두고 타인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게 되면 고양이나 개처럼 지내거나 아니면 물로만 닦고 싶다. 가능할까?

 

한자를 자세히 살펴본다.

 

絪은 糹(실 사)와 因(인할 인)의 합자이다. 실이 상호 꼬여있듯 천지간의 기운이 합쳐진 기운이란 의미이다. 기운 인. 絪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絪蘊(인온, 만물을 생성하는 기운이 왕성한 모양) 정도를 들 수 있겠다.

 

泫은 氵(물 수)와 玄(검을 현)의 합자이다. 땅 속 깊이[玄] 흐르는 물이란 의미이다. 깊은물 현. 빛나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의미에서 연역된 뜻이다. 땅 속 깊이 흐르던 물이 지상으로 분출하여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빛날 현. 눈물을 흘리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한다. 泫이 결합한 단어는 주로 이 뜻으로 사용된 것이 많다. 깊은 물이나 빛나다란 뜻으로 다른 단어와 결합된 예는 찾기 어렵다. 泫이 들어간 예로 泫露(현로, 떨어지는 이슬), 泫歎(현탄, 눈물을 흘리며 한탄함) 등을 들 수 있겠다.

 

珍은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㐱(숱많을 진)의 합자이다. 보물이란 의미이다. 王으로 뜻을, 㐱으로 음을 나타냈다. 보배 진. 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珍奇(진기, 희귀하고 기이함), 珍味(진미, 썩 좋은 맛)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비누라는 단어는 한자어도 외래어도 아닌 순 우리말이다. 조선 시대에 콩 · 팥 · 녹두 등을 갈아 세수할 때 쓰거나 빨래에 비벼서 때를 빼는 데 쓰고 이것을 '비노'라 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이 <박통사언해>(1677)에 있으며 한글로 '비노'라 쓰여 있다. 이 비노가 음운 변화를 거쳐 비누가 되었다. 개화기에 현재의 비누가 들어오며 양비누라 불렸다. 초창기에는 石鹸(석감)이나 '사분'이라고 불렀는데, 석감은 돌[石] 같은 고형의 잿물[鹸]을 뜻하고, 사분의 경우 포르투갈어의 Sabão(사버웅)이 일본을 통해 전해진 것을 음역한 것이라고 한다(이상 인용 출처: https://namu.wiki/w/%EB%B9%84%EB%8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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